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세부담율의 지속적 증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율은 1953년에는 5.5%, 1960년에는 12%, 1970년에는 15%, 1990년대말에는 19%대, 그리고 2001년에는 22%가 되었다. 지난 50년간 조세부담율이 꾸준히 증가해온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정부의 살림도 따라서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전체 국민소득에서 정부가 쓰는 돈의 비중이 커져야 할 이유는 없다. 예를들어 조세부담율을 10%로 고정시키더라도 국민소득이 커지면 정부살림도 자동적으로 커지게 된다. 조세부담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국민 일반의 씀씀이가 커지는 속도보다 정부의 씀씀이가 커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말이 된다. 정부의 서비스가 사치재가 아니라면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조세부담율은 계속 높아져 왔다. 물론 아직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서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추세로 증가하다보면 어디까지 가게될지 알 수가 없다. 특히 김대중 정부에 들어와서 본격화된 공평과세의 움직임은 조세부담율의 증가를 더욱 가속화시킬 우려가 있다.
2. 공평과세의 득과 실
소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납세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되며, 또한 고소득자일수록 고율의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는 것이 공평과세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일 것이다. 신용카드 사용의 장려, 과세특례의 축소, 음성탈루소득자에 대한 세무조사 강화 같은 것들은 모두 공평과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최근의 움직임들이다. 또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높은 세율을 부과받아야 누진세율 구조도 공평과세의 개념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같은 소득을 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은 정당하다. 그러나 총액이 일정하다는 전제하에서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공평과세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세금을 거둔다면 그것은 정당화되기 힘들다. 예를들어 소득이 같은 두 사람의 납세자가 있는데, 100만원을 거둔다고 해 보자. 그러면 한 사람으로부터만 100만원을 걷고 다른 사람으로부터는 하나도 걷지 않는 것 보다 두 사람 모두로부터 각각 50만원씩을 거두는 것이 공평하다. 그런데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그것이 아니다. 공평과세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내지 않던 두 번째 사람으로부터도 100만원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평과세가 세금총액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세금을 공평하게 거둔다는 것과 세금 총액을 얼마로 할 것인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이다. 그런데 정부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공평과세는 세수의 증가를 가져올 위험이 높다. 공평과세는 조세권 남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큰 것이다.
공평과세와 조세권의 남용간의 관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공선택(公共選擇: public choice)학파의 견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재정학자인 뷰캐넌(James Buchanan)은 이 학파를 창시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공공선택이론과 전통적 재정학이론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공무원이나 입법자를 어떻게 보느냐에 있다. 전통적 이론에서는 이들이 공공의 선(公共善)을 위해서 정책을 입안, 집행한다고 가정한다. 자신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하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것이다. 반면 공공선택이론에서는 이들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그들의 손에 놓여있는 정책이라는 것도 가능하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 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좋은 것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정책이 무엇인지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후자가 더 현실에 가깝다.
조세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예산액수가 커질수록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의 권력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들은 가능하면 많은 세금을 거두려고 한다. 그래야만 더 많은 권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자비하게 세금을 거두고 싶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덮어놓고 고율의 세금을 부과할 수는 없다. 지나친 세금은 경제활동의 왜곡을 심화시켜 국민들의 생산활동 자체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조세 징수액 자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납세자들의 반응이 세금 인상에 대한 제약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공평과세는 정부의 징세 노력에 대한 납세자들의 반응 정도에 영향을 미침으로서, 결과적으로 징세액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공평과세의 이상을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납세자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세금의 그물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세금을 인상할 때 납세자는 어쩔 도리 없이 세금을 내야만 하고, 인상 전에 해오던 일은 계속해야만 한다. 그만큼 국민소득 자체의 손실이 작은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세금 인상시 느끼는 제약은 작다.
반대로 공평과세가 아닌 상황을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와 같이 자영업자가 세금을 아주 작게 내는 상황은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정부가 근로소득자로부터 함부로 세금을 올려 받을 수가 없다. 단기적으로는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불평이 제약요인이겠지만, 이 글에서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장기적인 경제활동의 변화이다. 한 부문에서의 증세(增稅)는 그 부문의 세후수익률(稅後 收益率)을 낮출 것이고 양쪽 부문에서의 세후수익률이 같아질 때까지 세금이 없거나 낮은 부문으로 사람들을 이동시킬 것이다. 이같은 반응이 신속하게 그리고 큰 규모로 일어날수록 정부는 세금 인상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만약 자영업자들이 거의 세금을 내지 않는 상태가 유지된다면, 소득세의 인상은 주로 근로소득세의 인상을 뜻할 것이고, 그 결과 많은 근로소득자들이 자영업자로 탈바꿈해 갈 것이다. 그 결과 경제활동 자체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과세 당국은 세율 인상을 꺼리게 된다. 그러나 공평과세가 정착되어 자영업을 하든 근로소득자가 되든 같은 비율의 세금을 내야 한다면, 납세자들은 정부의 세율 인상을 피해 나갈 방법이 없어진다. 자영업으로 옮기더라도 세율은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율인상이 세원의 축소를 초래하지 않으며, 당국은 마음놓고 세금을 거둘 수 있게 된다.
나라를 운영함에 있어 세금은 분명 필요하다.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하고, 도둑도 잡아야 하며, 도로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쓰는 돈은 많은 비효율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가 하는 일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것, 그리고 정부는 돈을 낭비하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널려 알려진 이유들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비효율의 원인이 있다. 정부 돈을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쓰이도록 하기 위해 민간인들간의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공무원이나 정치인들과 친해지는 데에, 그리고 그것을 은폐하는 데에, 돈을 달라고 데모를 하는 데에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비생산적 활동이다. 세금의 규모가 늘어날수록 국민들은 생산적 활동보다는 더욱 더 그런 낭비적 활동에 몰입하게 된다. 공공선택학파는 공평과세가 그런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3. 우리의 조세 현실
우리 조세 행정의 현실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꼭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공공선택학파가 우려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짙게 든다. 조세부담율은 거의 매년 예외 없이 증가해왔다. 새로운 세금이 만들어질 때 과거의 세금을 없애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없애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어떤 명분으로든 다른 곳에서 보충하려고 한다.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한 결과 2조 정도의 세수가 더 걷혔다고 하는데도, 세수 증가분 만큼 세율을 내리겠다는 발표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덜 걷힌 것에 대해서는 안달복달하면서도 더 많이 거둔 것에 대해서는 모른척하고 마는 것이 우리 조세 행정의 현실이다.
정부는 늘 돈이 부족하다고 한다. 국민들의 요구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돈은 늘 부족하다. 하지만 돈이 부족한 것은 정부 만이 아니다. 납세자들도 늘 돈이 부족하다. 길가는 사람 아무나를 붙들고 물어보라. 돈이 남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아마도 금방 복권에 당첨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돈이 부족하다고 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조세부담율이 늘어난다는 것은 더 많은 돈을 돈 번 장본인이 아니라 정부가 갖다 쓴다는 것을 뜻한다. 소득이 늘수록, 시간이 갈수록 민간보다 정부가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는 타당한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공평과세의 추구는 그런 경향을 더욱 심화시켜갈 위험을 안고 있다.
4. 조세부담율의 제한
공평과세가 안고 있는 위험은 정치나 행정이 징세권을 남용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만약 그런 염려가 없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은 당연히 공평과세이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것은 공평과세를 추구하면서 정부의 징세권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조세법률주의라는 것이 있어서 입법부가 행정부의 징세권을 제약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입법부가 행정부를 제약하는 역할을 어느 정도나 하고 있는지 의문이며, 입법부 자체가 징세권을 남용할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힘들다. 따라서 아예 헌법에 조세부담율의 상한선을 못박아 둘 것을 제안한다. 즉 정부가 거두는 조세의 총액이 GNP의 일정 비율(예를들어 20%)을 초과하지 못한다라는 조항을 두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조세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기존의 세금을 없애야 할 것이다.
5. 누진과세에 대한 인덱싱의 필요성
공평과세의 또 다른 측면인 누진과세도 조세부담율의 지속적 상승을 초래한다. 누진세란 소득이 높아질수록 세율도 덩달아 올라가는 조세다. 부자로부터 많은 돈을 거두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소득의 재분배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 취지를 인정해 보자. 여기서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는 국민 전체의 평균 소득이 올라가면서 자동적으로 평균 세율이 올라가는 현상이다. 지난 해에 우리나라의 중간소득을 벌어들인 사람이 연간 3600만원을 벌어 평균세율이 15%였다고 해 보자. 만약 올해 그 중간소득자의 소득이 4000만원이 된다면 세율은 (예를들어) 17%로 오르게 된다. 누진세의 취지는 상대적인 부자에게서 많이 거두어다가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것이지, 소득이 상승하면서 국민들의 평균적인 세부담을 늘리려는 것이 아니다. 평균세율의 상승은 소득 재분배라는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누진구조로 되어 있지 않은 세금을 생각해 보면 필자의 말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부가가치세의 세율 10%라는 숫자는 우리의 소득수준이 얼마가 되든 변함이 없다.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부가가치세의 세율도 같이 올라가는 식으로 법을 개정하려 한다고 해 보자. 과연 어느 국민이, 그리고 어느 국회의원이 그 같은 개정안에 찬동하겠는가. 그런데도 우리의 누진세는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국민들이나 국회의원들이 누진세의 그 같은 효과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면 당한다.
누진세 과세표준을 인덱싱(Indexing)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중간소득을 번 사람의 과세표준이 작년과 같아지게 하는 지수를 구해서, 모든 사람의 과세표준에 곱해주는 방식이다. 위의 예에서 4000만원을 3600만원으로 만들기 위한 지수는 0.9이다. 그 숫자를 모든 납세자들의 과세표준에 곱해주면 납세자 전체의 평균세율은 대체로 작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번거로운 일이긴 하지만 누진세 하에서의 자동적인 세율인상을 막기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6. 납세자의 자각이 필요하다.
조직은 확장 욕구를 가지고 있다. 정부 조직이라고 해서 예외가 일 수는 없다. 늘 더 많은 인력과 더 많은 예산을 요구한다. 시장에서 활동하는 조직들은 도산의 압력이 그것을 견제한다. 정부에게는 그런 압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납세자들의 저항을 통해서 정부 조직의 확장 욕구를 제어할 수밖에 없다. 징세권 남용에 대한 제한 장치 없이 공평과세만을 요구한다면, 납세자들 스스로가 정부 조직 확장욕의 제물로 변해 갈 것이다.
참고문헌
G, Brennan and J. Buchanan, The Power to Tax,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0.
김정호(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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