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급 증대를 통한 토지가격 안정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서 결정된다. 토지도 예외는 아니다.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늘면 가격이 내린다. 그런데 수요를 축소해서 가격을 잡겠다는 발상은 설득력이 없다. 수요를 축소한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삶의 질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국민대다수들의 못살게 하겠다는 것은 주객의 전도임에 분명하다. 가격을 낮추려는 것은 소비자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함이다. 가격을 낮추고자 한다면 공급을 늘리는 것이 정도이다.
토지문제 해결을 위해서 우리 사회가 택해온 전략은 공급 확대가 아니라 투기억제였다. 그러나 획기적 공급증대책 없이 투기억제만을 통해서 토지/주택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투기억제책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투기적 수요 또는 가수요라는 것은 결국 실수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정책은 저밀도개발이나 필지의 세분화를 통해서 난개발 만을 초래할 뿐이다.
우리는 좁은 국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좁게 살 수 밖에 없다는 패배의식은 국민들로 하여금 과도한 토지이용규제의 개선을 요구하기보다는 인위적으로 좁아진 국토에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국토는 결코 좁지 않다. 도시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토지는 대략 전국토 면적의 5-6% 정도에 불과하다. 농지는 27%, 임야는 67%를 각각 차지한다. 만약 농지의 반, 또는 쓸 만 한 임야의 1/5 정도만 도시용으로 돌릴 수 있다면 도시용지로 쓸 수 있는 면적은 지금의 4배에 이른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우리 나라의 토지 문제는 대부분 없어질 것이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농지나 임야를 도시용지로 쓰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린벨트, 농업진흥지역제도, 임야보전제도, 수도권집중억제책 같은 것들이 모두 우리의 넓은 국토를 좁게 만드는 철조망들이다.
환경보존, 식량안보, 수도권인구집중억제 같은 논리가 그 배경을 이루고 있지만, 그리 설득력이 없는 논리들이다. 설령 논리가 타당함을 인정할지라도, 규제의 비용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는다. 규제를 통해서 얻는 혜택 보다 비용이 크다면 그 규제의 정당성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런 각도에서 볼 때, 그린벨트나 농업진흥지역 같은 제도는 정당성이 지극히 의심스러운 제도이다 이문제에 대해서는 김정호(1995)를 참조할 것.
. 그린벨트제도, 건축법에 의한 각종 밀도 및 용도제한, 농업진흥지역, 보전임지, 수도권집중억제책 등은 모두 폐지하는 것이 좋다.
규제를 풀면 토지가격이 오히려 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토지시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규제완화로 인해 도시토지의 평균가격이 어떻게 변하는가이다. 규제가 풀리는 땅의 값만을 본다면 값이 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농지나 임야로 묶였던 땅을 택지로 쓸 수 있게 되었는데 값이 안 오른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옛날보다는 싼 값으로 토지와 주택을 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경제성장과 소득증가에 걸맞도록 주거수준을 향상시키려면 토지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나라 토지제도의 기본 골격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의 가장 핵심은 그린벨트제도와 농지보호제도이다.
2. 토지정책의 지방화
가. 토지이용규제권의 지방화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토지이용규제를 풀어 버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토지는 다른 토지와 인접해 있다. 무작정 토지이용규제를 풀어 버리면 주택 옆에 홍등가가 들어설 수도 있고, 학교 옆에 도박장이 들어설 수도 있다. 경관이 수려한 숲 속에 공해공장이 들어서서 숲을 황폐화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토지이용에 대한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하다.
선진국들을 보면 동네별로 집의 색깔까지도 규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처지와 비교해 본다면 분명 지나친 규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규제인 한 문제는 없다. 자기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가족들이 스스로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네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규제를 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규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규제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필자는 이에 대한 답이 자생적인 정부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가족들이 자기 집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행동을 규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주민들이 자기 동네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규제를 만들고 규제를 당하는 체제이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한 주택단지의 주민들에게 스스로의 주거환경을 만들고 보호할 자치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정서나 선입관 같은 것들 때문에 그런 단계까지 가려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차선의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에게 토지이용에 관한 법령제정권을 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민들 스스로 자기들이 원하는 바대로 토지이용규제를 만들고 지키게 하는 것이다.
많이 위임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중요한 토지이용규제권은 중앙정부의 수중에 놓여 있다. 토지이용규제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린벨트와 농업진흥지역은 거의 지방정부의 손을 떠나 있다. 또 기타의 농지나 임야들도 도시용지로의 전용요건은 모두 중앙정부가 정해 놓고 있다. 도시계획을 비롯한 도시내의 밀도규제, 택지개발, 공단개발 등 대부분의 토지이용규제는 중요한 골격을 모두 중앙정부가 정한다. 지방정부에게 부여되는 자율권이란 그렇게 중앙정부가 정한 기준에 맞추어서 집행하는 정도의 자율권에 불과하다. 이제 기준 제정권에 대해서까지도 지방화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물론 모든 문제의 해결을 지방정부의 입법권에만 맡길 수는 없다. 특히 광역적 대기오염, 여러 지역을 관통하는 강물의 수질관리 등 지방정부의 경계를 넘어서는 문제들은 지방정부의 개별적 입법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중앙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현재의 법령들 중에서 지방정부간의 협상 가능성을 막는 법령들을 찾아내어 제거하는 것이 먼저이다. 중앙정부의 개입이라는 수단은 가장 나중에 고려되어야 할 대안이다. 독점된 권력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광역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방정부의 토지이용규제가 비효율적이 될 가능성은 있다. 이미 토지를 사용하고 있는 기존의 주민들과 앞으로 토지를 쓰려고 하는 주민들, 또는 앞으로 이 자치단체의 주민이 될 사람들간의 이해를 조정할 정치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간의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지방자치단체 내의 정치과정은 가장 효율적인 토지이용규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스스로도 자신이 그런 처지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주택을 구입해서, 해당 자치단체에 입주하기 전 까지는 본인조차도 자신이 그런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미래주민들과 기존 주민들간의 협상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기존의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것이 지방정부라면, 미래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것은 주택건축업자라고 할 수 있다. 예를들어 어떤 건축업자가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려고 신청을 했다고 해 보자. 이 업자는 실질적으로 앞으로 그 아파트에 들어와 살 미래의 주민들을 대표한다. 그런데 이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 인근의 교통이 혼잡해지고, 학교도 이부제 수업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기존의 주민들을 대표하는 지방정부는 새 아파트를 허가해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협상이 가능해지면 문제는 달라진다. 즉 업자가 인근의 도로를 확장해 주고, 학교도 새로 설치해 주며, 덤으로 기존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원까지 하나 설치해 줄 경우, 기존의 주민들도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협상이 타결된다면 기존 주민도 좋고 새로 입주하는 주민들도 좋아지게 된다. 그 비용은 아파트의 분양가에 포함될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새로운 주민과 기존주민들간에 자발적 거래가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협상은 기존 주민들과 미래의 입주자들 모두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간섭이 없다면 개발업자와 지방정부간에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개발업자와 지방정부간의 협상이 불가능하다면 지방정부의 토지이용규제는 과도해지기 십상이다. 지방주민들은 개발의 비용만을 부담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발업자와 지방정부간의 협상이 허용될 때에야 비로소 개발의 이익이 기존의 주민들에게 분배될 수 있다.
많은 것들이 이런 종류의 협상을 가로막는다. 지방정부에 대한 예산 통제, 도시계획시설에 대한 중앙정부의 간섭. 기반시설 설치비 부담에 대한 각종 규정들, 개발업자와의 협상을 백안시하는 태도, 부정부패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 등. 이런 요소들이 사라진다면 시민들 스스로의 협상 과정을 통해서 살기 좋은 동네들이 만들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토지에 관한 법령제정권을 행사해 온 국회의원들과 중앙정부의 공무원들이 기득권 상실로 인한 아픔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다.
나. 토지세의 진정한 지방화
종합토지세, 개발부담금 등 투기 억제 목적의 토지세들은 모두 폐지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토지세를 모두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투기억제 목적의 토지세들은 없애는 대신 토지세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세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토지보유세를 신설하고 토지의 과표와 세율결정권은 모두 지역주민의 대표인 지방정부에 환원해야 한다. 지방의회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면 주민투표를 통해서 세부담을 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가안정을 위해서 보유과세를 강화해야 하기 때문에 토지보유세는 아예 국세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토지보유의 부담이 늘어나면 토지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금의 한 측면만을 염두에 둔 논리이다. 거두어진 세금은 재정지출이라는 형태로 다시 사회에 환원된다. 만약 그 지출이 땅 값을 높이는 데에 사용된다면, 토지보유세의 증액이 토지 가격을 높일지 낮출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토지보유세는 기초자치단체의 세원이다. 기초자치단체의 지출들은 대개 땅값을 높이는 용도(도로, 공원 등)로 사용된다. 따라서 보유과세 강화가 땅값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확실치 않다. 만약 우리나라의 지방재정 지출이 사적재화에 대한 지출에 비해서 부족하다고 가정할 경우 보유세 강화를 통한 기초자치단체의 재정지출 증가는 오히려 땅 값을 높일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의 토지보유세가 높으니까 우리도 보유과세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도 전후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들의 높은 토지세는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주민들은 투기억제를 위해서 높은 세율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기 동네를 살기 좋게 하기 위해서(즉 땅값의 극대화를 위해서) 그런 세율을 선택하는 것이다.
개발이익의 환수를 위해서 토지세를 국가가 관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발이익은 소유자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개발이익이 소유자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옳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약이다.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이다. 소유자의 노력과 무관하게 토지 가격이 뛰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의 대가라고 불리는 임금도 노동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뛰었다. 임금의 상승을 개발이익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뚜렷한 이유 없이 토지가격이 뛰어 생기는 토지로부터의 개발이익도 환수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부의 개발허가나 또는 공공투자로 인해서 오르는 땅 값은 환수될 필요가 있다. 개발허가로 인한 가격상승분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적정한 수준의 개발허가를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 없을 경우, 개발허가권자는 개발로 인한 편익은 계산하지 않고 비용만을 계산하게 된다. 따라서 지나치게 작은 양의 개발허가를 내주려는 인센티브가 생긴다. (국가가 아니라) 개발허가권자인 지방정부에게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권한을 줄 필요가 있다. 또 지대추구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공공투자로 인한 개발이익을 환수하지 않을 경우, 서로 자기 토지 주변에 공공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로비나 집단행동을 할 인센티브가 생겨난다. 개발이익의 환수는 그렇게 낭비적인 행동을 할 인센티브를 줄이게 된다. 따라서 공공투자로 인해 발생하는 개발이익은 환수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환수의 주체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개발사업으로 인한 비용과 편익이 제대로 계산되려면 허가권자인 지방정부가 환수의 주체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중앙정부가 환수율도 정하고, 또 그것의 50%를 가져간다. 개발부담금은 모두 허가권자에게 돌려야 하며, 환수율도 지방정부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토지세의 지방화에 대해서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가해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세법률주의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결과로 보인다.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한 헌법 제59조의 본질은 ‘납세자의 집단적 동의 없이는 과세할 수 없다’는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전국에 대하여 과세되는 국세의 종목과 세율을 (국회 관할의) 법률로 결정함은 합리적이다. 국회의원은 전국민의 대표이며, 국회를 통과한 법률은 전국민의 집단적 동의를 얻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세가 아닌) 지방세의 부담수준이 (지방의회가 아닌) 국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을 조세법률주의에 합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의 숫자는 전체 의원수 중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국에 대하여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지방세의 과세대상 및 세율이 각 지역 주민들의 집단적 동의를 얻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지방세의 납세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주민이 아닌 지방자치단체 구성원으로서의 주민이다. 지방세의 부담 수준은 지역주민들의 대표기관인 지방의회나, 또는 주민투표를 통하여 결정하는 것이 조세법률주의의 진정한 의미에 더 부합된다.
토지세의 지방화와 아울러 지방재정조정제도의 개혁도 필요하다. 현재의 지방교부세 배정방식 하에서는 설령 지방정부에게 토지세의 세율 결정권을 주더라도 지역주민들이 스스로의 세부담을 높이려고 할 이유가 없다. 지방교부세 배정의 지표가 되는 기준재정수요액이 지방정부의 징세노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결정되며 지역주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금을 적게 내더라도 독립적으로 결정된 기준재정수요액과 지방세수입 간의 차이는 중앙정부가 메워 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교부세제도가 현재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지방정부들에게 토지보유세의 부담에 대한 전권을 이양하더라도 재정적 독립보다는 현재처럼 중앙정부에 의존하려는 성향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토지세의 진정한 지방화는 지방교부세의 폐지나, 또는 지역주민들의 재정자립 노력을 장려하는 방향으로의 근본적인 개혁과 동시에 추진될 과제이다.
3. 정당한 보상.
개발제한구역이나 녹지지역,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부지, 농업진흥지역, 보전임지, 군사시설보호구역, 국립공원 등의 경계 내에 포함되는 사유지 등 모든 특별한 희생이 요구되는 토지 재산권의 규제에 대해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공공의 필요라는 것도 해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정부나 공공부문이 하는 일은 모두 공공의 필요로 정당화되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시장을 통해서 토지를 확보할 수 있는 경우는 토지 수용권을 발동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사용하는 자원도 그것의 기회비용을 치르는 것이 장부의 효율적 자원이용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공용수용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대규모의 시설이나, 네트웍이 필요한 시설들이다. 도로, 철도, 공항 같은 시설을 말한다. 이럴 경우, 각 필지의 소유자들은 완전독점 상태를 이루게 되고, 모든 소유자들이 가장 나중에 파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따라서 그런 사업을 할 경우 토지의 실질적인 기회비용 보다 훨씬 높은 기회비용을 치러야 할 경우가 생긴다. 그 결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 보다 적은 양이 공급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수용권은 그럴 때에 비로소 정당화될 수 있다. 즉 수용권이 필요한 것은 공공의 필요 때문이라기보다는 필지합병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재건축사업 같은 경우는 민간의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수용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그리 크지 않은 공공기관의 청사 같이 많은 필지의 합병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는, 정부 시설을 건설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수용권 발동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4. 진정한 부동산투자신탁의 허용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은 첨예한 사회적 갈등의 지원지여 왔다. 많은 이들이 토지가격상승을 통한 개발이익의 분배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우 당연해 보이는 논리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급격한 경제성장은 토지가치 만을 높여 놓은 것이 아니다. 기업의 가치도 크게 높아진 결과 주식투자자들도 큰 이익을 보았다. 그런데 토지와는 달리 주식 가격 상승은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주식가격이 오르길 바라고 있다. 두 시장간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가장 중요한 차이는 주식시장에는 몇 만원만 있어도 참여할 수 있다는 반면 토지시장에의 참여는 웬만한 정도의 돈으로는 엄두도 내기 힘들다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주식시장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토지시장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다른 투자대상들과 비교하여 볼 때, 토지는 분할에 따른 불이익이 크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증권이나, 채권, 예금 등 금융자산의 경우 큰 액수를 투자하든 작은 액수를 투자하든 수익률은 동일하다. 그러나 토지에 대한 투자는 다른 면이 있다. 토지이용의 효율성은 필지의 규모가 클수록 커진다. 따라서 같은 토지라 할지라도 분할하지 않고 취득하려 하려는 자가 제시하는 단위 토지 면적당 지불용의가격은 여럿이 분할하여 취득하려할 경우 단위토지면적에 대하여 제시되는 지불용의가격에 비하여 높게 마련이다. 만약 자본시장이 완전하여 누구나 자신이 취득하려는 토지를 담보로 하여 원하는 만큼의 자본을 차입할 수 있다면 이러한 토지시장의 특성이 토지시장에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효율성의 상실을 감수하면서 토지를 분할 취득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나 자본시장은 아직도 상당히 불완전하여서 큰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자금동원능력이 작은 사람의 경우 토지를 취득하려면 분할 취득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은 큰 자본을 동원하여 토지를 분할하지 않고도 취득할 수 있는 자와의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다. 전자의 평당 지불의사가 후자에 비해서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지가격이 오르더라도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개발이익의 불공평한 분배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분할취득의 불이익과 개발이익의 편중된 분배와는 별 관계도 없다. 분할취득이 어렵기로 따지자면 기업이 토지보다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이라는 수단이 있기 때문에 작은 돈으로도 기업의 분할취득이 가능하다. 토지에 대해서도 그런 식의 분할취득 방식이 나올 만 한데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투자자들의 돈을 맡아서 대신 투기를 해 주는 기업이 나올 수 없도록 규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발이익의 분배를 위하여 우리 나라가 선택한 방법은 지가상승분에 대한 각종 세금 및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다양한 비과세 및 감면, 지가평가의 문제, 중복과세 등의 문제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토지이용의 왜곡만을 초래한다.
투기를 잡을 수는 없다. 어떻게 하든 가격은 움직이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투기는 발생한다. 따라서 강력한 투기억제수단을 동원하면 할수록 없는 자들이 개발이익을 나누어 가질 기회는 축소되고 그 개발이익은 소수의 손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개발이익문제에 대한 정공법은 부동산으로부터의 이익을 주식과 같이 사고 팔리도록 하는 것이다. 부동산의 증권화를 가능하게 하려면 부통산투자신탁이 허용되어야 한다. 필자가 말하는 부동산투자신탁은 현재 허용되고 있는 부동산신탁과는 다른 개념이다. 부동산투자신탁은 신탁자들의 자금을 맡아서 투자한 후 그 수익을 배분하는 제도인 반면, 부동산신탁은 부동산을 맡아서 대신 운영해 주는 일이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부동산투자신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투기억제라는 발상을 지워버려야 한다. 기관투자자인 (증권이나 채권)투자신탁회사들이 마음대로 투기를 하듯이 부동산투자신탁회사도 마음대로 토지투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의 보유 및 거래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없었다면 부동산에 대한 투자 또는 투기를 업으로 하는 기업(부동산 투자신탁회사)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기업에 돈을 맡김으로서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증권투자신탁은 허용하면서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동산투자신탁은 금지된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누가 그것을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토지가격상승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선진국의 예를 보더라도 부동산투자신탁이 허용된 미국은 지가가 상승하더라도 그것이 사회갈등으로 표출되지 않는 반면 그런 제도가 없는 일본은 지가상승이 사회갈등으로 이어진다. 개발이익의 편중이라는 문제는 투기억제가 아니라 부동산투자신탁의 허용으로 해결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것은 과감한 투기의 허용이 이루어질 때에 가능하다.
김정호(자유기업원 부원장, kch@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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