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일관계의 변천과 동향
북일관계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였던 냉전체제가 붕괴하고 한국의 북방정책이 전향적으로 전개하게 되자, 일본은 전후처리 외교차원에서 북일수교를 지향한 대북한 ‘접근 및 대화’전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정치권의 주도로 시작된 일본의 대북한 접근은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이 전개되면서 외무성을 통한 실무수준에서 추진되었다.
국교정상화 교섭은 제1차에서 8차까지의 수교회담을 가지게 되었지만, 북한의 핵사찰 문제와 그에 따른 북미 갈등 등의 영향으로 8차회담에서 좌절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이후, 북일 양국은 ‘수면 아래’ 또는 ‘수면 위’에서 접촉과 교섭을 벌여 오다가, 2000년에 접어들어 7년만에 국교정상화 회담을 재개하게 되었다. 즉, 7년간 중단된 국교정상화 회담이 재개되어 9차, 10차, 11차 회담이 개최된 것이다.
그런데, 2000년 10월 30-31일 北京에서 개최된 제11차 북·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쟁점 현안에 대한 입장차이로 차기회담 일정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종료됨에 따라, 국교정상화 회담은 재차 중단되고, 제3국에서 대화채널 유지수준의 비공식 접촉만을 하여야 했다. 게다가, 2001년 11월 일본 경찰이 1999년 5월에 파산한 ‘朝鮮東京信用組合’의 비리 수사와 그와 관련된 조총련 중앙본부의 강제 수사를 단행하자, 북일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고, 아울러 동년 12월 17일 북한 적십자회가 ‘일본인 납치의혹 조사’ 사업의 중단을 발표함에 따라 한층 악화되었다.
이와 같은 냉각상태의 북일관계는 2002년에 들어오면서 4월의 북일 적십자회담, 7월의 브루네이 북일 외무장관 회담 등을 계기로 다소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북일관계는 동년 8월에 18-19일의 적십자 회담, 25-26일의 북·일 외무성 국장급 회담 등 가진 뒤, 9월 17일에 전후 최초의 북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북일간의 주요 현안과 양측의 주장은 <표 1>과 같은데, 일본측에서는 일본인 납치의혹 문제, 북한측에서는 과거사 청산을 위한 사죄와 배상문제를 최우선 과제 해결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표 1> 주요 쟁점 현안과 양측 주장
쟁점 현안 | 일본측 주장 | 북한측 주장 |
일본인 납치의혹 | ㅇ구체적 성과 없으면 국민 납득 못함. ㅇ정치적 차원의 해결노력을 보여야 함. | ㅇ실종자 조사는 적십자사가 추진중임. ㅇ정부기관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음. |
식민지 배상 | ㅇ북한과 일본은 교전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배상은 할 수 없음. ㅇ식민지 지배 보상을포함해 태평양전쟁 전후에 걸친 모든 문제를 논의할 것임. ㅇ경제협력방식 제안. | ㅇ1905년 이후 식민지지배에 대한 보상 요구. ㅇ교전국에 대한 보상 및 배상 요구. |
요도호 용의자 귀국 | 중요범죄의 용의자이므로, 신속하게 인도해야 함. | 귀국은 자신들이 정할 문제임. |
미사일 개발 | 미사일 발사실험 유에를 연장하여야 하고, 미사일 관련 기술 개발, 수출을 중단해야함. | ㅇ주권문제임 ㅇ군사적 위협을 주지않는 한 걱정할 필요 없음. |
핵개발 |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기 사찰을 받아들여 함. |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미국과 논의할 것임. |
2. 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의 전략적 의도와 성과
1) 북일 양측의 전략적 의도
9·17 정상회담의 성사에는 북일 양측의 전략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 및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강화을 통한 대미 접근 및 관계개선 추구한다는 전략과 경제적 지원을 위한 실리추구 전략에 따라 북일정상회담 및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북한은 북일정상회담 및 관계 개선의 전략적 활용을 통하여 미국의 이라크 다음의 표적이 되는 것에 대한 사전예방, 일본으로부터의 식량 지원 및 경제적 지원의 확보, 대미관계 개선과 그에 따른 국제기구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의 획득 등을 꾀하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고이즈미 총리의 개인적 차원 및 정부차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개인적 차원에서는 외정을 통한 정치적 입지의 강화를 도모하고, 아울러 전후 결산을 위한 외교과제를 해결한 역사적 지도자로 남기 위한 시도로 파악된다. 2002년 5-6월에 30%대까지 하락하였던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국교정상화회담의 발표 직후에는 50%대로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차원에서는 러일 및 중일 국교정상화에 이어 북일 국교정상화를 이룩함으로써 전후 결산을 위한 미해결 외교 과제의 해결을 꾀하고, 아울러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일정부분 역할의 확보를 꾀하려는 시도로 파악된다. 일본은 북일관계 개선과 더불어 경제 지원이 전개될 경우에 남북경제공동체의 건설 및 동북아 개발 등과 관련 일정 부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동북아 6자회담이 창설될 경우에는 안보차원에서도 일정 부분의 역할을 추구할 수 있다. 나아가, 일본은 ‘21세기 파워 분담’을 지향한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가운데 북한 핵·미사일 문제 등과 관련하여 미일공조체제의 틀 내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할들은 동북아 지역에서의 일본의 정치적 역할 및 영향력의 확대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2) 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의 성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는 9월 17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오전과 오후에 두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일 정상회담은 납치 일본인들의 사망문제로 경직되고 긴장된 상태에서 시작되었으나, 오후 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에 관해 시인 및 사과를 함에 따라 주요 현안인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보상, 일본인 납치문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등이 일괄적으로 타결되고,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9'17 평양 공동선언은 2002년 10월 중 국교정상화회담 재개,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반성과 대북 경협 제공, 북한의 피랍 일본인 문제 사과와 재발 방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의 보류를 2003년 이후에도 유지, 등을 골자로 하면서 4개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상회담의 의제별 합의사항의 구체적 내용은 <표 2>에 나타난 바와 같다.
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은 주요 현안의 일괄적 타개에 따른 북일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기반 마련으로 평가되고 있고, 따라서 향후 양국간 국교정상화 교섭회담은 기존의 11차례 회담과는 질적으로 다른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표 2> 북일 정상회담의 의제별 합의사항 및 향후 과제
의제 | 합의사항 | 향후과제 |
일본인 납치 | ㅇ 김정일 위원장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 ㅇ생존자 귀국, 사망자 사인조사 |
과거청산'배상 | ㅇ’95년 무라야마 담화(“통절한 반성 과 마음으로부터 사과”) 답습 ㅇ한일 국교정상화 동일방식 보상 ㅇ1945. 8. 15 이전 재산청구권 상호 포기 ㅇ①무상지급 ② 저금리 장기차관 ③국제기구 통한 인도적 지원 등 3개항의 경제협력방안 합의 | ㅇ자금지원 및 차관 규모 문제 ㅇ국제협력은행 통한 간접융자 및 신용공여 여부 검토 |
핵'미사일 | ㅇ북한 2003년 이후 미사일발사 실험 계속 유예 ㅇ한반도 핵문제 포괄적 해결을 위해 국제협의(94년 제네바합의) 준수 및 관련국 대화 해결 원칙 합의 | ㅇ미사일 실험유예 구체적 시한 확정 문제 ㅇ영변 핵시설 사찰 등 핵 문제에 관한 구체적 합 의 문제 ㅇ북한 재래식무기 문제 |
국교정상화 | ㅇ10월중 장관급 수교협상 재개 | ㅇ재일 조총련계 교포 지 위 문제 ㅇ문화재 반환 문제 |
3. 대책
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일관계가 획기적 개선을 이루고 국교정상화를 지향한 일정한 성과를 거두게 될 경우, 한반도 평화는 물론 남북경제공동체의 건설 및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한 중요한 환경 및 기반이 조성되게 된다. 반면, 피랍 일본인 11명 중 4명만이 생존하고 있는 소식에 일본 국내 여론이 지극히 악화되어 국교정상화 협상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북한에 대해 미국의 예봉을 피함과 동시에 북미 관계의 개선 및 외교적 고립의 탈피, 경제난 회복 등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임을 직·간접적으로 설득하여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에 전향적으로 나서도록 하여야 노력하여야 할 것이고, 일본에 대해서는 21세기를 위한 전후 결산 및 동북아 평화'개발을 위한 협력의 촉진이라는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국교정상화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임할 것을 촉구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경의선 및 동해북부선의 연결작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데,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및 중국 대륙횡단철도(TCR)와의 연결은 남북경제협력은 물론 동북아 개발 및 역내 국가들간의 협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아울러 동북아 경제협력을 위한 안보환경의 조성 노력으로 귀결되어 동북아 다자간 포괄적 협력을 촉진시킬 수 있는데, 북일관계의 개선 및 국교정상화는 이와 같은 남북관계의 진전, 동북아 개발 및 다자간 안보협력 등에 순기능적으로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북한이 일본 카드를 대남전략에 활용하는 것을 한미일 공조의 강화를 통하여 막으면서, 북일 관계의 진전이 남북관계의 진전과 상호보완적으로 전개되도록 전략적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고, 아울러 북일관계의 진전에 따른 동북아 국제환경의 변화를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한국은 정보능력, 전략 수립 및 집행 능력의 강화를 꾀해야 할 것이고, ‘남북경제공동체의 건설과 일본의 자본·기술·시장’의 활용이라는 전략적 관점에서 북한의 투자환경 개선과 인프라 구축, 북한의 생산기지화와 대륙 진출, 등과 관련 포괄적 한일협력방안 연구, 대북 경제지원을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전략적 활용과 관련 한·일 협력방안 연구 등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며, 아울러 조총련계 교포들의 한국을 통한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에의 참여를 위한 투자환경 개선 문제 등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남북경제공동체의 건설과 동북아 개발을 연계시켜 전략적으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고, 아울러 동북아 포괄적 협의체제로서의 6자회담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환경조성에 순기능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략적 운영을 추구하여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하여 양자간 및 다자간 차원에서 Track 1.5 형태의 정책연구 그룹을 구성'운영하여야 할 것이다.
배정호(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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