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2일 일본 참의원에서 "사적독점의 금지 및 공정거래확보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통과됨으로써 대규모회사의 주식보유총액제한제가 폐지되었다. 여태까지 일본은 자본금 350억엔 또는 순자산 1400억엔 이상인 25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순자산의 100%를 넘는 출자를 규제해 왔으나 이 규제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하고 자국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킨다고 보고 핵심규제를 과감히 폐지한 것이다. 이로서 기업의 출자총액을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만 남게 되었다. 우리의 출자총액규제가 시장경제측면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고 국민경제에 어떤 폐해를 끼치는 것인지 경쟁정책, 경기정책, 산업정책, 증시정책, 구조조정정책 등 5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경쟁정책 측면-신규시장참입 제한과 불공정경쟁 초래
출자총액규제가 시장경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은 규제대상이 특정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규제대상기업집단에 속한 기업들은 수많은 국내외기업들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다. 그 경쟁사는 규제대상이 아닌 기업집단의 계열사일 수도 있고 국내진출 외국계기업일 수도 있다. 또 해외에서 활동하는 순수외국기업일 수도 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회사간 경쟁관계를 분석해 보면 규제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현저하게 큰 경우도 허다하게 발견되고 글로벌시장 지배력이 외국계기업이나 외국기업이 훨씬 큰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발견된다. 그러한 경쟁회사간 실상을 무시하고 국내 특정기업집단만을 대상으로 출자총액을 규제할 경우 시장경쟁이 원천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이익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참입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출자총액규제는 특정 국내기업만을 대상으로 시장참입을 억제함으로써 이미 시장에 진출해 있는 기업에게 기득권을 보장해 주는 성격을 띤다. 순자산의 25%라는 과격한 규제한도를 정하게 될 경우 시장참입이 현저하게 제한되어 경쟁제한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선진국들은 치열한 글로벌경쟁 속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국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정책의 국제규범화를 추진해 왔다. 무역상대국이 국내외 기업을 차별하는 경쟁정책을 채택할 경우 불공정한 무역으로 보아 통상마찰을 부르기도 한다. 출자총액규제는 외국기업을 경쟁제한을 통해 오히려 보호하고 국내기업은 차별하는 것이 된다. 결국 출자총액규제는 자국기업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쟁정책인 셈이다.
경기정책 측면-민간활력 통한 자생적 경기진작 제약
우리의 국가채무 규모는 IMF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국가채무의 비중이 OECD회원국 평균인 70%보다 낮아 위험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국민건강보험재정등 적자에다 생산적복지 정책의 추진에 따른 재원부담을 감안하면 국가채무관리를 소홀히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는 재정기능 확대를 통해 경기활성화에 많은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선진제국의 예처럼 민간활력을 높혀 경기를 진작시켜 나가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투자여력이 있고 재무구조가 좋은 대기업들이 과도한 출자총액규제에 묶여 있다 보니 투자가 부진하여 자생적인 경기진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기업내 시설투자는 규제받지 않으므로 투자가 저해될 까닭이 없다고 주장하나 글로벌시대, 정보화시대의 투자는 기술변화가 극심하여 위험분산차원의 투자가 선호되어 타법인출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투자의 선행행위로 타법인출자가 있어야만 후속적인 연관투자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 출자에 의해 설립된 신생법인은 초기단계에서는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투자재원의 대부분을 자본출자로 조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산업정책 측면-산업구조조정 저해등 경쟁력제고에 걸림돌
1990년대 들어 전세계가 본격적인 글로벌생산체제로 돌입되면서 공급과잉에 따른 기업간 경쟁양상은 더욱 격화되기 시작했다. 기업은 시설확장보다도 경쟁력제고에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고 시너지확보를 통한 생존전략 차원에서 세계각지의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적극 모색하게 되었다. 전략적 제휴 추진과정에서는 타기업과의 합작투자나 지분투자가 허다하게 발생하며 기업의 인수합병도 수반되기 마련이다. 경쟁력의 원천을 기업내에서만 찾으려 했던 기업들은 이제 ‘적과의 동침’도 좋으니 어떻게든 시너지를 확보하여 경쟁력을 높히자는 전략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경영전략의 유연성 제고가 경쟁력확보의 중요수단이 되는 상황에서 타법인출자를 문어발 경영으로 보아 규제할 경우 경영현실을 외면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경쟁력제고 차원에서 타법인 출자규모를 기업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만 전략경영의 여지가 커지고 효율적인 자산운용도 가능하며 다양한 시장개척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또 출자총액규제는 M&A활동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기업가치 제고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우리의 수출주력품목중에는 성숙기의 제품주기에 이른 품목이 많이 있다. 이들 제품이 쇠퇴기에 접어들기 전에 유망한 성장전략업종을 발굴하여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상품, 신기술 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업종전환이나 전략업종 진입을 위해서는 투자회임기간을 감안하여 사전에 대비해야 하는데 출자총액규제는 M&A와 기업설립 등을 제약하여 산업의 재구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증시정책 측면-주식저평가와 증시침체 고착화 불러
출자총액규제는 증권시장을 인위적으로 냉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증권시장의 국내 수요기반이 취약한 상황하에서 출자총액규제는 외국인의 국내증시에의 영향력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증시의 수급불균형에 대한 대책으로 년기금 재원을 활용하려는 마당에 국내기업에 대한 출자를 규제하여 증권시장의 안정기반을 약화시킬 이유가 없다. 증시의 국내수요기반이 탄탄해져야만 해외경제변수에 의해 국내증시가 과도하게 영향을 받는 동조화현상을 중화시킬 수 있다. 증시발전을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두터운 수요기반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볼 때 과도한 출자총액규제는 증권시장의 중장기적인 성장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자금여력이 있는 건실한 기업들이 안정적인 증시의 수요자로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규제 때문에 보유주식물량을 인위적으로 처분해야 한다면 증시위축은 쉽게 해소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증권시장이 과도하게 침체되어 있고 기업의 내재가치보다도 주가가 과도하게 저평가되어 있는 것도 외국에 없는 과도한 출자총액규제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IMF외환위기 이후 기업에 대한 지배구조개혁과 시장감시능력의 획기적 향상에 따라 계열사간 주식의 이동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이는 현실과 유리된 규제가 완충장치가 없이 시장에 즉각적으로 충격을 주게 됨을 의미한다. 종전에는 출자한도에 여유가 있는 계열사가 비상장주식을 인수할 여지가 있었으나 이제 이러한 황제식 경영은 용인될 수 없게 되었다.
기업이 출자총액한도 관리를 위해 시장에서 주식을 분산매각하려 할 경우 약간의 물량만 내놓아도 경영권을 포기하려는 것으로 인식하여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하게 된다. 국내외 증시투자자들이 시장을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는 침체증시상황하에서 인위적인 주식매각은 막대한 유가증권매각손실을 부르고 주가는 더욱 떨어지게 된다. 이는 기업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져 회사채 차환발행이 어려워지고 기업은 자금조달에 타격을 입게 된다. 비상장주식은 정상적인 매각이 어렵고 계열사간 주식처분도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상장주식매각을 그만큼 늘려야 되고 증시의 수급불안은 더욱 커지게 된다. 또 기업이 매각해야 할 한도초과물량은 시장에서 유통될 주식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주식까지 시장에 쏟아질 때 증시침체 가속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구조조정정책 측면-구조조정 지연과 공적자금회수 부진 초래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사업부문을 떼어내 분사하거나 매각해야 할 일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출자총액규제는 분사나 매각과정에서 생긴 지분출자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 효율적인 구조조정수단을 동원하는데 어려움을 초래한다. 외국기업들이 경쟁력확보를 위해 국내 대기업과의 합작투자를 제의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출자총액규제는 양질의 외자를 도입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 출자총액규제는 금융 및 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 추진에 적지않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부문의 시장지배력을 낮추기 위해서는 외환위기극복과정에서 늘어난 정부부문 보유 기업지분을 조기에 민간에 매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민간기업이 정부의 공기업민영화와 구조조정추진 과정에서 나오는 기업매물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매물을 국내기업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배제한 가운데 처분하려 할 경우 경쟁제한을 통해 외국기업에게 특혜를 주게 되며 헐값매각을 부르게 된다. 외국의 기업들 중에는 출자총액비율이 순자산의 25%를 초과한 기업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이들 기업은 자유롭게 참여시키고 우리 기업들은 문호를 막는다면 불공정한 경쟁이 될 수밖에 없고 공적자금회수율도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도한 출자총액규제를 유지한 채 구조조정 기업매물 매각 협상을 벌이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기 패를 보여주고 치는 화투놀이에 비유할 수 있다.
개혁방안-시장감시에 맡기고 출자총액규제 폐지해야
출자총액규제는 시장경제원리측면에서 반시장적 규제의 성격을 띠고 있고 국민경제에 커다란 부작용을 끼치고 있음을 감안 조속히 폐지되어야 한다. 규제를 폐지할 경우 문어발식 출자를 우려하는 반대론자의 의견도 적지 않으나 시장감시능력의 확충과 각종 기업개혁조치의 성과로 기업투명성이 현저히 높아졌기 때문에 기우에 불과하다. 기업이 자본금 10%이상 출자할 경우와 누계금액 10%이상인 경우 5%이상 변동할 때마다 공시하도록 되어 있고 출자총액내역을 분기별 사업보고서에 밝혀 공시하도록 되어 있다. 출자총액의 상세한 내역을 매분기별로, 그 변동상황을 수시로 전자공시하게 되어 있어 국내외투자자, 신용평가회사, 채권금융기관등 모든 시장참여자들이 출자가 기업경영수지에 미칠 영향을 항상 평가하고 있다. 또 지분법회계제도가 도입되어 20%이상 출자한 경우 피출자회사의 경영성과등으로 인해 피출자회사의 순자산가액이 변동되는 경우 그 지분비율만큼 투자주식에 가감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또 20%미만의 출자의 경우에도 주식평가손익이 있을 경우 대차대조표에 반영토록 되어 있어 유동성지표등에 영향을 주어 기업신용평가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피출자회사의 경영수지 변동상황은 출자회사의 사업성과나 경영수지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쳐 주가에 바로 반영될 수밖에 없는 제도가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잘못된 출자나 실패한 출자에 대한 심판은 출자시에도 심판을 받지만 출자후에도 매분기별로 모든 시장참여자들로부터 감시와 심판을 받는 셈이다. 만약 출자의 타당성이 약하고 성과가 단기적으로 나쁘게 나왔다면 출자한 기업은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어 주가가 떨어지고 신용평가등급이 저하하여 자금조달에 타격을 주게 된다. 이외에도 소수주주권 강화등 기업지배구조개선 차원의 견제장치가 도입되어 무분별한 출자는 경영진내부와 외부주주로부터의 감시를 받게 된 것도 커다란 변화이다. 시장기능의 작동을 위한 장치가 이와같이 확충되어 있는 상황하에서 출자총액규제를 계속 존치하겠다는 발상은 ‘규제를 위한 규제’를 고수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부가 비현실적인 출자총액한도를 정하고 문제있을 때마다 적용을 제외시켜 주고 예외를 늘려주는 편법을 동원하다 보니 시장을 왜곡하는 규제의 폐해는 더욱 커지게 된다. 출자총액을 어느 수준까지 가지고 갈 것이냐는 업종, 업태나 기업별 경영전략이나 재무구조의 형편에 따라 각각 천차만별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기업의 주력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출자총액의 시계열적 변화는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과도한 출자총액기준을 설정하여 획일적이고 경직적으로 적용하는 규제는 국민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위축케 하고 기업가정신을 쇠퇴케 하여 자본주의의 활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지않는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묶어 경기침체를 가속화하고 경제의 성장발전을 제약케 한다면 그 대가는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출자총액규제는 시급히 폐지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만약 일정기간 존치할 수밖에 없다면 시장경제와 국민경제에의 역기능이 최소화되도록 규제적용 대상을 기업집단별로 정하지말고 기업별로 정하여 자본금 또는 순자산 기준 일정규모이상의 대규모대기업에 국한하여 실시토록 해야 한다. 또 규제한도는 예외를 대폭 줄이더라도 순자산의 100%까지 허용토록 하여 업종, 재무구조 등 기업형편에 따라 기업이 유연하게 출자전략을 구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李炯晩 자유기업원 부원장(lhm@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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