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정부와 여당이 2006년 3월 2일 당정협의회에서 대기업 투자 활성화와 외국자본에 대한 국내자본의 역차별을 없애기 위해 내년부터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하거나 크게 완화하는 법개정을 검토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 글에서는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연혁과 문제점을 살펴봄으로써 폐지의 당위성을 제시한다.
1.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연혁
(1) 1986년 12월 공정거래법 제1차 개정 시에 계열기업의 확장을 통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소유분산과 재무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1987년 4월부터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기업들에 대한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출자총액은 당해 회사 순자산액(純資産額)의 40퍼센트로 설정하였다.
(2) 1994년 공정거래법 2차 개정 시에 출자총액한도가 순자산액의 25퍼센트로 축소되었다.
(3)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융감독 강화, 외국인 투자 자유화, 적대적 인수 및 합병 등으로 차입에 의한 계열 확장이 어려워지고, 출자총액규제로 인해 기업인수ㆍ합병, 사업교환 등 기업구조 조정이 어려운 점을 감안하고, 경영권 방어, 사업전략 등에서 국내기업의 외국기업에 대한 역차별을 제거하기 위하여 1998년 2월 공정거래법 제6차 개정 시에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폐지하였다.
(4) 대규모 기업집단 개혁 방침에 따라 ‘계열기업간 순환출자 축소’를 위해 1999년 12월의 8차 개정에서 2001년 4월부터 출자총액한도를 다시 도입하고, 그 한도는 당해 회사 순자산액의 25%로 설정하였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10조(출자총액의 제한)는 “자산총액·재무구조·계열회사의 수 및 소유지배구조 등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되어 제14조(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등의 지정)제1항의 규정에 따라 지정된 기업집단(이하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이라 한다)에 속하는 회사는 당해 會社의 純資産額에 100分의 25를 곱한 금액(이하 "出資限度額"이라 한다)을 초과하여 다른 國內會社의 株式을 취득 또는 所有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다음 各號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01.1.16, 2002.1.26, 2004.12.31> (각 호 기재 생략)”로 되어 있다. 또한 동 시행령 제17조 제2항은 출자총액제한 대상 기업집단과 제외 기업집단(금융업 또는 보험업만을 영위하는 회사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제17조 2는 출자총액 제한의 예외 및 적용 제외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2. 문제점
(1) 경제력 집중 문제
출자총액제한의 핵심은 계열기업을 통한 기업집단의 확장을 억제해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은 잘못된 개념에 입각한 것이다. 우선 경제력 집중 문제는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첫째, 산업 집중으로 소수의 기업들이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함으로써 독과점적 시장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진입장벽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소수의 기업이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시장 구조상으로는 독과점이지만 효율성의 결과이므로 문제가 없다. 물론 기업의 대규모화가 관련 재화나 용역에 대한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다른 잠재적 기업에 대한 진입장벽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산업 집중이 정부에 의한 특혜 등 인위적인 진입장벽에 의한 것이라면 이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둘째, 대규모 기업집단의 다각화, 즉 흔히 문어발식 기업 확장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대기업들이 계열기업을 통해 사업을 확장한 이유는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계열기업을 통한 다각화는 기업의 생존과 새로운 사업 기회를 보장하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한국의 기업사를 보더라도 성공적으로 다각화를 이룩하지 못한 기업은 퇴출되거나 중소기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곧 다각화가 성공적인 경영 전략이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시장 상황에서는 대규모 기업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시장조직을 이용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 거래비용을 감소시키는 수단임을 의미한다.
셋째, 한 개인이나 가족이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있다는 데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진입장벽 등 시장에 대한 인위적인 규제가 없을 때, 부의 소유 집중 현상은 효율성의 결과이다. 생산과 분배는 분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분배 방식이 생산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하며, ‘평등’ 개념에 입각한 인위적인 부의 재분배는 그 축적을 방해하여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시장경제에서 중요한 원칙은 ‘강한 자’와 ‘약한 자’를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은 ‘강한 자’를 규제하는 것으로 ‘경쟁’ 자체를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2) 순환출자의 문제
계열기업 간에 순환출자가 이루어지면 가공자본이 형성되는 것은 사실이다. 한 계열기업에 의해 원시출자된 자본보다 더 많은 액수의 자본이 관련 계열기업들의 장부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계열기업의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금융기관이 대출심사에서 가공자본까지 포함한 부채비율을 고려한다면, 가공자본은 경제 전체의 자원배분을 왜곡하게 된다. 그러나 금융기관은 대출 대상 기업의 자본의 과다보다는 수익구조와 대출금 상환능력, 담보와 보증 그리고 현금흐름 등을 중요하게 검토한다. 더구나 계열기업 간 연결재무제표 작성을 의무화하고 있는 요즘, 가공자본 형성에 따른 부채비율 축소를 통해 차입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별로 없다.
또한 순환출자로 형성된 가공자본으로 인해 기업집단의 연쇄 도산 가능성이 커진다는 주장도 타당성이 없다. 오히려 모든 사업을 한 기업 내로 내부화하는 것보다 법적으로 독립인 계열기업들이 나누어 수행하는 편이 도산 위험을 분산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정 사건이 계기가 되어 순환출자로 인한 어떤 계열기업의 도산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모든 사업을 한 기업 내에 내부화한 기업의 경우에도 도산 가능성은 똑같이 그만큼 높아진다. 그리고 순환출자로 인한 연쇄 도산 가능성은 도산 기업의 순 자산 가치, 타 계열 기업들의 지급보증 여부, 그리고 채권자의 대응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3) 내부 자본시장의 문제
대부분의 신흥시장에서는 초창기에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 같은 외부자본시장이 발달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기업들은 은행권을 비롯한 간접금융시장에서의 차입과 자체의 내부자본시장에서 마련한 투자자금으로 신규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즉, 내부적으로 형성된 자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벤처캐피털 자본가로서 대자본 출자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현대자동차가 대표적 사례이며, 이들 반도체와 자동차는 오늘날 한국의 주력산업이 되어 있다.
(4) 관련 기업의 주식 가격과 투자 승수 문제
주식시장에서 사람들이 주식을 사고파는 행위는 자본 이득과 배당을 통한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특정 산업이나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자본의 시장 정보, 즉 자본의 기회비용 정보를 창출하는 행위다. 따라서 출자총액한도의 제약에 걸려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계열기업에 투자할 수 없으면 관련 기업들의 주식가격이 왜곡되어 자본의 기회비용이 왜곡되므로 나라 경제 전체적으로 자본의 효율적 이용을 방해하게 된다. 또 최적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투자 승수가 낮아져 경제의 총생산도 감소한다.
(5) 경영권 방어 문제
경제력 집중 억제를 명분으로 한 출자총액제한의 직접적 영향은 무엇보다도 한국 기업의 경영권 방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외국 자본은 출자총액한도의 제약을 받지 않으므로 국내 자본이 역차별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규모 기업집단의 많은 계열기업들의 주식이 외국 자본에 의해 소유되고 있는 상황에서 출자총액제한으로 계열기업들에 의한 국내 우호 지분 확보가 어렵고 금융계열사가 보유하는 주식의 의결권이 제한됨으로써 경영권 방어는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SK와 소버린 간의 경영권 쟁탈 사건은 좋은 사례다.
최근 칼 아이칸의 경영권 인수 위협을 받고 있는 KT&G는 국내 기업의 경영권 문제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 동안 KT&G는 이른바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경영권을 확보ㆍ유지하려는 유인이 가장 강한 지배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외국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다. 민간 지배주주가 없는 포스코도 동일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데, 소유 분산의 문제점을 잘 드러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신흥 국가의 피라미드형 지배구조를 가진 대규모 기업집단에서는, 지배주주가 비록 낮은 비율의 지분을 보유하더라도, 민간에 의한 지배주주의 존재가 경영권 방어에 가장 효과적임을 의미한다.
(6) 출자총액제한의 제약 문제
공정거래위원회 당국자나 출자총액제한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실제 기업 투자에 관한 통계를 보면, 출자총액제한이 기업의 투자 활동에 제약을 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사후적인 통계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사전적으로 투자 계획을 마련할 때 미리 출자총액제한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그렇게 나타난 통계가 반드시 출자총액제한이 기업 투자에 제약을 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7) 헌법 위반 문제
우선 출자총액제한은 헌법 제23조가 보장하는 재산권을 침해하는 규제이다. 어느 누구나 타인의 재산을 빼앗는 방법이 아닌 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하고 또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정당한 보상 없이 이러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분명히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즉, 개인의 창의적인 사업 기회를 규제하는 것은 암묵적인 조세를 부과하는 것과 같다. 또 출자총액제한은 국방이나 국민경제상 긴절하게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헌법 제126조가 규정하는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것은 주식 보유와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로 인한 이득은 별로 없는 반면에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내부 자본시장의 작동을 억압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저해할 뿐이다.
한편 헌법 제119조 제1항은 개인과 기업의 창의적 경제활동을 천명하고 있다. 모회사를 비롯한 계열기업들이 법적ㆍ회계적으로 독립인 또 다른 계열기업을 설립하여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여는 것은 상품시장, 자본시장, 그리고 노동시장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한 기업가의 창의적인 의사결정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출자총액제한은 분명히 자유시장 경제원리에 반하는 것이므로 헌법 제119조 제1항에 위배되는 것이다. 헌법 제119조 제2항에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이를 조정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지만, 경제력 집중이 정부의 진입장벽에 의한 것이 아니고 효율성의 결과라면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인위적인 진입장벽이 없는 상태에서는 경제력을 남용할 여지도 없다. 따라서 정부가 계열 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 제119조 제2항과 부합된다고 할 수도 없다.
3. 제안
시장경제에서 중요한 원리는 경제적으로 ‘강한 자’와 ‘약한 자’를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경쟁’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다. 남보다 더 앞서기 위해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경쟁이 소비자 이익 증가는 물론 나라 전체의 부를 축적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출자총액제한은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인데, 이는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고, ‘강한 자’와 ‘약한 자’를 차별적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경쟁촉진 정책이 아닌 경쟁억제 정책이다. 즉, 공정거래법의 기본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일본이 100%로 제한하던 규제를 폐지함으로써 출자총액제한을 하는 나라는 이제 한국뿐이라는 사실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정부와 여당이 2006년 3월 2일 당정협의회에서 대기업 투자 활성화와 외국자본에 대한 국내자본의 역차별을 제거하기 위해서 내년부터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하거나 크게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하기로 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개정안의 내용은 2006년 4월부터 개인 대주주가 없는 한국전력, KT, 포스코, 한국철도공사 등 4개 기업집단은 출자총액제한 대상 집단에서 제외하고, 공적자금 회수와 기업구조 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 등 정부출자기관의 지분이 30%를 넘는 기업을 인수할 때는 출자총액 계산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또 출자총액제한 규제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차제에 공정거래법 상의 출자총액제한 조항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김영용(전남대 경제학부, yykim@chon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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