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집단소송보다는 적발노력의 강화를

김정호 / 2002-11-28 / 조회: 5,597
No.046

1. 증권집단소송이란?

증권집단소송의 도입 타당성 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어왔다. 집단소송이란 피해자 중의 하나 또는 몇이 변호사와 공동으로 다른 피해자들의 명시적 위임 없이 제기하는 소송이다.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피해자들도 집단소송에서 나온 판결의 결과를 그대로 적용받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소송제도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논의되고 있는 증권집단소송제도는 허위공시, 분식회계, 내부자 거래, 주가조작 등의 위법행동을 대상으로 한다. 지금은 도입여부를 둘러싸고 구체적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 선거의 쟁점이 될만큼 뜨거운 사안이므로 조만간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2. 증권집단소송은 왜 주장되고 있나?

집단소송은 피해의 성격이 소액다수일 경우 그 필요성이 제기된다. 소송에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고, 피해액이 소송비용보다 작을 경우 피해자는 소송을 포기하게 된다. 소액다수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회전체의 입장에서는 큰 피해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개별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소송을 제기할 인센티브가 없다. 따라서 피해를 배상받지 못하는 것과 동시에 위법행위도 억제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다수의 피해자로 하여금 소송에 참여하지 않고도 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집단소송은 그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수단이다. 허위 공시, 분식회계 등의 사건이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해서 그 제도의 실질적 도입이 자동적으로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들이 늘 따르기 마련이다. 증권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의 타당성도 득과 실을 비교해서 판단할 문제다.

3. 손해배상제도의 목적과 증권집단소송제

개혁논자들이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두가지의 목적에서이다. 첫째, 피해자의 손해를 배상해줌으로써 지나친 방어행동을 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주는 것이고(보상효과), 둘째, 잠재적 가해자들로 하여금 허위공시나 주가조작 같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예방효과). 이같은 목적을 달성하려면 배상액이 위법행동으로 인한 사회적 순손실과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증권관련 사건에서는 이런 조건이 잘 충족되지 않는다.

주식유통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위법행위의 경우 배상액수는 사회적 순손실보다 늘 작다. A가 B에게 사기를 쳐서 100만원을 받았다고 해보자. 이때 B로부터 A에게로 100만원이 이전된 사실 자체로만 보면 사회적 순손실은 없다. 결국 누군가의 손에 그 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행위에는 다른 순손실이 따르게 마련이다. 사기행위가 적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당한 자원을 투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기에 대한 형사처벌이 없다면 그러한 노력의 가치는 거의 100만원에 육박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사기로 인한 사회적 순손실이다. 따라서 A로 하여금 B에게 100만원을 배상하면 사회적 순손실만큼을 부담시키는 것이 된다. 즉 위법행위로 인한 이득이 위법행위자에게 모두 귀속될 때 그것이 피해자의 이득과 일치할 때, 사회적 손실은 피해자가 입은 손실과 일치한다. 주식의 경우 발행시장에서는 이런 관계가 성립하지만 유통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발행시장이란 기업이 일반투자자를 상대로 새로운 주식을 발행하는 시장이다. 만약 발행자인 기업이 위법한 행동으로 이익을 볼 경우 그 이익은 주식을 인수한 주주(또는 투자자)의 손해와 일치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손해는 가해자가 이익으로 가져간 것이기 때문에 가해자의 손해는 위법한 행동에 의해 초래된 사회적 순손실과 일치한다.

유통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유통시장이란 이미 발행된 주식이 일반투자자들 사이에서 거래되는 시장을 말한다. 위법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기업의 경영자이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사람의 대부분은 그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이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어떤 회사의 사장이 재임을 위해서 사실보다 과장되게 이익을 공시했다고 해 보자. 위법행위자인 경영자가 이 허위공시로 인해 보는 이득은 재임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큰 이익과 손해를 보는 사람은 위법행위자인 경영자가 아니라 투자자들이다. 이 허위공시로 인해 주가가 부풀려졌다면 높아진 가격으로 당해 회사의 주식을 매각한 투자자는 이익을 본 것이다. 반면 그 가격으로 주식을 매수해서 새로 주주가 된 사람은 손해를 본 것이 된다. 문제의 허위공시가 거짓인 것으로 밝혀질 경우 주가는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풀려진 가격으로 주식을 매각한 투자자의 이익과 그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해서 손해를 본 투자자의 손해는 정확히 일치한다. 사회적 순손실의 계산에는 또 한가지의 요인이 들어가는데, 당해 경영자의 위법행위로 인해 제3자들이 입는 피해이다. 그런 행위로 인해 주식시장의 전반적 신뢰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그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통시장에서의 불공정행위로 인한 사회적 순손실은 경영자가 그런 일을 위해 지출한 비용(예를들어 투입한 시간의 가치 등)과 신뢰성 저하효과의 화폐가치를 합한 값이 된다. 부풀려진 주가로 주식을 매입해서 투자자들이 입은 손해는 그 가격으로 매각한 투자자의 이익과 정확히 상쇄되기 때문이다. 또 계속적으로 주식시장에서 거래하는 투자자들이라면 위법행위로 인한 이익과 손해를 거의 같은 확률로 볼 것이기 때문에 개별적 보상도 필요 없어진다. 결국 중요하게 남는 사회적 순손실은 위법행동이 시장에 미치는 전반적 신뢰성 저하효과다. 만약 개별적 소송을 통해서 가해자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손해액만큼을 배상하게 한다면 사회적 순손실보다 훨씬 큰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셈이 된다. 그것은 손해배상제도의 작동원리에 부합되지 않는다. 이런 성격의 손실은 개별적 소송이 아니라 형사처벌이나 행정적 제재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마치 고속도로에 쓰레기 버리는 행위가 적발되었을 경우 피해자인 일반 국민으로 하여금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과태료를 부과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원리이다.

현행 법체제는 이미 그런 벌칙을 마련해 놓고 있다. 허위공시, 미공개정보이용(내부자거래), 주가조작 등은 징역 5년 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 대상이다. 그와 더불어 금융감독위원회에 의한 과징금 부과 또는 유가증권발행제한, 증권거래소에 의한 제반 제재조치 등이 따르게 되어 있다.

그렇더라도 증권집단소송제를 통해서 예방효과를 높일 수 있다면 금융감독 당국이나 검찰에 의해서 적발되지 않는 위법행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증권집단소송제도를 통해 예방효과가 높아질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소송의 예방효과는 위법행동에 대한 기대처벌수준에 비례하며, 기대처벌수준은 다시 적발확률과 적발된 후의 처벌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적발확률이 높을수록 그리고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수준이 높을수록 잠재적 위법행위자들이 느끼는 기대처벌수준은 높아진다. 증권집단소송의 도입이 위법행위의 적발수준을 높일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증권관련 소송들은 대부분 금융감독위원회의 제재조치를 받았거나 또는 형사처벌을 받아 위법행위의 내용이 밝혀진 사건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증권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이런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즉 증권집단소송제를 통해 위법행위의 적발확률이 높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단 적발된 위법행위에 대해 처벌수준은 높아진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분명 그럴 것이다. 집단소송이 없을 때는 과징금이나 형사처벌만으로 받게 될 행위가 민사적 배상의 부담까지 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증권집단소송제가 위법행위 예방효과를 가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손해배상제도가 예방효과를 가지려면 배상액수가 당해 위법행동으로 인해 초래된 사회적 순손실과 비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위법성은 작은데 상대적으로 큰 배상을 해야 하고 위법성은 큰데 배상액수는 작게 책정한다면 증권집단소송으로 인해 비록 평균적인 처벌수준은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예방효과가 높아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예방효과는 평균처벌수준이 아니라 한계처벌수준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은 위법행동과 손해간의 개별적 인과관계, 그리고 손해와 이익의 상쇄관계를 정밀하게 따져 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판결들을 보면 위법행동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 위법행동과 손해간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식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손해배상 액수 산정방식 하에서는 배상액이 사회적 순손실과 연관성을 가지지 못한다. 또 경영자의 거짓에는 주주들에게 이로운 것도 있다. 가해자의 위법행동이 주가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주주들에게 이로운 거짓까지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회사가 제공한 거짓 정보를 투자자가 신뢰하지 않은 경우에도 실제 지급한 금액과 변론종결 시점의 가격간의 차이를 배상하게 하기 때문에 사회적 순손실을 훨씬 초과하는 배상을 하게 된다.

설령 일단 제소된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배상액수가 사회적 순순실과 비례하도록 책정된다고 하더라도 제소의 확률이 위법성과 무관하게 결정될 때에 예방효과는 커질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위법성이 작은 기업일수록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위법성의 정도보다는 변제능력이 큰 기업에 대해 소송이 집중될 것인데다가, 또 그런 기업일수록 경영성과가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영성과가 좋다는 것은 대체로 위법한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작음을 뜻하기도 한다.

증권집단소송제로부터 예방효과의 증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소송이 화해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집단소송제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제기된 증권집단소송의 95% 이상이 화해로 끝을 맺는다. 물론 화해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화해는 분쟁의 쌍방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재판비용의 지출을 안해도 되게 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종국 판결의 내용을 명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경우에 한한다. 그럴 때에는 화해금액이 위법성의 정도와 비례하기 때문에 화해가 위법행위를 예방하는 효과도 동시에 가지게 된다. 그러나 사건의 대부분이 화해로 끝날 경우 종국판결까지 가는 사건도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종국판결의 내용이 무엇일지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런 상태에서 결정되는 화해금액은 위법성의 정도와는 무관하게 결정되며, 그것이 미국기업들이 실제로 겪어온 현상이다. 즉 증권집단소송의 대부분 화해로 끝나는 구조를 가지게 되는 결과 위법성의 정도 또는 사회적 순손실의 크기와 화해액(배상액)의 비례관계는 끊어지게 되고 예방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4. 어떻게 할 것인가?

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증권집단소송제가 없더라도 이미 기존 법체계가 허위공시나 분식회계, 주가조작 등의 위법행동에 대해 형사처벌과 행정제재를 규정하고 있다. 이들 위법행동을 더욱 철저히 막고자 한다면 위법행동의 적발 노력을 배가한다든가, 또는 적발된 후의 벌칙을 강화하는 등 기존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증권집단소송제는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큰 제도이다. 그래도 이 제도를 도입해야겠다면, 적용 대상을 발행시장에서의 허위공시 등에 국한한다든가, 손해배상액수에 제한을 가하는 등의 보완책을 둘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김정호, 손해배상제도의 목적과 증권집단소송제, 신회사법시리즈 17, 자유기업원, 2002.

J. Alexander, Rethinking Damages in Securities Class Actions, Stanford Law Review vol. 48, July 1996, pp1487-1537.


김정호(자유기업원 부원장, kch@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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