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린벨트란?
그린벨트란 도시계획법에 의해 지정된 개발제한구역을 말한다. 그린벨트는 전국 14개 도시권을 도너츠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1971년 최초로 지정되기 시작한 이후 전국에 16억평의 그린벨트가 지정되어 있다. 단순히 숫자로만 따지자면 전국토(300억평)의 5.4%에 불과하지만, 그것의 위치가 대도시주변이기 때문에 그린벨트로 인한 토지공급 억제효과는 상당하다.
그린벨트는 지난 30여년간 성역처럼 여겨져 왔다. 다행히도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해제 및 보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100만이 넘는 그린벨트 내의 주민들의 표를 의식한 대선공약 때문이기도 했지만,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정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제와 보상 논의의 요란함에 비해 실질적 효과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린벨트의 지정으로 인한 왜곡 효과는 토지에 대한 수요가 강한 지역일수록 크다. 그러나 그린벨트의 해제는 청주, 제주 등 개발압력이 미미해서 그린벨트가 없더라도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수도권, 부산 등 토지에 대한 수요가 큰 지역의 경우 이미 집단취락지역으로 형성되어 있는 극히 일부의 토지만이 해제의 대상이 될 뿐이다. 즉 그린벨트 해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도시용 토지의 공급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2.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과 그린벨트
그린벨트 지정의 가장 큰 목적은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는 데에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확장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학문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명확히 규정된 일이 없다. 도시의 규모가 크면 좋지 않다는 말을 뜻하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의 도시 규모가 좋은지에 대하여서도 확립된 기준은 없다. 그것은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물론 주관적인 판단은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주관적 판단에 기초해서 살아간다. 도시의 규모에 관해서도 스스로 자기가 생활하고 있는 도시의 규모가 너무 크다고 생각할 수 있고, 도시 주민들에게 스스로 도시의 규모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 역시 마땅하다. 특정 도시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자기 도시의 규모가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면 미개발 토지의 개발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를 도입할 수 있다. 물론 규제로 인해 특별한 손해를 보는 사람들에 대해 보상을 한다는 전제는 필요하다. 규제로 인한 희생자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전제하는 한 도시외곽 토지의 개발을 억제하는 것은 도시 주민들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한 도시의 개발 억제에 대해서 다른 도시의 주민들 또는 중앙정부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불행히도 현재의 개발제한구역제도는 중앙정부의 관할이다. 그린벨트로 인해 고통받는 도시의 주민들은 풀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규제가 잘 풀어지지 않는 것은 그린벨트가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의 권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토지를 그린이 있는 상태로 보존할 것인지는 국지적 문제다. 따라서 그것에 관하여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는 지역주민들이 결정할 문제이지 중앙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린벨트처럼 도시의 외곽을 둘러싸고 개발을 막는 방식은 여러 가지의 부작용을 초래해 왔다. 당장 눈에 보이는 그린을 보호하는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개구리 뜀뛰기식 개발을 불러온다. 예를 들어 서울의 확장이 억제된 결과 수원, 용인, 의정부, 동두천 등으로 개발 압력이 확산되고, 그 결과 더 많은 그린의 파괴, 교통거리의 증가로 인한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오염 증가 같은 비용을 초래해 왔다. 다시 말해서 장기적으로는 더욱 ‘무분별한’ 확장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또 도시주민들에 대한 토지공급이 억제된 결과 지가가 높아지고, 도시내의 혼잡이 심화되어 왔다.
3. 그린벨트와 환경 파괴
사람들은 그린벨트가 해제될 경우 도시의 허파가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울창한 숲이 허파의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린벨트가 없어진다고 해서 도시의 허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어느 정도나 울창한지는 林木蓄積으로 측정할 수 있다. 1970년 당시 7천만 입방미터이던 임목축적은 1997년 현재 3억 3천만 입방미터로 무려 4.7배나 늘었다. 그 동안 많은 나무를 심었던 덕이기도 하지만,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 국민 각자의 생활이 풍요로워진 데에 더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제 그린벨트를 모두 없앤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나라 전국토의 면적은 300억 평이고 그 중에서 숲(법적으로는 임야)의 면적은 200억 평. 그리고 그린벨트의 총면적은 16억평인데, 그 중에서 숲은 10억평이다. 이 10억평을 모두 개발한다면 전체 수풀 면적의 5%를 없애는 셈이다. 모든 임야에 나무가 고르게 분포한다고 가정할 경우 임목축적은 3억3천만 입방미터에서 2천만 입방미터가 줄어든 3억1천만 입방미터가 된다. 그래도 2천만 입방미터나 줄어드는 것은 여전히 문제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다음과 같은 반문이 가능하다. 70년대에는 지금보다 무려 2억6천만 입방미터나 입목축적이 작었는데 그 당시 대기 중의 산소가 부족했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이렇게 볼 때 그린벨트를 모두 푼다고 해도 도시의 허파가 크게 줄어든다든가, 또는 도시의 산소가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는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나마 그린벨트를 풀었을 때 숲이 이렇게 줄어든다는 것은 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산림파괴효과를 과장한 면이 있다. 정부가 모든 그린벨트를 풀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환경등급 4-5급의 토지를 위주로 풀겠다고 했다. 특히 숲이 울창한 지역은 거의 그대로 묶어두고, 이미 비닐하우스로 덮여진 지역이나 주택이 들어서 있는 지역만을 해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린벨트 해제로 인해서 없어질 숲은 아주 미미한 정도일 것이다.
이처럼 그린벨트의 해제에 따른 대가는 미미하지만 이득은 매우 클 것이다. 제일 큰 이득은 땅값, 집값이 떨어져 우리 국민들의 주거생활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이어 논의할 것이다. 단순히 집 값, 땅값이 떨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여러분들도 한번쯤은 노후에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정원을 가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셨을 것이다. 그런데 왜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노후에 그래야만 하는가. 그리고 왜 불편하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야 하나? 그 이유는 도시에 땅이 부족하고 땅값이 비싸다는 데에 있다. 땅값이 싸진다면 웬만큼 여유 있는 사람들은 도시 내에서 정원을 가꾸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또 자치단체가 도시 공원을 만들기도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선진 외국에 나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숲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교외지역의 주거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땅값이 싸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는 그린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따로 모셔두고, 일상의 삶은 비좁은 콩크리트 숲에 갇혀서 살아간다. 그린벨트를 비롯한 토지이용규제 때문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하자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자는 것이 아니다. 환경 속으로 들어가자는 것이다. 아무리 설악산의 풍광이 좋더라도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환경 그 자체는 목적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느끼고 즐길 때에 비로소 가치가 발생한다. 도시의 주민들이 좀더 그린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그린벨트는 해제되어야 한다.
4. 투기와 지가 문제
그린벨트가 해제되면 지가가 뛰고 투기 열풍이 일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토지 규제 완화 논쟁에 늘 등장하는 말이다. 얼마 안되는 그린벨트 해제 지역을 그나마도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묶겠다는 정부당국의 계획은 이런 발상을 바탕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린벨트의 해제로 인해 해제 대상 토지의 값이 뛰는 것은 당연하다. 농지나 임야가 도시용지로 이용되게 되었으니 땅값이 안뛴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러나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미 도시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땅의 값이다. 분당 신도시 개발로 인해 당시 농지로 있던 땅의 값은 100배 가까이 뛰었지만, 당시 서울 지역 아파트의 값은 1/3 가까이 떨어졌다. 규제가 해제된 땅의 값은 오르지만, 도시 토지 전체의 값이 떨어져 도시민들이 더 싼 값에 주거지, 정원용지, 공원용지, 상업용지 등을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더욱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진다. 그린벨트 해제는 도시 땅값을 낮춘다.
5. 보상 문제
보상문제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해제되지 않은 그린벨트 내의 토지에 대해서 보상을 해주기 시작하면 상수원보호구역이나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부지, 보전임지, 농업진흥지역 등의 소유자들도 모두 들고 일어나서 보상을 해 달라고 할 텐데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 때문에 보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원리와 어긋난다.
도로부지로 수용당하면 보상이 주어진다. 그것은 정부가 민간의 재산권을 수용, 사용 또는 제한할 때는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우리 헌법 제23조에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용과 거의 같은 상태로 규제되는 그린벨트나 상수원보호구역 등의 땅에 대해서도 규제로 인해 토지소유자들이 겪어야 하는 재산가치의 감소를 보상해야 한다.
그런데도 규제로 인한 손실의 보상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보상하지 않더라도 물리적으로 규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수용의 경우 토지소유자의 동의가 있어야 정부로 소유권이 넘어간다. 만약 제대로 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원소유자가 도장을 찍어주지 않을 테니까 보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규제의 경우, 원소유자가 동의를 하든 안 하든 규제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그만이고, 그 토지를 쓰려면 오히려 이번에는 토지의 소유자가 공무원의 도장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토지소유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규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대가를 받으려면 시위와 같은 저항을 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원자력 발전소나 쓰레기 매립장 주변의 주민들처럼 데모를 했던 사람들은 보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뺏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만 대가를 지급하고 쉽게 뺏을 수 있는 것은 공짜로 뺏어 버리는 정부와 국가를 민주정부. 법치국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런 정부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민들 또한 민주시민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그린벨트를 풀지 못하겠다면 그것의 보존을 원하는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서 희생당하는 토지의 소유자들에게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세금내기가 싫다면 땅을 풀어 주어야 한다. 도로부지를 보상하기 위한 세금을 내기 싫다면 더 이상 새로운 도로를 이용할 수 없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교사들에게 봉급을 주기 위한 세금을 내지 않겠다면 자녀들을 더 이상 학교에 보낼 수 없는 것과도 다를 것이 없다. 그린벨트를 보존함으로써 토지소유자에게 특별한 희생을 요구하는 한 그 희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마땅한 의무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그린벨트 내의 모든 땅을 다 풀어서 집을 짓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 숲이 울창하고 경관이 좋은 땅들은 정부가 사들여서 도시공원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혜자인 국민들이 그 비용을 분담한다는 전제 하에서이다.
김정호(자유기업원 부원장, kch@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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