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56
1. 한국의 외교 및 안보 정책을 위한 기초 개념
어느 나라 어떤 정부라 하더라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국가안보의 문제다. 국가 안보란 개인에 비유하자면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국가이익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Security)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안보 문제가 해결된 연후 국가들은 힘의 증강(Power), 경제발전(Prosperity), 자존심(Prestige) 등을 차례로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
국제정치란 국내정치와 달리 누구나 인정하는 상부의 권위적인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들이 싸움을 할 경우 경찰이 있고 사법부가 있어 싸움과 갈등을 중재해줄 수 있다. 그러나 국가들이 모여서 이룩한 국제사회의 경우 국가들보다 더 상부에 존재하는 권위 있는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권력이 대내적으로는 최고이며 국제적으로는 독립적이라고 생각한다. 대내적으로 최고이며 국제적으로 독립된 권력이 바로 주권이다. 이처럼 주권을 가진 국가들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궁극적인 요인은 바로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힘인 것이다. 물론 국제도덕도 존재하고 국제협력이라는 개념도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들의 이익이 심각하게 상충될 때 국가간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힘이다.
그래서 국가를 담당하는 모든 정치가들은 자신이 지도하는 국가의 국력증강에 힘써야 하며 다른 나라의 국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국력을 정확히 평가한다는 것은 성공적인 외교정책을 위해서 필수적인 요인이다. 약한 나라에게 비굴할 필요가 없고 강한 나라에게 무모하게 대항할 필요가 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 나라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우리와 평화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나라를 적대관계로 돌리면 안 되고, 우리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가진 나라를 우리에게 호의적인 국가라고 잘못 판단해도 안 된다.
이처럼 상대 국가들의 국력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전략의 영역이다. 국가 지도자들은 전략적으로 사고해야만 한다. 그러나 외교 및 안보 전략은 경영전략과는 본질이 다르다. 외교와 안보는, 특히 안보의 논리는 역설적인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즉 평화를 위해서는 평화와는 반대 개념인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군대를 유지하는 것은 전쟁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함이다. 훈련장을 만들고 기지를 만드는 일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동안 한국정부와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한반도의 외교와 안보문제에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국가안보문제, 외교문제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노정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가 되었고, 한미 관계와 한일 관계는 대한민국 수립 이후 가장 우려스런 상황에 놓여 있다. 피상적인 측면에서 중국과 우호관계가 증대되었지만 중국은 우리나라의 안보를 보장하는 세력이기 보다는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이다.2)
한국의 외교 안보정책을 담당하게 될 다음 정권은 국가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보다 체계적이고 원칙적인 외교 안보 정책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제시한 기본적인 원칙과 더불어 다음 정권이 당면해야만 하는 동북아시아 갈등구조를 서술하고 그 특징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
2. 21세기 동북아시아 갈등 구조
국가들은 평소, 그리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익들에 관해서는 상호 협력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그러나 국가 이익에 어느 정도 중요성을 가지는 이슈가 제기될 경우 국가들은 협력하기보다는 갈등을 벌이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전통적인 전쟁 원인이 된 것이 영토문제이며, 앞으로 전쟁의 요인이 될 수 있는 이슈들은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다. 현재 동북아시아 지역에는 무력적인 분쟁을 유발시킬 수도 있는 잠재적인 갈등 요인들이 내재하고 있으며, 갈등의 주제들이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이를 지정학적 측면, 에너지의 측면, 군비경쟁의 측면에서 나누어 분석한다.
지정학적 요인
한국이 자리 잡고 있는 동북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보아 세계에서 가장 위태로운 지역이다. 우선 군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들인 일본, 중국, 러시아가 이 지역에 존재하고 있으며, 유사 이래 가장 막강한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 사활적인 국가이익을 가지고 군사적, 경제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한국의 안보 및 외교를 논하는데 지속적으로 고려해야만 할 변수인 것이다.
역사상의 거의 모든 전쟁은 지리적 요인, 즉 영토문제 때문에 발생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거의 대부분의 전쟁은 영토를 마주보고 있는 나라, 국경선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 사이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결국 동북아시아에 있는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와 영토적인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 이들이 벌이는 영토 분쟁에 말려 들어갈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3)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
이 문제는 21세기의 새로운 분쟁 원인이며 한국 정부가 특히 염두에 두어야 할 외교 및 안보 이슈다. 에너지,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등은 산업의 원동력이 된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개발은 1990년대 초반 까지도 석유를 수출하던 중국을 세계 제2의 석유 수입국이 되는 상황을 도래케 하였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해양도서의 영유권 문제로 인한 분쟁은 그 섬 인근 해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 비단 중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모든 나라들이 급격한 산업 발전의 결과로 에너지 자원의 확보를 국가의 사활적인 이슈로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해역에 천연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각 국가들로 하여금 작은 섬에 관한 영유권 문제에서도 더욱 첨예한 대립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는 물론 에너지를 수입해 오는 길인 해상통로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동북아시아 각국의 군비 경쟁
동북아시아의 세계적인 강대국들인 중국과 일본이 냉전 종식 후 보인 가장 현저한 특징은 두 나라 모두 군사비와 군사력을 급격히 증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이 종식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군비축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중국의 경우 지난 30여 년 동안 년 평균 9%가 넘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1993년부터 2003년에 이르는 10년 동안 매년 약 17%에 이르는 놀라운 수준의 군사비 증강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냉전이 끝난 직후 갑자기 군사비지출을 대폭 증가시키고 있었는데, 1990년대 초반 일본의 가이후(海部) 수상은 일본의 군사력은 본시 냉전체제와 연계되어 있던 군사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냉전이 종식되었다고 감축될 이유가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표 1 . 세계 주요 국가 및 지역의 군사비 지출 증감 현황4)
1985년 | 2001년 | 증감 | |
미국 | 390,290 | 322,365 | -17.5 % |
중국 | 30,009 | 46,049 | +53.5 % |
일본 | 32,491 | 39,513 | +21.6 % |
러시아 | 364,715 | n.a | - |
한국 | 9,512 | 11,156 | +17.3 % |
세계전체 | 1,259,209 | 835,242 | -33.7 % |
동북아시아3개국 | 72,012 | 96,718 | +34.3 % |
비단 중국, 일본의 군사력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국가들 모두가 군비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이미 북한은 핵폭탄을 보유했다고 선언했고, 대만,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에 이르기 까지 아시아 지역 모든 나라들이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냉전이 끝난 후 오히려 “안보상의 불안감”을 더욱 크게 느끼기 때문에 군사비를 증가 시킨 것이다.5) 위의 표 1에 나타난 간단한 통계자료만 살펴보더라도 아시아 국가들의 군비증강상태를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군비증강이 눈에 뜨이는 이유는 냉전이 종식된 이후 아시아 국가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국방을 담당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도 군비가 일부 증강되기는 했지만 주변국들에 비교하면 국방비의 절대액수에서는 물론 그 비율상으로도 열약한 수준이다. 국방개혁 2020안이 만들어 졌지만, 이 또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6)
3. 한미동맹의 복원
한국의 신정부가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외교 안보 과제중의 하나가 한미동맹 관계의 복원이다. 한미 동맹이 복원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재 미국이 세계 정치의 유일한 패권국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을 거스른 채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 한국 정부는 균형자론, 자주 등의 정제되지 않은 개념들을 잘못 사용함으로서 한미간 대등한 관계를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한미동맹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동맹관계란 우호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동맹은 공통의 적을 가진 나라들이 그 공통의 적에게 군사력으로 함께 대항한다는 군사개념이다. 아무리 친한 나라라 할지라도 공통의적이 없으면 동맹을 맺지 않는다. 남의 싸움에 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미동맹은 북한 혹은 국제공산주의라는 공통의 적이 존재했기 때문에 훌륭한 동맹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 이후 한국 정부는 북한을 적으로 보지 않기 시작했다. 반면 미국은 9.11 이후 북한을 미국을 위협하는 3대 적국의 하나로 선정했다. 과연 북한은 한국의 적인가 아닌가? 북한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및 현재와 같은 삶의 양식을 인정하는 나라인가? 상식을 가진 국민들은 북한의 목표가 (비록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한반도를 사회주의로 통일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 한국의 정치 경제 체제를 부인하고 있다고 믿는다. 한국 내부의 이념적 분열 상태를 광정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미동맹이 한국에게 특히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힘만으로 중국, 일본의 도전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이 다시 원활한 수준으로 돌아간다면 한국 외교 및 안보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해결될 수 있다. 일부 한국인들은 중국이 과거 미국과 같은 역할을 맡아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중국은 한국 영토 그 자체를 탐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과 동맹이 될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강대국 중에서 미국만이 한국의 영토에 대해 사활적 이익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다. 즉 미국은 한반도에서 야기되는 국제문제에 대해 해외의 균형자(Offshore Balancer)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한국처럼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가 강대국과 동맹을 맺을 경우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첫 번째 요인이 바로 영토적 요인이다.
4. 유념해야 할 안보 및 외교정책 이슈들
새로운 한국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행한 외교 및 안보 정책의 공과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북한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다 잘 안되어도 된다고 했지만, 결국 북한은 핵을 보유했다고 선언하고 핵으로 위협하는 나라가 되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고 한 한국의 행동은 북한의 인권문제, 위조지폐, 마약, 가짜담배 문제 등 궁극적으로 북한이 국제적인 범죄정권이 되는 일을 두둔 방조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평화는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평화에는 正義(Justice)의 요인이 있어야 한다. 이완용이 얻어낸 것을 평화라 할 수 없듯이 말이다.
새로운 정부는 정의에 충실하고 국제정치의 현실적 분석에 투철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힘을 기르는 과정에서 좋은 동맹을 갖는다는 사실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의로운 평화, 안보 및 외교 역량의 증진(군사력 증진, 국제협력 외교 및 한미동맹 강화), 산업 발전을 지속시킬 수 있는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 북한 체제 변화에 대한 유도 및 관리 등이 새로운 정부가 유념해야 할 안보 및 외교정책의 이슈들이다.
1)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鼻祖인 Hans J. Morgenthau 교수가 분석한 국가 이익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2) 일부 識者들조차 중국을 한국 안보를 위한 대안세력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볼 경우 중국은 한국의 영토 그 자체에 이익 (Territorial Interest)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이며 한국 안보의 잠재적 위협국이다. 이는 지난 2천년의 한-중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는 사실이다.
3) 3국시대 이래 한반도에서 야기된 모든 전쟁은 영토와 관련 있는 전쟁이었다.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영토분쟁(독도)이 있으며, 중국은 고구려역사가 자신의 역사(동시에 영토였다고)라고 주장한다. 중-일 간에도 동지나해의 섬들(釣魚臺 일본 이름으로는 尖角列島)에서 영토분쟁이 진행중에 있으며, 현재 일시적으로 잠잠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간의 아무르강 유역에서 벌어진 영토분쟁은 유명하다. 일본과 러시아 역시 북방 4개 도서를 둘러싸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4) 2001년 9.11 테러공격이후 미국의 국방비는 급증하고 있다. 2000년 일본의 군사비는 450억 달러에 이르렀다. 자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The Military Balance 2002-2003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5) Kent E. Caldor 교수는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결과 에너지 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하게 되었고 여기서 발생하는 전략적 불안감(Geostrategic Insecurity)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6) 국방개혁 2020에 대한 문제점 지적은 본 서의 송대성 박사의 논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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