한국 정치의 특성 중 하나는 정당 중심적 정치다. 정당의 정치과정(political process)이 의회의 정치과정을 압도하고 있다. 정치활동이 의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에서 입법되는 법이 정당, 특히 다수당에서 결정한 당론이나 대통령과 행정부가 제기한 정책이 합법화되는 장(場)이자 수단(手段)으로 인식되는 실정이다. 의회 민주주의에서 있어야 할 고유의 정치과정이 실종되고, 특정 정당의 입법안이 통과되느냐 아니냐의 결과만을 판결하는 정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정당 중심적 정치는 무엇보다 법과 정책의 편중성을 낳아 정당간 대결정치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의 성격상 각 정당은 당연히 법과 예산을 통해 자기 지지 계층을 확대하고 상대방 지지 계층을 축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당중심 정치는 정치적 의제설정(agenda setting) 자체가 국민적 관심과 이해와 관련된 것이기 보다는 자기 지지계층을 확대할 수 있는 선심성적인 정책과 같은 정당적 이해에 관련된 것들을 우선순위에 놓고 추진하게 된다. 법과 정책이 정치적 공격의 수단인 동시에 정치적 지지 계층의 확산방어 수단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당 중심적 정치는 비전문적인 정책을 양산하여 비효율적 정치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 정당 기구는 정책 입안을 위해 전문적으로 조사, 검토하고 예산의 타당성과 정책 집행의 효과를 검증할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 집권당이 아닌 이상 각 정당은 행정부의 자료와 정보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예산으로 유지되는 제한된 정책수립 및 검증 체계(system)를 독자적으로 갖추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당의 법과 정책 입안 능력에도 불구하고 집권을 목표로 한 과도한 정당 중심적 정치과정은 곧 비전문적인 법과 정책을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지난 제16대 국회(2000-2004)만 보더라도 그러한 점이 잘 나타난다. 국회의 대표적인 기능의 하나인 입법기능 면에서 보았을 때 4년 동안 제출된 국회의원 발의안 중 폐기되거나 발의자 스스로 철회한 비율이 72.9%에 달한다. 의원 입법으로 제출된 법안 1,912건 중 원안 내지 일부 수정으로 의결된 법안건수가 284건으로 14.9%에 그쳤다. 왜냐하면 전문적 검토를 거치지 않은 선심성 법안으로 준비된 것이거나 정치 공세적 성격을 갖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제출한 법안의 폐기 혹은 철회 비율이 불과 27.3%에 지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 보면 문제의 본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정치를 대결적 정치나 비생산적 정치로 만드는 근본 원인은 정당 중심적 정치에 있다. 정치를 국민의견의 수렴과 전문적 지식의 활용에 의한 대안 창출과정으로 보지 않고 당론을 관철시키는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가 정당에서 이루어지기보다 의회에서 이루어지도록 제도(institution)를 개선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의회 중심적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 법과 정책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고자 도입한 상임위원회 및 특별위원회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 자율성?전문성의 제고와 의회 민주주의
국회의 활동은 국민 대표기능이다. 대통령 및 행정부, 주요 정치지도자들로부터 독립해서 국민의 이익을 지키고 대표성을 증진시키는 활동을 하도록 되어있다. 때문에 권력 행사기관인 행정부와 대통령을 견제하고 국민이 낸 세금의 사용을 감시하는 기관인 국회의 자율성이 제한된다는 것은 의회 정치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율성이란 대통령의 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이고 자기 소속 정당으로부터의 자율성을 말한다. 이는 상임위원회가 독자적인 문제의식과 시각에 따라 국민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이익을 확대시키는 활동을 할 때 비로소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이익과 의사를 반영하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선출대표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의 구성원이다. 때문에 당론과 당정책의 형성 및 공천제도와 상임위 배정 등을 포함한 정당 중심적 정치구조는 국회의원들을 정당에 강하게 구속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 결과 의회를 통한 의견수렴과 전문적 검토라는 정치과정을 거치기 전에 당론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관철하는 방식이 굳어져왔던 것이다. 정치구조가 정당중심(party-centered legislation)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다. 각 정당에게 상임위원회란 자신들의 당론을 결정하고 그 당론을 국회라고 하는 헌법적?법률적 기관을 통해 공식화시키는 형식적 과정의 일부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정치구조에서는 상임위의 기능이 심하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의 활동은 위원회 중심이 아니라 당론 수립 과정, 특히 정당 지도부나 지도자의 견해를 중심으로 펼쳐지게 된다. 따라서 정당 중심적 정치활동은 국민 대표의 자율성을 심하게 제한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위원회의 활동이 국민 대표(representative) 기관이나 정책 심의 기관으로서, 그리고 법률제정기관으로서의 기능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분야별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전문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자율성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회가 본래적 기능을 수행하고 국민을 대표해서 행정부의 업무수행을 평가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 및 전문기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특히 초선의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매우 중요하다. 현재 17대 국회의 경우도 초선 당선자가 187명으로 전체 의석(299명)의 62.5%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각 위원회의 활동을 보좌하기 위한 입법지원조직인 입법 관료제가 정착되어 있기는 하다. 상임위원회의 전문위원실은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의 지휘 아래 전문위원, 입법조사관, 입법심사관 등이 법률안, 예산안, 청원 등 소관 안건에 대한 검토보고, 각종 의안에 대한 조사연구, 위원회 의사진행보좌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안, 예산안 등 의안의 검토, 자료 분석에 직접 참여하는 수석 전문위원, 전문위원, 입법심의관, 입법조사관 등의 숫자는 모두 120여명에 불과해 위원회당 평균 6명 정도의 입법지원 인력만이 배정되게 된다. 더욱이 상임위에 소속된 이들 전문위원들은 국회사무처의 순환보직제도에 의하여 행정사무직과 함께 2-3년마다 순환배치되어 위원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에 한계가 있다.
위원회의 활동은 다양한 각종 사안을 이해하고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1개 상임위당 국정감사에서의 증인 출석 요구현황을 보면 평균 약 150명씩 요청하고 있고, 제출서류도 약 3천건 정도(1인당 약 150건)를 요청하고 있다. 따라서 짧은 기간을 감안해 보았을 때 20여개의 피감기관에 대한 검토, 150명의 증인에 대한 검토 그리고 3천건의 서류 검토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이런 상황과 관계없이 실제 정보지원 체계마저도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결국 정보의 불균형과 부족으로 인해 위원회의 국정 심의와 입법 활동의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임위원회가 행정부와 동일한 정보체계를 갖춘다는 것은 예산 규모로 보거나 의회의 목적으로 보아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최소한의 전문인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다음으로는 외부의 전문가들을 아웃소싱(out-sourcing) 형태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행정부가 가진 국가정보를 의회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이다. 행정부가 가진 국가정보에 대해 상임위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검토를 할 수 있도록 상임위원들에게 가장 적실성이 높은 정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공할 정보체계의 공유와 활동방안이 필요하다. 특히 위원회 활동이 효율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각 행정 및 정책 부서와의 긴밀한 업무 협조체제의 구축이 필수적인 것이다.
3. 위원회 지원 체제의 강화
의회는 본회의 의결을 통해 법안을 확정하지만 그 활동은 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의회의 상임 및 특별위원회는 “본회의 의결 전에 회부된 안건을 심사하며 그 부문에 속하는 의안을 입안하는 국회의 기관”으로 본회의가 지닌 비전문성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위원회가 각 안건을 실질적으로 심사하고 다양한 의견 교환과 수렴을 하고 전문적 지식을 확보함으로써 국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여야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상임위원회가 다양한 의견 교환과 수렴을 통해 본회의의 비전문성을 극복하고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도입 취지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정당중심의 정치가 국회중심, 특히 위원회중심의 정치활동으로 변화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각 위원회의 지원체계가 개선되어야 한다. 이는 각 정당에 지원되는 국고보조금과 국회에서의 위원회 활동비 간의 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각 정당에 지급된 국고보조금이 국회에서 사용되는 위원회 활동비보다 훨씬 많다.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2002년 1,113억원, 2003년 266억원, 그리고 2004년에는 538억원이었다. 선거가 있는 해인가 아닌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만 매년 5백억원 정도의 국민세금이 정당에 지원되고 있다. 그리고 그중 16.5%(2004년 기준)인 89억원 정도만이 정책개발비로 쓰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달리 말하면 정당에 지원된 대부분의 세금이 각 정당의 홍보비, 조직비, 운영비 등으로 쓰여 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각종 국회내 위원회가 정책개발과 입법을 위해 사용하는 국회 예산은 매우 적다. 2005년도 예산액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위원회 운영에 할당된 예산은 총 국회 예산 3,360억원 중 149억원 수준이다. 국회 총예산의 3.1%에 불과했다. 이는 2006년의 예산안에서도 크게 차이가 없어 국회 예산 총 3,590여억원 중 위원회 활동 및 운영 관련 할당액은 154억원 정도로 2.9%에 불과하다. 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회의 모든 위원회 활동 예산이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의 약 1/3밖에 안되는 것이다. 물론 정당에 보조된 국고보조금도 정책조사 및 정책개발비로 사용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아직 약 16.5%(2004년 기준)밖에 안 되고 있으며 그 내용도 정책조사와 개발보다 정당의 정책홍보에 치중되는 실정이다.
매년 500억원에 달하는 국고보조금을 정당에 주어 그 중 80% 이상을 정당의 조직 및 경상지원비 내지 정당 홍보활동비로 쓰도록 되어 있는 것은 분명 의회중심의 민주주의라는 국가운영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이것은 또한 국민대표인 국회의원이 의회보다는 정당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국민의 세금이 왜 특정 정치이념을 공유하는 각 정당의 홍보, 조직, 운영비를 지원해야 하느냐하는 것도 근본적 의문이다. 따라서 정당에 지원되는 국고보조는 국회의 상임위원회 활동비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으로써 각 위원회는 확대된 예산을 다양한 소위원회 활동비, 청문회 개최, 전문가 의견 수렴, 각종 조사활동 등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산이 있는 곳에 활동이 있게 마련이다. 국가예산이 정당으로 가게 되면 국회의원은 정당 중심적 활동을 위해 국가예산을 사용하게 된다. 반면, 국가예산이 국회의 위원회에 배정되게 되면 국회의원은 정책과 법안에 대한 조사와 타당성, 대안을 찾는 위원회 활동에 예산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정당활동에 국고 보조금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보다 국회의 위원회 활동에 국가예산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대결적 정치를 완화시키고 전문적과 자율성에 입각한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4. 상임위 중심적 의회 정치를 위한 방향
정당은 의회정치에 필요한 정치적 결사체다. 정당정치를 위해 의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의회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당정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전체주의체제나 권위주의체제하의 정당은 항상 의회를 압도한다. 정당이 곧 의회를 장악하고 의회는 정당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고도화된 나라일수록 정당보다는 의회 역할이 확대되어 있다. 우리 정치발전의 방향도 곧 정당과 지도자의 영향력을 줄이고 의회정치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회가 자율성과 전문성에 따라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 고유의 정치과정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은 정당 중심적 정치를 국회의 상임위원회 중심의 정치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상임위가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하면서 전문성과 효율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가는 구조적 문제해결 방안은 위원회를 활성화하는 방안이다. 위원회 중심 국회(committee centered legislature)로 가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상임위의 입법 및 정책개발과 조사 예산의 확대가 필요하다. 이는 추가적 예산 지원보다는 현재의 정당 지원 예산을 위원회 활동 예산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즉 정당에 대한 국고 보조금을 대폭 축소하고 이를 위원회 예산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둘째, 국회법 제43조의 외부전문가의 활용에 대한 규정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 제출되는 법률안 등 안건의 심사에도 고도의 전문지식이나 경험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점점 증대하고 있는데 반해, 전문가 활용의 한시성의 문제, 그리고 전문가의 위촉 방법, 예산 배정 및 수당 등에 대한 규제가 많아 실질적으로 이 제도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외부전문가를 활용하기 위한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 활용에 대한 현행 의장 및 위원장 중심의 규정을 대폭적으로 개선하여 위원회 활동의 주체인 의원들의 재량권을 최대한 배려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상임위 전문위원 및 당추천 정책연구위원에게 상임위에서 필요로 하는 자료와 정보의 제공이 충분하고도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상임위는 국회 활동의 근간임으로 상임위 차원에서 요구되는 각종 자료가 상임위원장 혹은 각 당 간사위원의 지시에 따라 행정부의 자료를 열람하거나 요구할 수 있도록 하여 원활한 입법, 정책 및 예산 활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행정부와의 원활한 정보 공유를 통해서 합리적인 국민 합의 조성과정을 가능하게 만들고, 행정부와 의회가 합의한 사항들이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을 형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현재의 제도를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선 전문성을 갖춘 정책연구위원을 미국 의회와 같이 국회상임위원회나 특별위원회에 배정하는 것이다. 현재처럼 상임위당 6명 정도의 전문 인력으로는 효율성과 전문성에 기반한 상임위 지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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