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한의 인권실태
북한의 인권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최악이다. 이는 유수한 민간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와 국제사면위원회를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공지의 사실이다. 프리덤하우스는 민주적 절차와 인권의 질적 보장 면에서 1978년부터 세계 각국의 인권실태를 평가해 왔는데(매년 Freedom in the World라는 『세계자유상황 보고서』 발간), 북한은 ‘비자유국’(not free)으로 분류돼 가장 낮은 등급인 7등급에서 한 번도 제외된 적이 없을 정도이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은 1990년대에 들어와 경제난ㆍ식량난이 겹침에 따라 더욱 악화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인도적 위기’(긴급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배경에서 2005년 12월 17일 유엔 총회 본회의에서 북한인권결의가 사상 처음 압도적 다수의 표결로 채택됐다(이에 앞서 11월 18일 총회 제3위원회를 통과). 이 같은 유엔 총회결의는 인류의 양심이 북한인권 개선에 공감대를 이루고, ‘인도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 혹은 ‘인도적 보호’(humanitarian protection)에 착수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지금 북한의 인권상황은 어떠한가. 상기의 유엔 총회 결의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북한인권문제를 적시하고 있다. 첫째, 고문을 비롯한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고 모멸적인 처우와 징벌, 공개처형, 초법적ㆍ자의적인 구금, 적법절차의 부재, 정치범에 대한 사형 선고, 수많은 수용소와 광범위한 강제노동, 둘째, 국외 탈출을 배신으로 몰아 억류ㆍ고문 같은 잔인하고 비인간적ㆍ모멸적인 징벌을 가하거나 사형에 처하는 등, 외국에서 송환해 온 시민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 셋째, 사상ㆍ양심·종교의 자유, 의견 표명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ㆍ결사의 자유, 평등하게 정보에 접근할 자유, 국내외에서 원하는 이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ㆍ여행할 권리를 모든 측면에서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것, 넷째, 성매매ㆍ강제결혼 목적으로 여성을 매매하고 낙태를 강요하고 송환된 여성의 아이를 살해하고 수용소 등지에 구금하는 등 여성의 근본적인 자유를 계속해서 억압하고 있다는 것, 다섯째, 강제실종(enforced disappearance)의 형태와 같은 외국인 납치를 둘러싼 의혹들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 더불어 유엔 총회결의는 아동의 육체적ㆍ정신적 발달에 피해를 입히는 영양실조가 만연해 있는 데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2. 한국 정부의 태도 및 문제점
노무현 정부는 그간 북한인권문제가 국제무대에서 제기될 때마다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 2003년 4월 제59차 유엔인권위원회에 북한인권 개선 촉구 결의안이 제출됐을 때 우리 정부는 ‘불참’이라는 기묘한 선택을 하더니, 제60차(’04) 및 제61차(’05) 유엔인권위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사무처의 방침에 따라 연거푸 ‘기권’이란 당당치 못한 입장을 취했다.
제61차 유엔인권위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에 대한 기권 투표에 앞서 한국 정부는 최혁 제네바 대표부 대사의 공식발언을 통해 기권에 대한 (변명의) 입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년간 북한의 인권 상황에 큰 진전이 없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정부는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의 질서를 구축하고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 신뢰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러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기권한다”고 밝혔다.
전술한 바와 같이 작년 11월 북한인권 결의안이 사상 최초로 유엔 총회 제3위원회를 통과했었는데, 이때도 한국 정부는 기권이란 비겁한 태도를 보였다. 이 당시 최영진 주유엔 한국대표부 대사는 표결 직후 발언권을 신청, ‘표결에 대한 배경설명(Explanation of Vote)’을 했다. 그는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나, 북한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대북정책의 전반적 틀 속에서 여타 주요 우선순위와 조화를 이루면서 추진할 수밖에 없다”며 기권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결의안 채택을 주도하지는 못할망정, 표결에 기권하는 것은 주권(특히 자국민보호권)과 양심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하겠다. 북한주민은 우리 헌법상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인권 결의에 기권하는 것은 북한주민에 대한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사실상 방기하는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즉, 우리 국민의 인권보호에 대한 헌법적 요구(의무)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또, 지구촌의 형제들은 인류애(사해동포주의)에 입각해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개선책을 추구해 나가는 데 반해, 한국은 겉으로는 ‘동포애’와 ‘인도주의’를 말하면서도 이러한 국제적 추세와 흐름에 배반하는 ‘나홀로’식 인권외교를 고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일부 저명한 인권 NGO 대표들은 ‘인권이 없는’ 한국의 대북정책은 ‘끔찍하다’(terrible)고 말하기도 한다. 북한인권에는 눈 감고, 대북지원만 하겠다는 식으로 계속 나가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고도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선진국가, 인권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3. 한국판 ‘북한인권법’의 제정 필요성
같은 민족이라고 주장하며 동포애를 이야기하는 우리 남한주민들이 북한의 인권탄압에 침묵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인권탄압이란 범죄 행위를 묵인·고무하는 것이 된다. 김정일의 독재정권과 ‘무조건적’이고 ‘무원칙적’이며 ‘무질서한’ 화해·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인권 탄압의 불법 체제를 지속시키는 수구적ㆍ반민족적인 정책에 다름 아니다. 대북지원과 남북협력은 북한인권 개선에 이바지할 때만이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자유민주주의와 수령의 유일적 영도는 양립할 수 없다. 서로 상극적인 체제 아래에서 살아온 남과 북의 주민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북한인권 개선과 문화적 동질성 회복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일이다. 요컨대, 인권이 없는 대북정책은 도덕성을 결여한 것으로서 참다운 ‘자유’ 통일정책은 물론, ‘민주적’ 통일정책도 될 수 없다.
인권은 ‘거론’할 때 ‘개선’이 가능하다. 또한 정공법을 구사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관점에서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이 제출될 때 당당하게 찬성투표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동북아에서 인권국가로서의 대외적 이미지를 고양하고 선진국가로서의 국격(國格)을 지키는 길이라고 하겠다.
우리 정부는 북한인권문제가 보편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새로운 국제환경에 걸맞는, 입체적 대북인권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와 관련, 미국의 ‘북한인권법’을 벤치마킹한 한국판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여, 북한주민의 인권 개선과 북한사회의 개방 및 체제민주화를 선도, 촉진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판 ‘북한인권법’ 제정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인권문제를 정치적 잣대나 상황논리에 따라 가변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법규범의 틀 안에서 원칙에 따라 접근하고 해결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즉, 일관성과 규범성의 확보라는 의미가 있다.
둘째, 북한인권문제를 남의 문제 혹은 국제사회의 문제라는 제3자적ㆍ방관자적 시각에서 벗어나, 발등에 떨어진 ‘우리(동포)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책을 강구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실 북한인권 개선과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진정한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하며, 민족의 평화적 통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셋째,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적 대응에 공조하고 협력하는 것이며, 또한 유엔의 북한인권 개선 결의에 적극 부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유엔 총회와 인권위원회는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며, 회원국들에 대해 기술적ㆍ재정적 협력을 제공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결의에 따라 미국은 이미 2004년 10월에 ‘북한인권법’(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of 2004)을 제정하였고, 일본도 북한인권법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인권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이러한 국제적 추세와 흐름에 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넷째, 진정한 민족공조를 위해서도 ‘북한인권법’ 제정은 필요하다. 국제사회가 모두 나서는 데 정작 같은 동포인 우리만 북한인권에 눈을 감아서는 안될 것이다. 나중에 통일이 되었을 때 우리만 김정일의 독재에 뒷짐 지고 있었음이 알려진다면, 북한주민들로부터 원성을 듣게 될 게 분명하다. 북한주민들에게 ‘인권의 빛’ 내지 ‘생명의 빛’이 전달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민족적 양심의 소리에 충실하는 것일뿐더러, 진정한 민족공조이자 시민협력이라고 할 것이다.
요컨대, ‘북한인권법’의 제정은 대북정책에 ‘인권’ 개념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인권이 대북 화해ㆍ협력을 지도하는 상위가치라는 점을 국내외에 혹은 7천5백만 민족 앞에 엄숙히 선언한다는 규범적 및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4. 한국판 ‘북한인권법’에 담을 주요내용
한국판 ‘북한인권법’에는 한반도 상황 및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첫째, 북한인권법에서는 북한인권 개선정책이 통일정책의 중요한 일부이며, 국가는 남한과 북한 사이의 평화공존과 평화적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북한주민의 인권개선 및 인도적 현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기해야 한다.
둘째,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성 원칙에 입각해, 또한 북한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의 일부’라는 관점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추진하되,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통일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북한의 인권상황을 적절하게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천명해야 한다.
셋째, 국가는 이산가족문제, 납북 억류자 및 미귀환 국군포로 문제, 탈북자문제 등을 ‘기본적 인권의 보호’ 차원에서 접근하고, 근원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또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통해 북한주민의 삶의 질 제고를 위하여 노력한다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더불어 정부는 북한인권 및 대북지원에 참여하는 민간단체의 활동에 대하여 물질적인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여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활성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넷째, 국가는 다방면의 남북교류협력과 대북 인도적 지원이 북한주민의 인권 개선, 북한사회의 변화, 남북한간의 체제 동질화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와 관련, 북한에 대한 직접 지원 중 일정 규모 이상의 것은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정부는 북한인권 개선 등의 책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통일부장관 소속으로 북한인권개선위원회를 설치ㆍ운영하되, 여기에는 정부위원 외에 적절한 수의 민간위원을 참여시키도록 해야 한다. 또한, 북한인권 증진을 위하여 북한과 남북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개선 활동의 실효성 확보 차원에서 북한인권 대사를 임명토록 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인권 대사를 중심으로 북한주민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북한인권 외교를 통합적ㆍ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여섯째, 국가인권위원회에 북한인권침해기록보존소를 설치하여 북한인권 침해정보에 대한 기록을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이를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인권 정보를 적절한 경로를 통하여 국제인권기구 및 국내외 민간단체들에게 제공하도록 하여야 한다.
일곱째, 이 밖에 ‘북한인권법’이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기본법이 될 것임을 감안해서 북한주민에 대한 정보전달 및 유통 방안의 마련ㆍ시행,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교육ㆍ홍보 등의 내용을 담는 것이 바람직하다.
5. 맺는 말
혹자는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더라도 북한인권 개선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이 미미할 것, 즉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왜 지금 북한인가?”라는 문제 제기를 하기도 하고, 미국의 대북 압력노선에 추종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북한 인권에 대한 진정한 관심보다는 인권을 내세워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한다는 음모론도 있다.
하지만 북한인권문제는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굶어죽고 맞아죽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자거나 보다 큰 이익(예컨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침묵하자는 것은 인류의 양심에 부합되지 않는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다. 또 오늘날 “인권에는 국경이 없다”(Human rights have no borders)고도 한다. 이와 같은 ‘인권의 보편성 원칙’에 충실한 자세로 북한인권문제에 접근하면 된다고 본다.
‘북한인권법’ 제정은 북한인권 개선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며, 정부의 대북정책을 기속하는 법적 효과를 갖는다. 그것은 민족자애적인 대북정책의 법제화를 뜻하는 것이기에 대북정책에 도덕성을 확보하는 효과적인 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제정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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