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정공시제란?
2002년 11월 1일, 우리나라에도 공정공시가 도입되었다. 2000년 10월 미국이 시작한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의 공정공시 제도 시행 국가가 된 셈이다.
공정공시란 상장기업의 임직원이 주가에 영향을 미칠만한 중요 정보를 특정인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공정공시의 대상이 되는 정보는 회사전체의 영업활동 및 기업실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제반사항에 관한 정보를 뜻한다. 이런 정보를 다음에 열거하는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제공하게 되었을 경우는 지체없이 증권거래소에 신고해서 공정공시를 해야 한다. 여기서 특정인이란 증권사, 투자자문사의 임직원(주로 애널리스트)들, 기관투자자 및 그 임직원, 증권정보사이트의 임직원, 기타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를 이용해서 해당 상장기업의 주식 등 유가증권을 거래할 것이 예상되는 유가증권 소유자 등이다. 해당 기업과 비밀유지를 약속한 사람, 신용평가기관, 변호사 공인중개사 등에게 선별적으로 제공한 정보는 공정공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위의 정보를 이런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제공했으면 지체없이 그 내용을 증권거래소를 통해서 모든 투자자들에게 공시해야 한다. 공정공시의무를 위반하면, 수시공시 위반과 동일한 종류의 제재를 받게 된다. 즉 불성실공시 사실의 공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매매거래 정지, 관리종목 지정 및 상장폐지 등의 제재가 따른다. 다만, 도입 초기인 점을 감안해서 당분간 공정공시 2회 위반을 수시공시 1회 위반과 같은 것은 것으로 간주한다.
2. 공정공시제의 도입 이유
공정공시제는 소위 주식시장에서의 정보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정보비대칭 현상이란 투자자 중 누군가는 좋은 정보를 가지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기업들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에게 선택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유리한 투자추천을 받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얻은 내부자 정보를 자기의 고객들에게만 제공해서 다른 일반 소액투자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기관투자자들도 선택적 정보제공의 수혜자였다. 이런 현상이 정보의 비대칭현상이다. 좋은 정보를 가진 투자자는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올리게 된다. 또 이런 정보가 주가조작에 사용되는 경우들도 종종 있어왔다. 공정공시제는 소위 정보의 비대칭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위와 같은 문제들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되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주가이다. 기업의 선택적 정보제공 때문에 소액투자자들이 증권시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없고 그 결과 투자가 줄고 주가도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 이 제도를 도입했던 당시 미국 SEC 의장 아서 레빗의 견해였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정보의 비대칭 현상은 줄어들지만, 주식시장에 공급되는 정보의 질과 양이 모두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가는 오히려 낮아지고, 정보 부족으로 인해 주가의 변동폭은 커진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는 실제의 결과를 통해서 판단될 문제다.
3. 공정공시제 실시 이후 나타난 현상들
레빗의 사임 이후 권한대행을 맡았던 웅거 역시 도입 당시부터 반대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제도의 효과를 조사를 해 본 결과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기업들이 입을 닫는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United Airlines나 Sears Roebuck 같은 회사들은 직원들에게 내 놓고 입조심을 시켰다. 기업 관계자들이 애널리스트들과의 접촉도 꺼리게 되었다. 물론 증권거래소를 통한 공시의 회수가 늘고 속도도 빨라진 것이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투자자들이 접하게 되는 정보의 실질적 질이나 양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의 표현대로 소위 ‘추워서 몸을 웅크리는 현상(Chilling Out)’이 일어난 것이다. 또 애널리스트의 정보생산이 줄어든 결과 일반투자자들이 기업에 의해 공시된 정보에 직접적으로 반응했고 그로 인해 주가의 등락폭이 커지는 증시불안정성이 나타나기도 했다. 애널리스트의 정보 해석과 우선순위가 부여가 증시의 안정에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에 대한 선택적 공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여전히 기업관계자가 그같은 직업적 투자가 및 투자조언가들에게 선택적으로 기업정보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그 방법이 교묘해지고 비용이 높아졌다고 한다. 애널리스트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하지 않음으로써 간접적으로 정보를 암시하거나, 개별적으로는 공정공시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하찮은 정보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의미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을 쓰거나, 또는 핵심을 피하는 질의 응답을 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정보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게 만드는 식의 편법들이 동원된다고 한다. 즉 공정공시로 인해 선택적 공시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다만, 그 방법이 교묘해지고, 비용은 높아진 반면 정확성은 떨어지게 된 것이다.
시작한지 한 달이 조금 지난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증권당국은 공시의 건수가 늘었다고 좋아하는 듯하다. 실제로 11월의 공시건수는 하루 평균 64건으로서 도입 이전인 10월에 비해 40% 늘었다. 그러나 공시건수가 늘어났다고 정보공급이 증가한 것은 아니다. 정보의 실질적 질과 양은 오히려 줄고 있다. 공정공시로 신고된 정보들이 기업홍보자료 같은 쓰레기 정보라고 푸념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보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기업의 홍보팀이 기자, 투자자 또는 일부의 기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가지던 기자간담회나 제품설명회, 사업설명회의 내용이 공정공시 위반을 피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에 신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공정공시된 대부분의 내용은 보도자료나 투자설명회 등을 통해 어차피 일반에 공개될 내용이었던 것이다. 애널리스트나 기관투자자와의 일대일면담이나 전화통화를 통해서 선택적으로 제공될 정보가 공정공시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내년도 사업전망과 관련된 CEO의 기자간담회들이 잇달아 취소됐고, 임직원들에게도 입단속을 시키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휴대전화나 이메일을 단속하자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기업들이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과의 면담을 기피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혹시라도 외부인과 대화를 하다가 기업에 관한 정보가 흘러나갈 경우 잘못하면 공정공시 위반으로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투자와 관련된 기업정보는 일원화된 공식적인 창구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여러 경로를 통해서 흘러나오던 정보들이 아예 차단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공정공시로 인해 공식적인 공시건수는 늘어났지만, 정보의 질이나 양이 모두 줄고 있다는 것이 지난 한달간의 경험으로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4. 정보의 생산과 공정공시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공정공시제도의 주창자들이 정보의 생산과정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또는 무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보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관련된 정보는 그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산해서 가지고 있다. 누구도 기업의 전모를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다. 그 중에서 누가 가진 정보가 유용하고 정확한지를 찾아내서 투자자들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가공을 해야 정보는 비로소 정보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은 이런 일을 해 왔었다. 우수한 정보를 생산한 대가로 수수료를 받거나 또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누려온 것이다. 공정공시는 정보수요자인 기관투자자나 일반투자자들의 대리인인 애널리스트들에 의한 적극적 정보생산 및 가공 행위를 차단한다. 이제 누구나 평등하게 동일한 같은 정보를 갖게 되는 대가로 적극적으로 생산된 정보, 즉 가치있는 정보를 잃게 되었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만으로 투자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공정공시의 대상이 되는 정보의 범위가 애매하다는 사실은 일차적 정보제공자인 기업 관계자들을 더욱 얼어붙게 만든다. 상장법인공시규정 제5조의2 제1항 제1호는 장래의 사업계획 또는 경영계획을 공정공시의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또 증권거래소의 공정공시운영기준 제3조의 1항에서는 “회사 전체의 영업활동 및 기업실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으로서 신규사업의 추진, 신시장의 개척, 주력업종의 변경, 회사조직의 변경, 신제품의 생산, 국내외 법인과의 전략적 제휴, 신기술의 개발, 기타 이에 준하는 사항과 관련된 계획”을 공정공시의 대상인 장래의 사업계획 또는 경영계획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과 ‘’준하는‘이라는 표현이다. 무엇이 중대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어서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업관계자의 입장에서는 중대하지 않은 것이라도 규제당국이 중대하다고 판단하면 중대한 정보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보제공자의 입장에서는 규제당국자가 어떤 것을 중대한 것으로 판단하게 될지는 사전적으로 알 수가 없다. 또 정보를 제공하던 당시에는 중대하지 않던 것이 나중에 중대한 것으로 판명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준하는‘ 이란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이 명시적으로 열거된 사항들에 준하는지는 결국 규제당국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이 무엇일지에 대해 기업관계자는 사전에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 또는 준하는 이라는 표현은 기업관계자들로 하여금 아예 입을 다물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에서는 공정공시제도의 중대성 요건이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미국에는 '막연하기 때문에 위헌' 원칙(The Void for Vagueness Doctrine)이 자리 잡고 있다. 애매한 법은 법시행자의 자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만들어 법의 남용을 초래하고 국민들의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가 택하고 있는 명확성의 원칙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법률은 명확한 용어로 규정함으로써 적용대상자에게 그 규제내용을 미리 알 수 있도록 공정한 고지를 하여 장래의 행동지침을 제공하고, 동시에 법집행자에게 객관적 판단지침을 주어 차별적이거나 자의적인 법해석을 예방할 수 있다(헌재 90헌바27등)는 내용이다. 예를들어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이라는 불온통신의 개념을 담고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2항과 동시행령 제16조가 위헌판결을 받았다(헌재 99헌마480). 공정공시제도의 기반이 되는 ’중대한 영향‘ 및 ’준하는‘ 이라는 표현도 이미 위헌판결을 받은 판결들에 못지않게 애매하다. 게다가 공정공시제도는 입법부의 의결을 거친 법률도 아니고 일개 규정이나 기준에 불과하다. 위헌 여부를 심각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5. 제안
공정공시제는 폐지해야 한다. 선택적으로 제공된 정보가 주가조작 등의 용도에 악용되는 것이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한 행위에 대한 단속을 통해서 해결할 문제다. 물론 단속이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부정한 정보이용을 막기 위해 정보의 생산활동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것보다는 낫다. 미국에서도 공정공시제의 폐지 주장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참고 문헌
J. Duggan, Regulation FD: SEC Tells Corporate Insiders to "Chill Out", Washington University Journal of Law and & Policy, vol 7, 2001, pp159-
A. Sessa, The Negative Consequences of Regulation FD on the Capital Market, New York Law School Law Review vol. 45, 2002, pp733-
N. Kappas, A Question of Materiality: Why the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s Regulation Fair Disclosure is Unconstitutionally Vague, New York Law School Law Review vol. 45, 2002, pp651-
김정호(자유기업원 부원장, kch@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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