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후보자와 정당후보자간의 차별철폐

박효종 / 2002-09-06 / 조회: 5,121
No.020

우리 정치과정에서 무소속 정치인과 무소속 후보자는 정당정치인과 정당후보자에 비하여 홀대를 받고 있다. 특히 선거운동 과정과 투표과정에서 정당정치인은 특혜를 받고 있는 반면, 무소속후보자는 불이익과 차별을 받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문제는 정당의 특혜와 무소속 정치인의 차별이 민주정치과정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 정당의 ‘특권적 입장(privileged position)’이 민주정치과정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면, 또한 그것이 한국의 정치발전과 민주주의 공고화과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면, 정당의 특혜가 제도화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반대로 정당의 기여나 역할이 정치과정이나 정치발전의 관점에서 그다지 현저하지 않거나 심지어 정치발전을 왜곡하거나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정당정치인들이 무소속 정치인들에 비하여 특혜를 받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특히 선거민주주의는 '절차 민주주의(procedural democracy)'이며, 절차민주주의는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를 구현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에도 롤즈(J. Rawls)의 표현대로 ‘순수절차적 정의(pure procedural justice)’가 중요하다. ‘순수절차적 정의’란 시험이나 경쟁의 경우에 나타나는 것처럼, 게임규칙이 공정하고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경우 결과도 공정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이다. 하지만 게임규칙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결과를 공정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정당의 특혜와 무소속 차별이 ‘순수절차적 정의’에 부합할 수 있을까. 정당의 특혜와 무소속 홀대가 적절한 논리에 의해서 정당화되지 못한다면, 차별의 게임규칙도 공정하지 못한 셈이고 당연히 결과도 불공정한 것으로 치부될 것이다. 우리는 선거과정에서 정당의 기득권과 무소속 홀대가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그 개선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선거운동에 있어서의 불공정

정당후보자에 비하여 무소속 후보자가 감수해야하는 불이익은 선거운동과정의 규제에서 두드러진다. 우리선거법은 선거운동과정에서 많은 규제와 금지조치들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사전선거운동 금지며, 그밖에 금지'제한되는 선거운동방법도 적지않다. 물론 법정 선거운동기간이외에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포괄적인 제한은 선거운동의 과열과 혼탁을 방지하는데 일정 정도의 효과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무소속 출마자와 정당출마자, 신규후보자와 기성정치인 사이에 실제적인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규제와 제한이 형평성과 절차적 정의에 부합하는가하는 문제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선거법에서는 선거운동기간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할 목적으로 단합대회'향우회'종친회'동창회 등의 집회를 가질 수 없도록 하고 있으나, 정당활동만은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선거법 제140조, 142조,144조). 따라서 무소속 후보자들은 선거운동기간동안 어떠한 모임도 가지는 것이 ‘법적(de jure)’으로나 ‘실질적(de facto)’으로 불가능한데 비하여 정당공천후보들은 정당활동을 명분으로 내세워 ‘실질적인’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선거직전의 당원교육과 당원 단합대회도 사실상 선심관광과 향응 제공 등, 불법적인 사전 선거운동 기회로 이용될 뿐이다.
그런가하면 정당공천후보는 정당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후보등록이전부터 얼굴과 이름, 정책을 알리는 등, 지명도를 높힐 수 있는 상당수준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데 비해 무소속후보는 후보등록이 끝난 때부터 선거운동을 하도록 되어 있으며(선거법 제59조),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을 받는다(선거법 제254조). 이것은 정당공천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선거라는 경주에서 그 출발선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정당공천후보는 100m경기에서 출발선보다 50m나 앞서서 출발함으로 ‘토끼와 거북이’의 불공정한 경기를 방불케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왜 이에 대한 반발이 없었겠는가. 96년 4월11일 실시된 제15대 총선에서 무소속후보들이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다 많이 확보하기 위해 ‘무소속당’을 두 개씩이나 결성하는 희한한 사태도 발생했었다. 즉 ‘무당파 국민연합’과 ‘무정파 전국연합’이 그것이다. 이들은 당초 중앙선관위에 ‘민주무소속 전국연합’과 ‘무소속 전국연합’으로 당명을 신청했으나, 선관위가 무소속을 당명으로 쓸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에 상기 당명을 쓴 것이다. 이처럼 모순(oxymoron)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형적 형태의 ‘무소속당’의 출현은 후보자들이 무소속보다 정당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선거운동에 용이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고보조금배분에도 무소속 정치인들은 참여할 수 없다. 우리는 물론 국고보조금제도가 근본적으로 폐지되고 자유기부금형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긴 하지만, 국고보조금제도가 존속하는 한, 정당에게만 배분하도록 되어있는 현 제도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 그 상당 금액을 정책개발비가 아닌 인건비로 쓰는 한에 있어 무소속의원들에 대하여 어떠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당의 ‘자기특권화’와 불합리한 차별

그렇다면 정당 후보자와 무소속 후보자간의 차별이 이른바 ‘합리적 차별’일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과정에서 정당의 중요성이 유별나게 현저하지 않다는 점과 또 하나는 소신파 ‘무당파’ 유권자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대학에서『정치학 개론』을 통하여 정치를 배우는 정치학도들은 정당이 대의민주주의에서 기본적인 정치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 발전을 지향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러한 인식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구체적으로 정당의 기능은 무엇인가. 국민의 이익과 요구를 조직화시키는 일이 정당의 일차적 업무다. 또 정당은 국민이 정치과정에 참여하는데 필수적인 지식과 능력을 육성하고 교육하는 기능을 맡는다. 특히 여당은 선거에서 표출된 민의를 통해 정부를 조직'운영하는 반면, 야당의 경우는 정부통제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정치학 개론』에서 배우는 정당의 기능에 대한 일반론을 무색케 할 정도로 현실정치에 있어서는 정당이 차지하고 있는 정치적 역할이 자명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정치과정에서 정당의 역할이 감소되었다는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정당의 정치적 역할 가운데 중요한 범주로 꼽히는 선거과정에 있어서의 역할이 정당보다 후보자에 초점이 맞추어짐으로써 정당활동도 인물 중심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 그 하나다. 특히 정당의 명멸이 무상하기 그지없는 한국의 상황에서, 또 정당인들의 이합집산이 자주 벌어지는 정치적 상황에서 정당보다 인물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새천년 민주당”이나 “한나라당”보다 “김대중당” 혹은 “이회창당”이 더 설득력있게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또 대중매체의 역할증대로 정당조직을 통한 지지자의 동원이 예전과 같은 중요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무리 모범정당이라고 해도 현재의 정당구조로는 끝없이 새롭게 분출하는 국민의 다양한 이익과 요구를 조직화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녹색연합’은 있으나 ‘녹색정당’은 없는 상황이다. 또 ‘여성단체연합’의 NGO는 있으나, ‘여성당’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른바 ‘그린정당’이나 ‘여성당’이 부재한 상황에서 어떻게 환경보호나 여성권리증진 등에 관한 국민적 욕구가 충족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시민단체의 부상은 정치과정상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더군다나 해결은 불가능한 정당구조의 무능과 부실성을 웅변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실상 정당은 영어로 party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부분’을 표시하는 라틴어의 pars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정당은 유권자의 ‘부분적 이익(particular interest)’을 결집하고 대변할 뿐, 유권자 전체의 ‘일반적 이익(general interest)’을 결집하고 대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적 현실 못지 않게 한국의 정당은 특히 그 자체의 아킬레스건과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민의수렴과 대변이라는 독점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역부족이다. 정당운영과정이 비민주적이고 일인보스 중심이어서 정당과두화, 하향식 공천권 행사 등의 기형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의 후보자 공천과정에서 당권을 쥔 보스가 비민주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하는 경우, 유권자가 아무리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유권자가 원치 않는 후보자 가운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경우는 정당이 오히려 유권자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모순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선거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능력도 중요하지만, 정당에서 유권자가 원하는 후보자가 출마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절차를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당의 유일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공직의 후보자 공천과정과 선거운동과정이 더 이상 정당간의 독점적 활동영역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입법권을 가진 의회정당의 선거과정의 독점화는 정당이 스스로 기득권을 행사하는 차원에서 나온 ‘자기 특권화’의 소산일지언정, 유권자들의 명시적 동의나 암묵적 동의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 점에서 무소속 후보자들의 역할의 중요성이 부각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소속 후보자들이 정당에 비하여 제도적이나 법적으로 지나치게 홀대를 받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무당파’ 유권자들

그런가하면 유권자들가운데 “기존정당은 싫다”고 토로하는 ‘무당파’ 유권자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학력과 소득수준이 비교적 높은 고학력 중산층가운데 ‘무당파’층이 많다는 점이 여론조사에 의해서 들어나고 있다. 낮은 정당지지율과 결코 엷지 않은 ‘무당파’층의 존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기존의 정당정치, 기득권을 가진 제도적 정당에 대한 의식적 부정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무당파’층은 선거가 임박할수록 ‘차선의 선택’으로 특정정당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끝까지 제도정당을 거부하지 못하는 주요 이유중의 하나는 ‘무당파’ 유권자들이 최후 순간 자신의 선호를 바꾸어서가 아니라 왜곡된 선거 제도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현 선거제도에서는 정당지지자들의 입장만 표출할 수 있을 뿐, ‘무당파’ 유권자들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번 6'13지방선거에서도 이런 현상은 두드러졌다. 선거직전까지 부동표층이 50%를 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낡은 정치를 답습하는 기성정당이 선거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 인물을 뽑아봤자 구식 정당정치의 확대재생산외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실망감이 주류를 이룬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표소에서는 정당의 지지도를 묻는 투표만을 요구했을 뿐이다. 정당의 지지도를 묻는 투표용지에는 한나라당'새천년 민주당'자민련'민주노동당만이 들어 있었다. 왜 ‘무당파란’은 마련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으례껏 유권자라면 원하는 정당이 있을 것이라는 안이한 발상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선호의 대상이 되는 적절한 정당을 발견하지 못하는 ‘무당파’ 유권자를 위해 또 다른 한 칸을 배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당의 개혁과 변화를 기다리다 지쳐 현실 정당정치에 등을 돌린 ‘이유있는’ 유권자들을 배려하는 방안이다. 따라서 선관위도 선택할 정당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당파’ 유권자들에게 무조건 투표에 참여하기를 독려만 할 것이 아니라 ‘무당파’ 유권자들이 가진 정치적 선호가 존중받을 수 있는 투표제라도 도입한 후 유권자참여를 유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정당제도가 비민주화되고 부실하여 정당정치의 매력 포인트가 약하다면, 또한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소신파 ‘무당파’ 유권자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들 유권자의 주권과 정치적 목소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선거과정에서 무소속후보에 대한 차별을 철폐해야하는 주요 이유다. 기존의 정당들이 당내민주화를 위한 개혁을 무한정 천연하고 있어 정치불신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소속후보나 ‘무당파’ 정치인이 정치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부여하고 보장하는 것이 온당하다. 즉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정당에 대한 무소속 후보자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는 시정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하나는 선거운동과정에서 정당공천후보자와 무소속 후보자사이에 차별적 조치가 철폐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선거법에서 정당공천후보자들에 한하여 정당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사전선거운동기간에 실질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 실효성과 형평성을 상실한 포괄적인 제한 규정은 폐기되거나 개정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선거운동기간을 포함하여 사전선거운동에 관한 규제와 제한을 대폭 완화함으로써 정당공천후보자와 무소속후보자간의 차별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것이 어려울 경우, 즉 사전선거운동기간의 제한을 폐기하지 않으려 할 경우에 적어도 무소속후보자와 정당후보자사이에 일정한 형평과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 일정시기가 되면 정당활동을 빙자한 집회를 금지시켜야 될 것이다.
또 하나는 국회의원선거나 지방선거에서 전국구 국회의원과 광역의회 비례대표의원을 뽑는 절차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 즉 정당이름만 나열해놓고 유권자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무당파’란을 마련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진정한 정치적 선호를 반영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당파’란에 기표한 유권자보다 정당에 기표한 유권자들이 많을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정당에 전국구 후보를 할당하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정당의 ‘자기특권화’ 조치를 최소화하는 개혁이 가시화 될 때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정당정치만능주의의 병폐가 치유되고 기성정치권의 자기변화와 자기갱신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박효종(서울대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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