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황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의 합병과 외국자본의 유입에 의한 국내 금융기관의 인수 등 금융산업에 대한 진입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금융기관을 설립하고 경영하는데 많은 정부규제가 존재한다. 은행산업의 진입규제는 은행을 신설하거나 지점을 설치하는 것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말한다. 인수합병에 대한 규제도 은행의 진입규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으므로 이 문제도 함께 다루기로 한다.
신규진입은 은행법 제8조와 제9조에 나와 있다. 은행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제8조 1항). 그런데 금융감독위원회가 그 인가 여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사업계획성의 타당성, 자본금 및 주주구성과 주식인수자금의 적정성, 발기인 또는 경영진의 경영능력과 성실성 및 공익성을 확인한다(제8조 2항). 한편 확인방법 등에 관한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다 (제8조 2항). 여기에 금융감독위원회가 인가에 조건을 붙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제8조 3항). 또한 은행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이 필요한데, 다만 전국을 영업구역으로 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250억원 이상이다 (은행법 제9조).
지점설치에 대한 규제는 은행법 제13에 나타나 있다. 은행이 지점, 대리점 기타 영업소 또는 사업소를 외국에 신설하거나 본점을 다른 특별시, 광역시, 도의 지역으로 이전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그 신설 또는 이전계획을 작성하여 금융감독위원회와 협의하도록 되어 있다.
인수합병에 대한 규제는 은행법 제55조와 관련이 있다. 은행이 분할 또는 다른 은행과 합병하거나. 해산 또는 은행업의 폐지, 영업의 전부 또는 일부의 양도 및 양수 시 금융감독위원회의 인가를 받도록 되어 있으며, 그 인가 시 금융감독위원회가 조건을 붙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2, 문제점
은행설립의 인가에 대한 정당성은 정보의 비대칭 하에서 역선택 문제를 막기 위한 수단에서 찾을 수 있다. 은행을 설립한 사람과 예금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한다. 즉 예금자들이 정보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은행을 설립한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혹은 은행을 잘 경영할 수 있는 사람인지 잘 구별하지 못한다. 따라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가 은행을 설립하여 불특정 다수로부터 예금을 받아 잠적할 경우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그러한 자를 사전에 선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은행 인가 시 정부가 사업계획성의 타당성, 자본금 및 주주구성과 주식인수자금의 적정성, 발기인 또는 경영진의 경영능력과 성실성 및 공익성을 확인한다는 것은 중요하며 매우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경영진의 경영능력과 성실성 및 공익성“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금융감독위원회의 자의적인 판단과 재량적 행위의 가능성이 너무 높다. 또한 확인하는 방법 등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는 것 역시 정부의 재량권 행사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것은 인허가권자가 은행설립허가료를 직접 징수하거나 간접적, 암묵적으로 대가를 받는 렌트추구행위를 할 유인을 제공한다. 1994년과 1996년 종합금융회사의 대량 인허가 과정에서 재경원 간부들이 수뢰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에서 그것을 유추할 수 있다(중앙일보, 1998. 5. 28.). 따라서 역선택을 막기 위해 은행의 인가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 기준을 분명하게 은행법에 명기하여 규제당국의 자의적인 판단과 재량권을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립자본금 역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금융기관을 운영하려는 사람을 가려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금이 적으면 적을수록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은행을 운영하는 것이 그 만큼 더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설립의 자본금요구는 이러한 역선택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또한 자본금은 금융기관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경우 예금자를 보호할 수 있는 완충기능을 한다. 따라서 은행의 안전성을 위한 규제에서 자본금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은행의 최저자본금 수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상법상 주식회사 설립 시 최저자본금은 5,000만원이고, 증권회사 설립 시 증권업 전반에 걸쳐 영업하는 경우에는 자본금 500억원 이상, 위탁매매와 중개, 대리, 주선만을 영업으로 하는 경우에는 자본금 300억원 이상, 위탁매매만을 영업으로 하는 경우에는 자본금 100억원 이상, 보험업을 영위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인보험회사의 경우에는 100억원 이상, 손해보험회사의 경우에는 300억원 이상과 비교해 볼 때 은행의 최저자본금수준이 너무 높다.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서는 한국의 최저자본금 수준은 지나치게 높다. 미국의 경우 은행법에 의해서 요구되는 최저자본금은 은행이 설립되는 지역의 크기에 따라 5만 달러에서 20만 달러가 요구된다. 은행이 설립되는 지역의 인구가 6,000명 이하이면 5만 달러, 인구가 6,000명 이상 50,000명 이하이면 10만 달러, 그리고 그 이상의 대도시에서는 20만 달러이다. 그러나 은행의 인가를 맡고 있는 통화감독청(the 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의 규제에 따라 일반적으로 최저자본금은 1백만 달러이다. 일본은 10억엔, 영국은 1백만 파운드, 그리고 뉴질랜드는 1천5백만 뉴질랜드달러이다.
현재 은행이 다른 지역에 진출하려고 할 경우 사전에 금융감독위원회와 협의하게 되어 있다. 이 규제는 과거에 비해 많이 완화된 것이긴 하지만 은행산업을 경쟁체제로 만드는 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가 협의 과정에서 은행의 다른 지역으로의 진출을 거부하는 의사를 밝혀 실질적으로 다른 지역으로의 진출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합병 시 사전에 금융감독위원회의 인가를 받도록 하는 것 역시 은행간의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산업에서 기업 간 경쟁을 높이기 위한 필요조건이 자유로운 인수합병이다. 적대적 인수합병이 허용되어야 산업이 경쟁적으로 된다. 그렇지 않고 일일이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인수합병이 정치적 힘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하여 시장의 힘에 의하지 않고 정부가 주도하여 은행간 합병이 유도될 가능성이 높다.
인수합병에 대한 규제는 세계적인 추세인 금융기관의 대형화와 겸업화를 효과적으로 추진하는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대형금융기관간 합병이 이루어지는 추세이다. 세계금융산업은 거대 금융그룹 위주로 재편되는 중이다. 세계적인 거대 금융그룹들의 국내진출에 대비한 경쟁력확보가 절실한 과제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은행간 대형합병은 경쟁력 제고보다는 부실처리가 주목적이고 정부주도로 M&A가 성사되고 있다.
은행간 인수합병은 이미 인가를 받은 은행들에 의한 결합 행위이다. 따라서 신규진입 시 우려하는 역선택의 문제는 없다. 신규진입의 경우 역선택을 우려로 인해 인가에 대한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지만, 이미 역선택의 문제 관한 한 검증이 끝난 은행들간의 결합에서 다시 인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과다 규제이다.
3. 규제완화 방안
진입규제는 은행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하여 은행의 부실화를 사전에 방지하면 은행의 건전성이 확보되어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예금자가 보호된다는 논거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진입규제는 경쟁을 저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경쟁은 은행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함으로써 은행소비자와 경제전체에 이득을 가져다 준다. 은행산업이 성장하여 시장이 커지면 은행업으로부터 얻는 이윤이 증가할 수 있다. 또 기존의 은행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진입장벽이 없는 경우 그러한 잠재적 이윤을 보고 은행산업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은행은 퇴출 되면서 소비자들이 이익을 볼 것이다.
자원은 항상 제한되어 있다. 비효율적인 기업이 퇴출 되지 않으면 오히려 효율적인 기업이 희소한 값진 자원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가고 경제전체에 손실을 가져온다. 진입규제는 경쟁의 강도를 제한하고 비효율적인 은행의 퇴출 가능성을 줄인다. 결과적으로 진입규제는 퇴출장벽이 되어 비효율적인 은행을 보호하는 장치가 된다. 진입규제는 금융서비스의 경쟁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은행들을 도와주는 것일 뿐 소비자와 경제전체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진입규제는 완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서 다음과 같은 진입규제 완화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인가심사에서 규제당국의 자유재량적 행위를 축소하기 위해 은행법 제8조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8조(은행의 인가)
① 은행업을 영위하고자 하는 자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② 은행업을 영위하고자 하는 자가 금융감독위원회에 인가신청서를 제출 시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1. 영업의 종류, 조직구조 및 내부통제시스템 등이 포함된 사업계획서
2. 자본금 및 주식인수자금에 관한 적절한 입증
3. 주주구성 및 경영진에 관한 사항
4. 신청인과 경영진의 신용도 판단에 필요한 사항
5. 신청인과 경영진의 금융기관경영에 필요한 전문성에 관한 사항
둘째, 최저자본금 액수를 대폭 낮추어 비록 소형자본이라도 건전한 경영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은행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여 자유로운 경쟁질서에 의해 은행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지점설치에 대해 사전에 금융감독위원회와 협의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사후에 신고하는 것으로 한다. 즉 은행이 지점, 대리점 기타 영업소 또는 사업소를 외국에 신설하고 본점을 다른 특별시, 광역시, 도의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사후에 금융감독위원회에 신고한다.
넷째, 인수합병에 대해 사전에 금융감독위원회의 인가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을 사후에 신고하는 것으로 한다. 한편 금융기관의 퇴출과 합병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시장의 힘에 의하지 않고 정부가 주도하여 금융기관의 합병을 유도하려고 할 경우 경쟁력 있는 금융기관보다는 오히려 비효율적이고 경쟁력이 없는 금융기관을 초래할 수 있다.
합병을 유도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규제완화를 통한 경쟁촉진과 합리적인 퇴출구조의 설정이다. 실질적인 규제완화로 금융기관들이 본격적인 경쟁을 하고 그 경쟁의 결과로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써 합병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건실한 금융기관이든 부실한 금융기관이든 간에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합병과 대형화가 이루어지도록 정부가 그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실금융기관의 합병 등에 따른 정리해고와 같은 고용조정제도가 실질적으로 작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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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ey, Jonathan R. and Miller, Geoffrey P. Banking Law and Regulation, Aspen Law & Business(A division of Aspen publishers, Inc.) 1997.
(안재욱, 경희대학교 교수, 경제학, jwa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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