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와 재정의 재음미 : 낭비와 비효율의 축소

최광 / 2002-09-02 / 조회: 5,644
1. 문제의 제기

상자(商子) 거강(去强)에 “나라가 부유한데도 가난한 살림처럼 아끼고 줄여 쓰면 더욱 부유해지고 강해진다. 나라가 가난한데도 부자처럼 흥청망청 쓰면 더욱 가난해지고 더욱 가난해지면 약해진다.” 는 글귀가 있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재정이 국가의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사회기강을 해이시키는 사실을 국민과 정책당국 모두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와 같이 공공부문이 사회전반을 지배하는 여건에서 공공부문의 헤픈 쓰임새는 민간부문의 낭비를 유도하며 공공부문에서의 조그마한 빈틈을 사회 전체 기강의 해이를 가속화시킨다.
우리 나라의 경우 지방자치가 민주화 운동의 산물로 쟁취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체 그리고 지방자치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각종 제도를 사전적으로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체 지방자치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외형적 모습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방자치 특히 지방재정은 국가 발전의 걸림돌로서 작용하는 측면이 크다. 본고는 지방자치와 지방재정을 둘러싸고 나타나고 있는 낭비와 비효율을 인식'운용'제도 측면에서 살펴본다.

2. 지방자치와 지방재정 자립

지방자치의 실질적 내용으로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치재정권이 열거되며 혹자는 이들 중 자치재정권이 지방자치의 핵심적인 부분이라 한다. 중앙정부로부터 이전되는 재원이 지방재정의 운영에서 점하는 비중이 클 때 재정운영에서 지방정부의 자유재량의 영역이 축소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방재정의 문제를 자체수입의 비중이 높고 낮음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큰 문제이다.
통상적으로 지방재정의 견실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가 지방재정자립도이다. 지방재정자립도는 특정 지방자치단체의 자체재원인 지방세와 세외수입으로 총세출을 어느 정도 충당하느냐 하는 지표이다. 지방자치의 실시와 지방재정자립도의 높고 낮음이 전혀 상관이 없는데 지금까지의 논의는 많은 경우 지방재정자립도가 낮아 지방자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또는 높은 지방재정자립도가 성공적 지방자치 성공의 필요조건인양 주장되어 왔는데 이에는 이론적'실증적 근거가 없다.
자금은 업무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자금을 논하기 전에 업무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국민경제를 놓고 민간부분이 할 업무와 정부가 할 업무를 정확히 구분하고 정부가 할 업무 중에서는 중앙정부가 할 일과 지방정부가 할 일을 명확히 구분 해야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업무구분만 명확히 되면 그 재원을 어떻게 충당하느냐 하는 것은 자동적으로 결정되므로 지방재정자립도제고 자체가 논의의 초점으로 부각되어서는 곤란하다.

3. 획일적 평등주의와 지방자치

우리는 많은 구호 속에 살고 있다. 대표적 구호에는 “농자 천하지 대본,” “교육은 국가 백년지 대계” 등인데 지방자치와 관련되어 있는 구호는 “국토의 균형 발전”이다. 어느 나라든 경제성장이 진행된 지역과 뒤쳐진 지역이 있어 지역간 격차가 존재한다. 국토의 균형 발전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대단히 의미 있고 매력적인 것이다. 그러나 각 지역이 경제적으로 같은 정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중앙정부 정책에 의해 국토의 균형 발전을 인위적으로 도모할 경우 국가적 낭비가 초래됨이 인식되고 있지 못하다.
지역간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사회자본 정비 등 공공투자를 통하여 민간기업을 유치하고 지역의 고용확대를 도모하려 한다. 어느 특정 지역에서 사회자본 정비가 시행되면 이것은 기업을 유치하는 한 요인이 된다. 그렇지만 기업의 수가 정해져 있기에 전국적 일률적 공공사업이 기업을 유치하는 요인은 되지 않는다. 원래부터 사회자본의 정비가 뒤쳐져 있었기 때문에 기업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 기업이 진입할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확실히 사회자본 정비는 지역발전의 필요조건일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지역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기에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래서 지역발전이 더 이상 진척되지 않게 되면 사회자본의 정비가 종료되는바 만약 공공사업을 중단하면 해당 지역에서는 실업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지역의 고용을 유지하게 위해서 더욱 추가적으로 공공사업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을 거치는 과정에서 생산성이 없는데도 투자가 이루어지고 자원이 낭비된다.
기본적으로 지역격차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으로 정부가 정책을 통하여 지역의 균형발전이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민이 어느 곳에 살든 기본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기본적인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까지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나 그 이상에 대해서는 지역균형발전에 집착하면 오히려 나라 전체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저하된다.

4. 낭비조장적 지방재정조정제도

우리 나라의 재정제도는 한편으로 중앙집권적이라고 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지방분권적이라 할 수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징수하는 세수 중 80%는 중앙정부가 징수하고 나머지20%는 지방정부가 징수하고 있다. 그러나 최종 정부지출단계에서 보면 중앙과 지방의 비중은 45 대 55로서 지방정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이러한 세입과 세출의 갭을 조정하는 것이 지방재정조정제도로 이에는 지방교부금, 국고보조금, 지방양여금이 있다. 이러한 수입과 지출의 불일치 현상은 일본과 한국의 독특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잘못된 지방재정조정제도하에서 과거 10년간 복합불황의 극복을 위해 투입된 자금이 대부분 낭비적 지출인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지방조정제도의 잘못된 운명으로 지방정부에 의해 각종 낭비적 사업이 과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방분권과 관련하여 자주 거론되는 것은 국고보조금 대신 지방교부금을 강화시켜 자치단체 스스로가 자유롭게 사용하는 재원을 늘려주면 자치단체 쪽이 중앙정부보다 주민의 선호를 더 잘 알고 있으므로 지방의 실정에 부합되면서도 보다 섬세하고 유연한 공공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지방교부금제도는 단지 지방에 권한만을 위임하는 것으로 각종 비효율과 불공평을 조장하고 있다.
지방교부금제도에서 기준재정수요액과 기준재정수입액에 바탕하는 현재의 배분방식은 지방정부의 재원보장적 성격이 지나치게 강하여 지방정부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야기시킨다. 효율적인 재정운용의 유인을 저하시킨다. 주민에게 지방교부금은 자기의 세부담과 연동되어 있지 않으므로 공공서비스의 비용의식을 희박하게 한다. 낭비적 사업들이 추진되는 것도 자기의 세부담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주민의 평가도 나쁠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고보조금은 중앙정부의 예산에 의해 배분되기 때문에 예산이 갖는 정치성을 그대로 지닌다. 정치인들이 국고보조금을 자신의 지역구 관리를 위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바 이는 갈라먹기식 정치(pork barrel politics)라 표현된다. 특히 중앙정부 일반회계에 계산되어 있는 공공사업비의 대부분이 보조금으로서 지방공공단체에 지급되어 지역에서의 사회자본 정비에 사용될 경우 더욱 그러하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의 재정적 판단으로서 시행할 사업을 국가정책에 따르는 형태로 하며 보조금을 받는바 이 경우 경제성이 없는 사업이 추진되기 마련이다.
지방양여금은 주세, 전화세, 그리고 농특세를 재원으로 하여 도로사업, 농어촌지역개발, 수질오염방지, 청소년 육성, 그리고 지역개발 등 다섯 가지 사업이 그 대상이다. 이중 청소년 육성과 지역개발사업은 지방양여금의 성격과 무관한 사업이다. 국고보조금의 경우 매년 국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지방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안전적 재원확보가 어렵지만 지방양여금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지속적인 재원확보가 가능하다. 지방양여금 사업의 경우에는 중앙정부에서 양여금 대상사업을 사업별 배분비율에 의거 사업비를 자치단체에 배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획일적인 제도로 인하여 도로정비사업의 경우에는 통행량이 많아 도로확장이 시급한 지방도, 시의 국도, 시의 시도 등의 간선도로의 확장보다는 군도와 농어촌 도로에 대한 배분비율이 높은 실정이다. 이 결과 통행량이 많은 도시내 간선도로 보다 통행량이 거의 없는 농어촌도로의 정비 상태가 좋은 모순을 가져와 예산의 효율적 사용에 많은 문제가 있다.
지방재정교부금, 국고보조금, 지방재정양여금 모두 볼래 나름대로의 특정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별도로 고안된 제도이나 현실에서 세 제도 모두 지방자치라는 본래의 의미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에게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주는 도관(conduit)역할을 하여 낭비를 조장하는 제도로서 기능하고 있다.


5. 맺음말

지방자치란 지방의 주민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지는 제도이다. 따라서 지리적 인접성 근접성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그 기본임무이지 주민의 복리와 관련이 있다고 하여 모든 문제를 다루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지방이 할 수 있는 일은 물론이고 본래 지방고유의 일까지도 중앙이 관여함으로써 권력이 집중되고 비대해져 권력의 남용, 비리와 부패 등 현재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자치를 권력분산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전체의 효율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느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지방정부의 힘이 중앙정부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그러나 그 방향은 통상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바와 같이 지방재정력의 강화가 아니고 지방자치의 강화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토지의 효율적 이용, 지방세의 자주적 결정, 환경행정, 교통행정, 치안행정 등의 분야에서는 지방정부의 자치권이 완벽히 보장되어야 하는 반면, 낮은 지방재정 자립도를 핑계로 중앙으로부터 이전되는 각종 재원에 대해서는 그 이전과정과 이전후의 집행과정에 대해 보다 분명한 통제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는 결코 중앙으로부터 독립이나 격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기초자치단체의 구성원이며 광역자치단체의 주민이며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따라서 기초자치단체의 이익, 광역자치단체의 이익, 국가의 이익이 서로 조화되고 전체적으로 우선 순위가 제대로 매겨진 상태에서 중앙재정 그리고 지방재정이 운영되어야 한다.


최 광(崔 洸),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교수, 前 보건복지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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