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조세 정비를 위한 다섯 가지 정책과제

신종익 / 2006-03-03 / 조회: 5,041

1. 준조세의 규모와 범위

우리나라에는 세금은 아니지만 법에 의해 강제적으로 내야 하는 법정준조세가 많다. 2003년에 기업이 낸 것만 23조원을 넘었는데, 이는 세수의 15%이며 법인세수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준조세는 중소기업에 더 심한데, 2004년 중소기업들은 평균적으로 법인세의 1.25배에 해당하는 1억 2,500만원을 부담했다.

그런데 이 23조원에는 준조세 중 부담금, 사회보험금, 강제성 기부금만이 포함된 것이므로, 기업이 실제 내는 준조세는 이보다 훨씬 많다. 각종 사업자단체 회비, 정부산하기관의 검사 수수료, 과징금 등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일례로 금융회사들은 연간 1,100억원 정도의 ‘금융감독분담금’을 내며, 기업은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연간 400억원의 발행분담금을 부담하는 데, 금융감독원은 이들 준조세를 재원으로 운영된다. 방송사업자들이 내는 방송발전징수금이 연간 1,400억원, 가격담합이나 부당내부지원 등의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이 연 평균 2,000억원이다. 공정위는 2005년 5월 KT를 비롯한 통신회사들에게 1,200억원을 부과했는데, 이와 별도로 통신위원회는 2005년에 이동통신회사에 26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 비용에 대하여 정부는 서비스 이용에 대한 대가이거나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라는 이유로 준조세에서 제외한다. 하지만 협회 회비나 검사 수수료는 기업이 마지못해 가입하거나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대가성이 없다. 과징금 중에도 국제기준이 아닌 규제에 의해 부과되거나, 과징금 처분에 기업이 불복하여 대법원에서 기업이 승소하는 것들은 준조세라고 할 수 있다.

준조세는 일반국민들도 부담한다. 논밭에 창고나 집을 지으면 농지전용부담금을 내고, 해외여행을 하려면 국외여행자 납부금(소위 ‘출국세’)을 내야한다. 기업이 내는 준조세중 상당부분이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기도 한다.

정부의 준조세 억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준조세의 수와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준조세가 워낙 복잡하여 그 종류와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이다. 외국에는 이 같은 준조세가 없으므로 언론에서 명명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가히 ‘준조세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다.

2. 준조세의 진정한 문제

준조세는 기업 부담을 늘려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민들에게도 상당한 부담을 준다. 하지만, 준조세에는 보다 심각한 문제도 많다.

먼저,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다. 4대 보험 등 102개의 부담금을 제외하면 준조세를 얼마나 거두어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 수 없다. 협회 회비, 정부산하기관 수수료, 과징금 등을 얼마나 징수하여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는 예산부처에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등 각 분야에서 투명성이 크게 향상되었는데, 정부에서 운영하는 준조세의 투명성이 이 정도라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7,700여건의 모든 행정규제가 규제개혁위원회의 홈페이지에 상세히 공개되는 것과도 대조된다. 이 같은 준조세의 불투명성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며, 준조세의 실태 파악을 가로막아 준조세의 근원적인 정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준조세가 투명하지 않은 것은 준조세로 운영되는 기금과 특별회계, 정부산하기관의 투명성이 낮은 데 그 이유가 있다. 부담금의 75%를 사용하는 기금과 특별회계는 각각 57개와 19개로 되어 있으며, 규모는 기금이 일반회계의 2.4배, 특별회계는 일반회계의 절반 수준이다. 기금과 특별회계가 이렇게 많으니 투명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제통화기금(IMF)은 2001년에 우리 정부에 기금과 특별회계의 통합을 적극 권고한 바 있다.

법정 사업자단체와 공단, 재단, 연구소 등의 정부산하기관의 투명성도 낮다. 500개가 넘는 이들 기관이 회비나 수수료로 조성하는 예산이 평균 200억원이라고 가정하면 이들이 거두는 준조세는 10조원이다. 하지만 이들 기관들이 어떻게 운영되며 효과가 어떤지 일반인들은 알지 못한다. 2003년에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이 제정되었지만, 동법의 적용대상은 500여개 중 88개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준조세는 경쟁을 제한하여 관련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 준조세로 운영되는 법정단체나 정부산하기관들은 검사ㆍ감독, 교육, 특수보험 등의 정부 위탁업무를 독점한다. 즉, 진입이 규제되어 공정한 경쟁이 제한된다. 그 결과 이들 기관의 사업 효율성이나 서비스의 질은 낮다. 이들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거나 진입을 허용한다면 엔지니어링 산업 등의 발전은 빨라지고 고용도 늘어날 것이다.

더구나 법정단체는 강제 가입한 기업의 회비로 운영되면서 형식적인 보수교육과 교육비 징수, 무리한 자료 요구 등 기업의 상전역할을 하면서 회원기업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1998년 규제개혁위원회는 155개 사업자단체에 설립 및 가입강제 폐지, 등록업무의 회수, 보수교육 폐지, 설립조건 개선 등의 개혁을 하였다. 그래도 이 같은 관행이 지속되어 2005년 7월에 다시 공사, 공단, 협회 등 509개의 준공공기관의 회원기업을 규제하는 유사행정규제 1,006건을 정비하였다.

셋째, 준조세는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 법정준조세는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국가의 재정 충당수단이므로 조세와 다를 바 없다. 조세와 다른 점은 부과대상이 특정집단에 한정되었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부과요건과 절차, 부과요율에서 세금과 같이 조세법률주의가 적용된다.

하지만 법정준조세 중에는 부과요건과 산정기준 등을 하위법령에 위임하거나, 부과요건이 투명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교통안전분담금, 택지초과소유상한부담금, 문예진흥기금 납입금, 학교용지부담금 등은 이미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았다.

조세법률주의가 훼손되면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된다. 설령 헌법재판소가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준조세에 대하여 위헌결정을 내리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불소급되므로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는 한 이미 납부한 준조세는 돌려받지 못한다.

3. 준조세 정비가 부진한 이유

1980년대부터 정부는 행정쇄신과 기업부담 완화차원에서 준조세를 정비하였으며, 최근에는 준조세의 설립을 제도적으로 억제하기 위하여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 준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금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기금관리기본법’(2001년), 준조세를 심사하여 도입을 억제하는 ‘부담금관리기본법’(2002년), 정부산하기관을 관리하기 위한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2003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준조세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준조세 정비가 잘 안되는 것은 무엇보다, 준조세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 기인한다. 기업은 물론, 정부, 국회, 학계에서 준조세는 부담의 문제로 보고, 중복되는 준조세를 정비하여 부담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춘다. 준조세에는 앞에서 본 것과 같이 부담의 문제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준조세 실상이 노출되지 않은 가운데, 일부 준조세를 폐지한다고 해서 준조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둘째, 법제상의 미비에 기인한다. 부담금관리기본법은 준조세 중 부담금만을 대상으로 하므로 준조세 가운데 일부에 한정되어 있다.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은 정부출연금이 연 평균 50억원 이상인 기관 등으로 제한하여 500여개의 산하기관중 88개 기관만이 동법의 적용을 받는다. 더욱이 이들 법률은 기존의 부담금이나 정부산하기관을 심사하여 폐지하는 기능은 거의 없다.

셋째, 준조세의 투명성이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준조세 전반의 실상도 모르면서 일부 준조세를 통폐합하자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며, 주무부처의 반대논리에 대응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준조세 범위를 지금과 같이 좁게 보면 투명성은 떨어진다. 준조세를 대가성이 없는 것으로 정의하더라도, 대가성을 넓게 해석하면 준조세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협회 회비, 산하기관의 수수료, 과징금 등은 준조세에서 제외된다. 그 결과 협회비, 과징금 등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넷째, 공무원들과 국회의 의식문제에도 기인한다. 역대 정부는 한결같이 기금과 특별회계의 대폭 정비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예산외의 별도 지갑을 차기 위해 기금과 특별회계를 존치시키고, 자기 부처의 영향력 확대나 퇴직 후의 자리 마련을 위하여 법정단체와 산하기관을 계속 설립해왔다. 이 같은 공무원들의 기구확장 노력을 국회가 차단하지 못했다.

4. 준조세 정비를 위한 과제

준조세는 기금, 특별회계, 정부산하기관, 법정단체, 행정규제와 종횡으로 얽혀있다. 더욱이 세금과 달리 투명성이 떨어져 종류, 규모, 운영성과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다. 준조세의 실상이 이런데도 일부 준조세의 통폐합과 같이 종전의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준조세 정비는 요원할 뿐이다.

준조세를 제대로 정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음지에 놓여 있는 준조세를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즉, 각종 법정준조세를 한 부처에 등록시켜 주무부처에서 총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법정준조세관리기본법’(가칭) 제정이 필요하다. 동법에는 법정준조세의 등록과 국회 보고 및 공개, 준조세 신설 및 부과율 변경에 대한 심사, 기존 준조세의 정기적인 평가 및 존폐여부 결정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 같은 법률 제정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행정규제기본법(‘규제의 투명성 확보’), 부담금관리기본법(‘부담금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 공적자금관리특별법(‘자금 조성, 운영, 관리의 투명성 제고’)과 같은 많은 법들이 투명성 제고를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이 법률이 제정되어 법정준조세를 각 부처에서 어떤 용도로 얼마를 거두어, 어떻게 사용했으며,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를 국회에 보고하고 일반에 공개한다면 준조세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쉽게 도출된다. 사실상 조세로 굳어진 조세성 부담금은 조세로 전환시키거나 폐지하면 된다. 부처별로 혹은 동일한 행위에 대해 중복 부과되는 것은 일원화하고, 환경변화로 인하여 존치할 필요가 없는 것은 폐지될 것이다. 투명성의 위력은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라 1998년 각 부처의 모든 규제가 등록된 후 행정규제가 1998년 12,000여건에서 1999년 7,000여건으로 줄어든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둘째, 기금과 특별회계, 정부산하기관 및 법정단체 등과 함께 준조세를 정비하여야 한다. 외국에서 준조세가 없는 것은 준조세를 재원으로 운영하는 기금과 특별회계가 없기 때문이다. 기금과 특별회계, 정부산하기관이 존치하는 한 준조세를 폐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세금과 4대 보험을 통합 징수하더라도 많은 예산이 절감된다. 지금까지의 ‘예산외 사업을 위한 기금과 특별회계 설립 → 재원 확보를 위한 준조세 도입, 정부산하기관 설립 → 일반회계 긴축, 기금과 특별회계 확대 → 준조세 지속적 증대’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산하기관과 법정단체의 기능과 예산, 성과를 공개하고, 정기적으로 이들 기관을 평가하여야 한다.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의 적용대상(3조)을 법정준조세를 재원으로 운영되는 산하기관은 물론이고, 정부에서 인사권 행사와 같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산하기관으로까지 확대하여야 한다. 공정거래법은 실질 지배력을 기준으로 계열사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데(2조 1의3호), 정부산하기관이라고 해서 달리할 이유가 없다. 평가결과 존치 필요성이 떨어지는 기관은 폐지하거나 민간에 넘겨야 한다. 법에 사업자단체 설립근거 조항을 두고 기업의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식은 지양하고, 민법 32조의 사단법인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셋째, 행정규제의 질도 향상되어야 한다.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규제와 중복적인 규제는 폐지하여 부적절한 규제 때문에 과징금을 내야 하는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 또한 법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행정조사 단계에서도 형사소송법의 적법절차의 원리가 보장되도록, ‘행정조사에 관한 법률’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한다.

다섯째, 보다 근원적인 해법은 ‘준조세=공공기관’이라는 인식하에 작은 정부를 구현하는 것이다. 국민의 돈은 가급적 적게 거두어 낭비없이 쓴다는 자세와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정부조직 등 공공부문의 기능을 상시 평가하고, 기금과 특별회계의 부단한 정비, 법정단체를 포함한 정부산하기관 설립에 대한 심사 강화, 기능을 다한 공기업과 정부산하기관의 민영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 공공부문 업무의 민간위탁도 확대하여야 한다.

신종익(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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