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자유경제 시스템 기업가 정신 계승

최승노 / 2004-08-09 / 조회: 8,710       자유공론 8월호
[Special Theme] 한국의 보수주의 지킬 것과 버릴 것 : 경제부문
자유경제 시스템 기업가 정신 계승 - 정경유착, 반기업 윤리 버려야

인류의 역사가 늘 진보만 한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실험에서 보듯이, 어떤 이념과 체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삶은 윤택해지기도 하고 황폐해지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명분론에 치우쳐 이 땅의 주인들을 가난과 궁핍으로 몰아간 예가 여러 번 있었다.

1945년 해방의 기쁨은 분단의 고통과 함께 시작되었다.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간 체제경쟁의 최전선이었다. 북한은 자본주의 미국으로부터 남한 인민을 해방시키겠다며 동족간의 전쟁을 저질렀고, 삶의 터전을 철저히 파괴했다. 북한은 인민의 삶보다는 해방전쟁이라는 명분론에 치우쳐 인민의 이익을 배반하는 역사를 썼던 것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사회주의 망령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체제경쟁은 끝이 났다. 자유민주주의는 인류문명이 경험한 이념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고 진보를 가져온 정치적 이념으로 판명된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융성한 나라는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를 얻었으며, 이러한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었다.

냉전이 끝난 지 15년이 되었지만, 지금 한반도에는 아직도 사회주의 향수에 젖어있는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주체사상이라는 종교적 이념에 빠진 북한 지도층은 반외세 민족통일만을 외칠 뿐 인민의 굶주림에는 관심이 없다. 마치 고려말 온 나라 백성들이 몽고에 유린을 당하든 말든 강화도에서 대몽항전을 외치면서 60년씩 정권유지에 급급했던 최씨무인정권처럼 말이다.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 국민은 지금 자유시장경제시스템이 가져다주는 성공과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무역개방과 시장경제를 통한 실용주의는 우리 사회에 부와 명예를 가져다 주었다. 또 한국의 정치가 비록 권위적 정부 하에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유보되는 상황을 거쳤지만, 실용주의적 태도는 경제적 자유를 상당부분 허용했다. 경제자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진보의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운 비용을 초래할 통일조차도 실용적 차원에서 이룰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를 장악한 비판세력

세계의 대다수 좌파정부는 허울뿐인 사회주의 정책들을 포기하고 실질적으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는 이때, ‘때늦은 좌파세력’이 한국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다시 한번 비판세력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살만하지 않느냐, 더 잘 살아서 무엇하냐, 우리끼리 나누면서 평등하게 살자”는 평등 지향의 구호가 난무하면서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실 정치적 신념에 치우친 좌파세력이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경제다. 자본주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정태적 폐쇄계가 아닌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창출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동태적 개방계의 속성을 갖는다. 멈춰버린 자전거는 넘어지게 마련이고, 파이를 키우지 않고 분배를 개선할 방법은 없다.

북한과는 달리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한국 내에서 비판세력의 사회주의 성향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대표적인 집단으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반체제세력, 자유민주주의보다는 사회민주주의를 꿈꾸는 낭만적 좌파세력,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하지만 정부개입을 통해 사회복지를 지향하는 개혁세력 등이 있으며, 이들은 좌파연대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좌파세력이 진보로 위장하는 이유

자본주의의 성공이라는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이 이처럼 쉽게 좌파세력에게 문화, 정치를 내주고 사회, 경제까지 위협에 처해 있는 점은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권위적 정부가 낳은 가장 큰 폐해인 저항의식과 정치적 운동세력에서 찾을 수 있다. 억압의 기간이 긴 만큼 그 시대의 부를 창출해낸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도 깊어졌다. 자본주의의 핵인 기업에 대한 반감도 ‘재벌’이라는 용어로 쉽게 구체화되었다. 부자에 대한 피해의식과 증오심은 기득권을 빼앗아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심리를 자극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민주주의 달성이라는 도덕적 우월성을 기반으로 하였기에 손쉽게 이루어졌다.

헌신적인 민주화세력과 개혁세력을 현실 정치에 앞세워 명분을 확보한 좌파세력은 자신들을 진보세력으로 위장하여 외연을 확대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이름짓는 전략에 성공하였다. 사회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집단을 수구세력으로 몰고 자신들을 진보인양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좌파세력은 역사적으로 진보적 결과를 만든 적이 없다. 아무리 새롭게 포장해도 사회주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것은 고작 수십 년 동안 실험에 실패한 사회주의 청사진뿐이다. 좌파적 가치인 평등주의, 국가개입주의, 조합주의, 폐쇄주의 정책으로는 불평등의 개선도, 삶의 질적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진보적 성과를 낼 수 없는 태생적 한계라는 비극적 운명 앞에서 좌파세력이 할 수 있는 일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운동과 비판뿐이다. 하지만 비판이 대안일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저 저쪽이 아니라고만 외치는 비판세력에게 운전대를 맡긴 꼴이다.

하지만 개혁의 필요성만 외쳐도 손쉽게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경제적 토대없이 계속 지속될 수는 없다. 사상적으로 실패한 이념적 좌파세력은 지적으로 부정직하다. 사회주의세력은 정치 전면에 나서 있는 개혁세력을 신자유주의세력, 현실과 타협한 수정주의로 몰아세우지만 사실은 현실에 참여할 능력이 없거나 책임감이 희박한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들이 민주화세력과 개혁세력의 뒤에 숨어 언제까지 희희낙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는 현실이라는 뜨거운 햇빛에 녹아 내릴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정치를 이끄는 개혁세력은 사회주의 근본주의자들에 비해 최소한 현실을 인정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 땅의 좌파세력은 남 탓하기, 권위 깎아 내리기, 편갈라 싸움시키기, 증오심 키우기, 경제시스템 파괴하기 등 저급하고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펼치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결국 자신들의 지적 무능을 보다 빨리 증명하게될 처지다. 집권세력으로서의 역사적 엄숙함을 망각한 좌파세력은 경제의 기본원리를 무시하면서 밥그릇을 차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우리 삶을 지키는 것이 보수주의

삶의 현장에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수와 진보로 분류되는 것에 당혹해 하고 있다. 자신은 우도 아니고 좌도 아닌 실용적 중도로 남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이 바로 보수주의세력이다. 자신의 삶을 묵묵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기둥이며, 보수주의의 핵심이다. 마치 어둠 속을 밝히는 가로등처럼 우리 사회를 꿋꿋이 지키는 그런 존재다. 보수주의는 그래서 큰 형님 같은 존재다. 형 없이 어떻게 동생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기본질서를 세우지 않고서는 더 나은 개선을 바랄 수는 없다. 보수주의가 굳건히 하지 않고서는 진보도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보수주의는 무너지고 있다. 지금까지 쌓았던 권위와 질서는 폐기돼야할 구습으로 전락하고 있다.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성장동력 조차도 재벌개혁이라는 상징조작을 통해 파괴하다보니 경제 펀더멘탈까지 송두리째 흔들릴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자신이 왜 보수라고 불려지는 지도 알지 못한 채 개혁의 대상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기막히다. 열심히 자식 뒷바라지에 세월 가는지 몰랐던 부모가 학업을 다 마치고 멋진 모습으로 돌아온 자식으로부터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 나 같으면 남한테 베풀면서 여유있게 살텐데 말이야. 세상은 변했어. 그렇게 살지마!”라는 말에 그저 고개를 떨구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보수주의는 우리가 꼭 지켜야할 것을 지키자는 것이다. 우리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지키자는 것이다. 우리를 풍요롭게 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그 핵심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평등보다는 자유가 우선이다. 시장경제는 재산권과 시장원리가 그 근본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위협하고 우리 사회를 다시 가난의 늪으로 몰고 갈 가장 경계해야할 적은 바로 사회민주주의, 평등주의, 간섭주의다.

좌파세력은 이 땅에 진정한 보수정치세력이 없다며 우쭐거리고 있지만, 남 걱정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는 진보를 사칭하는 좌파세력이 문제다. 철지난 이념에 촌스런 좌파가 아닌 선진국 수준의 진정한 진보세력이 나와야 한다. 근본가치를 위협하는 사이비 진보가 아닌, 우리 삶의 환경을 개선하고 고쳐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진보세력 말이다. 틀린 줄 알면서도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집권세력의 뒤에서 지적 유희를 즐기는 좌파지식인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비겁하다. 권력의 맛에 취해 안주하는 수구적 좌파세력의 반성을 촉구한다.

자본주의가 가장 정의롭다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야기하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하다는 비판의식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꽃피울 수는 없다.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그 장점을 극대화하는 사회가 번영한다. 자본주의는 사실 가장 정의로운 체제다. 자신이 가치창출에 공헌한 만큼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만큼 정의로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재산권원리에 가장 충실한 정의로운 시스템이다. 남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아 평등을 실현하겠다는 사회주의 정책은 정의롭지도 못하며, 평등을 실현할 수도 없다.

좌파세력과 비판세력으로부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자유시장경제시스템이다. 자본주의를 부정하기보다는 자본주의를 굳건히 하는 것이 보다 질적으로 개선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이며, 보다 평등하고 다 함께 더 잘 사는 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더 진보의 길이다.

반대로 좌파적 가치를 대변하는 노동단체는 기득권 노동집단만을 위해 모든 사회구성원의 이해를 배신하는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진보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수구적이다. 우리끼리 잘 살자는 닫힌 민족주의는 우리를 우물안 개구리로 만든다. 또 감성적 단체주의에 의존하는 사회는 퇴보하게 마련이다. 조합주의, 민족주의, 단체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결과를 알 수 없기에 모두가 열심히 살고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국가가 시장을 대체해서 평등하게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회에는 기업가정신은 사라지고 부정부패만 남는다. 경쟁을 두려워해서는 진보는 없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지향하는 21세기 시대정신은 바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다. 국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잘 살려고 노력하는 정신이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할 가치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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