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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미 불가침 협정 체결 제안의 의미

이춘근 / 2002-11-13 / 조회: 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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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11.13
No. 03


I. 서론


지난 10월 4일 우라늄 농축 방식을 통한 핵무기 개발 사실을 시인한 북한은 한국, 일본측의 제의는 묵살하는 한편 미국과는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핵문제가 다시 불거진 이후 북한이 미국에 대해 제시한 방법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결여한 포괄적인 것이었다. 우선 북한은 북한이 핵 개발을 재개하게 된 것은 미국의 대 북한 '적대시정책'이 그 원인이라 말하고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적대시 정책의 폐지' 란 협상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적대시 정책을 포기했음을 명백히 하는 기준도 없고 무엇이 적대시 정책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10월 25일 외교부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미국과 불가침 조약을 맺을 것을 제의하였다.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10월 25일자의 언급은 11월 1일 각각 주 러시아, 주 중국 북한 대사들에 의해 다시 강조되었다. 북한의 불가침 체결 언급에 대해 최초에는 ‘검토해볼 것’ 이라는 반응을 보였던 미국 정부는 이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 하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불가침 조약이란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을 하지 말자는 약속이며 미국이 북한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면 북한은 핵개발 계획을 포기할 수 있다는 데 미국이 왜 이를 거부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대미 불가침협정 제의에 대해 아무런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과연 북한이 대미 불가침 협정 제의를 통해 원하는 바는 무엇이며 미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본 국제 이슈 해설에서는 북한이 제기한 '불가침 조약'을 국제정치사에 나타나는 불가침 조약 사례들을 통해 짚어보고 북한측의 전략적 의도, 미국측 의 대응을 설명해 보기로 한다.



II. 불가침 조약의 역사적 사례


'불가침 조약' 은 그 형식적인 내용상 상당히 평화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는 국가간의 약속이다. 서로 전쟁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니 이런 약속이 있는 나라들의 국제관계는 진정 평화가 아니겠는가 ? 그러나 국제정치사 와 전쟁사에 나타나는 현실은 너무나도 판이하다. 불가침 조약이란 문자 그대로 조약을 체결하는 나라들이 상호 무력 공격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이며 역사상 유명한 불가침 조약들이 두 나라 혹은 3국 이상 다수의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 졌다.


문제는 불가침 조약이야 말로 역사상 가장 잘 지켜지지 않은 조약이라는데 있다. 국제정치에서 조약이란 언제든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특히 불가침 조약의 경우 그러했다. 불가침 조약이란 결국은 전쟁을 하고야 말 나라들이 당분간은 싸우지 말자고 약속하는데 불과 할 정도였다. 시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고 나중에 싸우고자 할 때 편의상 체결하는 것이 불가침 조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가침 조약의 역사는 비극적이며 실패의 역사였다. 역사상 유명한 불가침 조약의 사례들을 몇 가지 들어보기로 한다.

첫째, 1934년 1월 26일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조인되었던 불가침 조약을 보자. 이 조약은 프랑스와 폴란드의 동맹 관계를 약화시킴으로서 독일에 대한 포위전략을 붕괴시키고 독일의 동쪽을 안정화시킨다는 목표를 달성시킴으로서 2차 대전을 준비하는 독일의 전략에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당시 프랑스의 확실한 지원을 의심했던 폴란드는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함으로서 독일의 공격 방향을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로 돌릴 수 있고 자신의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39년 9월 1일 새벽 히틀러는 폴란드를 공격함으로서 제 2 차 세계대전의 불을 지폈다.


둘째 1938년 9월 30일 아침 영국의 체임벌린은 동맹국인 프랑스와 사전 협의 없이 히틀러와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약속을 히틀러에게 얻어낸 체임벌린은 의기 양양하게 영국으로 돌아와서 '이것이 우리시대의 평화'라고 외쳤다. 영국은 독일과는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 해 줌으로서 11개월 후 독일이 약소국(상호 그것도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폴란드를 공격, 2차 대전을 발발할 수 있는 길을 터 준 꼴이 되었다.


셋째, 영국의 독일과 불가침 협정 체결에 놀란 프랑스도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자고 했다. 같은 해 10월 18일 히틀러를 방문한 프랑스 대사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불가침 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의했고 히틀러는 12월 1일 독일 외무장관 리벤트롭을 파리로 보내 12월 6일 독불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프랑스는 독일이 동부 전선의 약소국을 장악한 후 곧바로 공격해야할 대상이었다.


네째로 1939년 9월 25일 체결되어 세계를 놀라게 한 독일과 소련간의 독소불가침 조약이 있다. 10년 기한으로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은 사실은 독일과 소련 양국의 상이한 음모의 결과였다. 독일은 이 조약을 통해 동부전선을 안정시킨 후 서부의 프랑스를 먼저 파괴한다는 2차 대전을 수행하기 위한 대 전략을 계획대로 추진 할 수 있었다. 물론 프랑스를 전격적으로 파괴 한 후 소련을 공격한다는 것이 독일의 전쟁전략이었다. 소련 역시 이 조약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들끼리 싸우다 지리멸렬 할 것을 기대 했었다. 1941년 350만의 독일군 대 병력이 소련을 공격(바바로사 작전)함으로서 악명 높은 독소불가침조약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처럼 역사상 나타난 몇 가지 유명한 불가침 조약의 사례들은 대개 전쟁으로 귀결되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조약 그 자체는 국제정치의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폴란드와 독일간의 경우처럼 약소국과 강대국간에 체결된 불가침조약도, 독소불가침조약의 경우처럼 강대국끼리 체결한 불가침 조약도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위에 제시한 유명한 사례들 외에 1933년 남아메리카 제국간에 맺어진 불가침 조약이 있었는데 이 조약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성공적인 불가침 조약은 불가침 조약이 없다 해도 특별히 전쟁을 해야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 맺어진 것이었다. 1932년 소련과 핀란드 사이에 맺어졌던 불가침 조약은 7년 후인 1939년 소련군 45만의 핀란드 침공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III. 북한이 미국에 제의한 불가침조약


이처럼 역사상 성공적인 사례를 찾기 어려운 불가침 조약이라는 특수한 국제 조약을 핵문제 해결과 결부시켜 북한이 미국에게 제의하였다. 북한이 제의한 대미 불가침 조약의 전략적 의도는 무엇일까 ? 그리고 북한의 전략적 의도를 미국이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한 분석 작업은 우선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고도의 외교 및 전략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대응 역시 대 테러 전쟁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전쟁을 진행하는 과정의 일환 이라는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10월 25일자 제안을 통해 “부시행정부가 우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 선제 공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명백히 우리에 대한 선전 포고” 라 규정하고 부시정부의 정책에 의해 “우리의 생존권은 사상 최악의 위협을 당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하에서 우리가 팔짱끼고 가만히 앉아있으리라고 생각 했다면 그보다 더 단순한 사고는 없을 것이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전제한 북한은 “조선반도에 조성된 엄중한 사태를 타개하기 위하여 우리는 조-미 사이에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핵문제 해결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도로 된다고 인정한다.”고 제안하였다.

북한은 한반도에 형성된 위기가 미국 때문이며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몰아 부친 결과 사태가 이렇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온 것은 북한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 핵 합의(1994.10.21)를 어기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라고 본다. 북한이 약속을 어기고 대량파괴무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이들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는 국가들에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이 핵 개발을 개시 한지 이미 3년여가 지난 2002년 1월 29일 부시 대통령의 연설을 통해 북한을 악의 축이라 지정했다는 것이다. 2002년 11월 10일 한국을 방문중인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 알브라이트(Albright) 여사는 미국은 약속을 다 지켰고 북한이 약속을 어긴 것이며 이는 김정일의 실수라고 말한 것은 미국의 입장을 잘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제의한 불가침 협정의 전략적 의도는 무엇이고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 국제정치의 역사를 꿰고 있을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이 북한의 대미 불가침 조약 제의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가능성은 아주 적어 보인다.

우선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기 위해서는 쌍방의 이해가 같아야 하거나 혹은 쌍방이 상대방을 위협하는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능력이 있는데 북한은 미국을 공격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 능력상의 불일치다. 즉, 문자 그대로 해석 할 경우 상호 불가침 조약이란 '북한과 미국이 서로를 공격하지 않을 것' 인데 현실적으로 미북 불가침 조약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을 약속 해 주는 것이다. 조약을 체결한 후 얻을 수 있는 이익에서 미국이 자신들이 훨씬 손해라고 느낄 것이다.

둘째로 미국이 북한의 불가침 조약 체결 제의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미국이 1953년 한국과 체결, 내년이면 5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될 한미 방위 조약의 존재 때문이다. 북한과는 불가침 협정을 체결하고 남한과는 전쟁이 날 경우 함께 싸울 것(그 싸움의 대상이 북한일 것임이 확실한)을 약속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북한은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상태 하에서의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동맹이 존재하는 한 북한은 미북 불가침 조약을 신뢰성 있는 약속으로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의 대미 불가침조약 체결의 전략적 목표는 한미 동맹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거꾸로 돌려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역시 성공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지만 미국은 북한측에게 미국이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북한은 남한에 대한 불가침을 약속하라고 요구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경우 미국과 북한간의 불가침 협정은 그 범위가 대폭 넓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제껏 핵의 문제를 자신들과 미국의 문제라고 주장해 온 북한이 이러한 제의를 받아들이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핵문제 그 자체가 통미봉남의 기본 전술인데 여기에 한국이 개입하는 상황을 허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언제라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조약체결 보다는 실질적인 보장 장치를 원할 것이다. 미국은 한미, 미일 동맹관계와 이를 실질적으로 보증하는 주한미군, 주일미군이야말로 동북아시아 장래의 안보를 위한 실질적인 장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 같은 안전 장치를 흔들어 놓을 수 있는 미국과 북한간의 불가침 조약 체결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IV. 결론


북한 핵 개발로 인해 한반도에는 다시 긴장이 다가오고 있다. 물론 북한의 핵개발 문제는 1994년 이후에도 문제가 아닌 적은 한번도 없었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 한 것이 아니라 일시 정지시키는 미봉책이었기 때문이다. 약속이 실천되는 과정도 애매하고 방법도 애매했다. 미국은 영변의 핵 시설을 폭탄 개발을 위한 것이라 간주했고 북한은 전기 발전을 위한 것이라 했다. 이를 중지하는 조건으로 북한에게 핵발전소를 지어주기로(전력난의 해결) 약속했으니 북한은 94년의 제네바 협정을 자신들의 승리로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과 북한은 94년 이후 현재까지의 상황 진전 과정에 대해서도 견해가 판이하다. 약속을 어긴 것은 미국이라는 북한과 그 반대라는 미국의 긴장이 팽팽하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 불가침조약을 제의, 북한 핵문제를 미국과 북한만의 문제로 몰아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례에서 보여지듯 그리고 현재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에서 보여지듯 불가침 조약이 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2001년 9월 11일 이후 변한 세상에서 미국이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어떤 나라가 대량파괴무기를 개발 혹은 보유하고 있는가의 문제를 넘어 그 나라의 체제가 테러를 지원하는 체제냐 아니냐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체제를 보장받으려 하나 미국은 북한의 현 체제를 테러를 지원하는 체제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李春根(政博. 자유기업원 國際問題硏究室長, lck@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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