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한국정부의 대미 공조체제 회복을 위한 제안

이춘근 / 2002-12-06 / 조회: 5,499
No.054

1. 서론

김대중 정권과 미국의 관계는 형식적인 모습과는 달리 거의 파탄 상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강조하는 대미 동맹관계, 대 테러전쟁 적극 지원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정부가 행하고 있는 다수의 정책들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배치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의 朝野는 최근 한국의 반미운동을 한국정부가 방관하거나 혹은 뒤에서 조정하는 것이라고 까지 생각하고 있는 정도였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 정책에서 화해 협력만을 강조하고 미국이 원하던 북한의 대량파괴 무기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을 지켜왔다. 오히려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라는 태도를 취했다.

우라늄을 통한 북한의 핵 개발 사실의 시인이 공식 발표된 2002년 10월 17일 이후, 미국과 북한이 정면충돌 할 가능성도 야기되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 미국은 군사력을 사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의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평화적인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핵문제 해결을 위한 경제지원의 일단중지라는 방안조차 평화적인 방안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기왕의 대북 화해 정책은 모두 그대로 유지하면서 북한의 핵 개발 포기를 설득하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결국 대미 관계의 간극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미군 장갑차 사고로 숨진 두 여학생 관련 재판에서 미군이 무죄로 평결된 이후 것 잡을 수 없는 반미 분위기에 대해서도 김대중 정부는 거의 수수 방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미국의 대북한 정책, 한국의 대북한 정책은 점차 다른 방향으로 진전되는 듯 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북한을 무력 공격하게 된다면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 미국을 뜯어말릴 수 있는가 ? 지금과 같은 한미 관계라면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야할 변수로 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국 스스로 북한의 대량파괴 무기 해결 문제를 미국에게 일임한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대북 정책은 핵무기 제거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한국의 대북한 정책은 기왕의 대북 지원 정책을 지속하는데 맞추어져 있다. 미국과 한국의 대북 정책은 수단은 물론 목표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여진다.
본 에세이는 김대중 정부 당시 야기된 한미 갈등을 정리 해 보고 차기 한국 정부는 한미 동맹관계의 복원을 위해 힘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와 그 방법에 관한 정책을 제안해 본다는 의미에서 작성되었다.

2. 김대중 정부와 한미관계 갈등의 본질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의 제 2 기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 기간 중 한미 관계는 대과 없이 진행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사이에 긴밀할 유대 관계 및 특히 대북 정책 에 대한 공조관계는 성립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정부는 한국정부의 대북 정책인 햇볕정책을 미국의 대북 정책인 Engagement Policy 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Engagement Policy를 '포용정책' 이라고 번역하고 햇볕정책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Engagement Policy 란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개입' 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용어였다. 물론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특별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시행하기 보다 당시 미국 외교 정책의 일반원칙인 개입과 확대(Engagement and Enlargement), 즉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미국은 세계에 개입한다는 원칙을 보편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다. 또한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의 제네바 핵 합의를 시간 벌기용으로 까지 생각하며 북한이 저절로 붕괴할 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었다.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인 Selig Harrison은 그의 최근 저서 The Korean End Game에서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붕괴를 상정하고 1994년 북한과 핵 협정을 체결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적극적인 정책은 아니었다.
만약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목표가 '북한체제의 유지' 가 아니라 '북한 체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었다면 한미 양국의 대 북한 정책에는 원칙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정부의 대북한 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고 2000년 6월 15일 평양 회담 이후 한미관계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대북 정책을 둘러싼 한미 관계가 간극을 보이고 있다는 표시가 되었다.

남북한간 정상회담이후 한국정부는 외교안보수석을 미국에 파견하여 회담의 성과를 설명했지만 미국 측은 한국 외교 안보수석의 설명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고 직접 국무장관을 한국에 파견하여 남북 정상회담에 관해 물은바 있다. 미국은 정상 회담의 결과에 대해서는 물론 남북 정상회담이 준비되고 성사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의구심과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의 준비 과정에서 미국과의 공조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잠재적 적성국인 중국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2000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한편을 편드는 것처럼 비추어 졌다. 한국정부는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클린턴 정부와는 현격한 견해 차이를 보이는 부시 행정부가 집권할 경우에 대비할 수 있는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행정부가 집권한 2001년 1월 이후 한미 관계는 계속 악화되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모색하기 시작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한국의 대북 햇볕정책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한국의 대북 정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오히려 국제적인 룰을 깨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현금지원을 통해) 생각하고 있음이 한미간에 야기된 갈등의 요인이다. 즉 미국은 북한의 현 체제를 믿을 수 없는 체제로 생각하고 당근만이 아니라 채찍을 통해 북한의 행동, 궁극적으로 체제를 변경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는 반면 한국 정부는 북한을 믿을 수 있는 체제라고 보고 있으며, 대북 정책으로는 오직 대화와 협력이라는 수단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대량파괴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남북 대화 및 접촉과정에서 이 문제를 제기해 줄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대량파괴 무기 특히 핵무기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일이라며 이 문제를 회피했다

3. 9.11 이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한미갈등의 심화

9.11 이후 한미관계는 한미 동맹 50년 사상 最低点에 도달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우호국이기보다는 오히려 적대적인 상황이다. 미국은 9.11 테러이후 즉각 테러세력을 근절하기 위한 국가안보 전략을 수립했고 테러리즘과 전쟁하는 가운데 테러를 지원하는 민족국가들을 포함 시켰다. 2002년 1월 29일 연두 국정 연설을 통해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테러를 지원하는 나라로 지목 '악의 축' 이라 명명했다. 이는 곧 한국 시민사회는 물론 정부 지도세력 내에서도 반미주의를 불러 일으켰다.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가 억울하게 금메달을 잃게된 사건도 반미와 결부되었다. 그리고 미군 장갑차 사고로 숨진 여중생에 대한 무죄 판결은 최악의 반미 분위기를 산출해 내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SOFA를 개정하는 차원을 넘어 미군철수, 抗美의 수준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이념적으로 미국과 상치하지 않는다면 반미주의가 이 정도로 정치화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현 정권의 책임이다. 물론 한미 관계가 악화되고 궁극적으로 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는 것이 한국 사회 일각의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 국민들은 미국과 적국이 된다는 것을 상상하지 않고 있으며 주한 미군의 주둔을 원하고 있다. 테러전쟁 시대의 국제정치 변화는 반미는 곧 미국과 적대국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대테러 전쟁을 치르는 와중의 미국은 미국편이냐 아니냐를 보다 분명하게 요구하고 있다. 테러세력을 편드는 나라는 미국의적이라고 분명히 언급한바 있다.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이 테러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이 한국의 딜레마다. 그래서 정치가들이 이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국민의 대부분은 미국과의 관계가 단절됨이 아니라 보다 협력적이고 우호적인 한미 관계가 재정비되기를 바랄 것이다.
지금 미국정부는 북한을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목표는 국제테러를 지원하지 않을 체제로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변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대북 정책과 정면 충돌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미국은 북한의 현상을 변경시키려는데 한국은 북한의 현상을 유지시키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미 갈등의 본질이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4. 한국 신 정부의 대미관계 복원을 위한 방안

외교정책이란 국제환경에 적응(adapt)하기 위한 정책이다. 강대국의 경우조차 국제체제에의 적응을 통해 국가안보, 경제 발전 등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급수준의국가로서 국제체제를 변경시키기보다는 적응함으로서 보다 큰 국가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행태는 국제환경에의 적응이라기보다 국제환경을 거스르는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세계화의 시대를 부르짖는 한편 열정적인 민족주의 기운이 한국 사회에 대단히 팽배하다. 스포츠, 문화 , 경제, 학문, 국가 안보 등 거의 모든 부분에 대미 의존도가 심화되는 와중에서 반미기운도 한껏 고조되고 있다. 국제정치의 전반적인 모습이 평화무드일 경우 이 같은 상반된 모습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2002년 연말인 현재 국제정치 무드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다.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특이한 종류의 전쟁은 만성적인 국제긴장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 전쟁을 주도하는 핵심이 미국이며 미국이 수행하려는 대 테러戰爭의 戰場중 하나가 한반도인 것이다.
이 같은 위중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문제가 이라크 식으로 해결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한미 공조의 복원은 시급한 것이다.

우선 한국의 새 행정부는 미국과 대북한 정책을 조율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한 정책의 수단과 목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며 이를 위해 긴밀한 협력관계를 설립해야 한다.

두 번째로 한미동맹관계의 문제점이 되고 있는 형식적 절차적 부분들(예로서 주둔군 지위협정에 나타나는 문제 등)을 개정해 나가야 한다. 이념적으로 일방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전문가들에 의한 현재의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진단, 개선책,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의 비교 등의 문제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세 번째로 한국내의 반미운동에 대한 계도가 필요하다. 일부 급진주의자들은 미군 철수 그 자체를 목표로 반미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불평등한 조항의 개선을 원하지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지 않는다.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미국에 대한 憧憬과 反美가 혼재하고 있고 국민들 사이에도 미국에 대한 극도의 동경(예로서 아이를 미국 시민권자로 만들기 위한 원정 출산 등)과 이러한 행동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한 반미 감정의 표출 등 혼란 상황을 정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네 번째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중요성을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해이해진 국가안보 개념에 대한 匡正이 선행되어야 이문제도 풀 릴 수 있다. 미국을 이용하여 우리의 국가안보를 확보하는 등 得을 찾는 用美의 지혜를 계발해야 한다.
다섯 번째로 미국이 한국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 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의 홍보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시민들이 한국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사실(미군이 한국에 와있다는 것을 아는 미국 시민이 미국 국민 중 몇 % 나 될까 ?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국 일반 시민 중 한국의 위치, 한국이라는 나라, 미국 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10% 정도나 될까 의문이다. 미국 유수 대학들의 아시아관련 도서관을 가보면 이 같은 상황은 너무 분명해 진다. 일본과 중국서적은 수 만 권씩 있지만 한국 서적은 수 백 권에도 미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한국에 진정한 미국문제 전문가가 몇이나 되는가? 미국의 정치, 경제, 국방에 관한 전문가 양성은 물론 미국의 역사, 문화에 관한 전문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 미국의 정책을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의 정책도 효과적으로 수립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최소한 1-20년 이상 앞으로의 국제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결과 때문에도 불필요한 갈등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새로이 수립된 한국 정부는 50년의 동맹국, 그리고 특히 현재 초강대국의 수준을 넘어 극초강대국(hyper power)의 지위를 차지한 미국과 우호 협력관계를 통해서 한국의 국가이익을 훨씬 용이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동안 붕괴상태에 이른 한미 공조 체계를 복원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李春根(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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