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총선 전 재정준칙 통과 쉽지 않다고 전망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처음으로 1천조 원을 돌파해 1천67조7천억원, 국가채무비율은 49.6%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말 국가채무비율 36%와 비교하면 5년간 증가 폭이 6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 8월호(2분기 기준 누계)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는 올해 6월 말 83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재정수지 적자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연금·의료비 부담이 커져 국가부채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가 재정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1년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공회전하고 있다.
그동안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공청회를 개최했고, 지난 7월 경제재정소위에선 조문별 검토까지 마친 상태다.
그러나 여야 간 이견만 확인하고 또다시 처리가 불발됐다.
정부·여당은 재정준칙의 필요성을 지속 주장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저성장 장기화 국면을 이유로 정부 지출을 법으로 막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교착상태에 빠진 재정준칙 논의에 물꼬를 틀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12일 연합인포맥스가 만난 정치·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국회에서 거대 양당이 극한의 대치 정국을 이어가고 있어 사실상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재정준칙 법제화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여야가 재정준칙 법제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만큼 이를 찬성하는 내용으로 당론을 채택해 국회에서의 논의가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내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새로운 22대 국회가 구성된 후 마무리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경제학 박사인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지난 정부의 방만한 재정지출에 코로나19까지 발생하면서 재정준칙 법제화 필요성이 우리 사회에 굉장히 부각됐다"며 "정치인들 입장에선 정부 돈을 필요할 때 쓰겠다는 속마음이 있기 때문에 재정준칙 법안이 국회에서 쉽게 통과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국가를 위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하루속히 여야가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논의의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 개별 의원들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각 당에서 (재정준칙 법제화에) 찬성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며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에 빚을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한 만큼, 법제화는 무조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국민들은 재정건전성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것 같은데 문제는 정치인들이 그런 국민적 눈높이를 못 맞추고 있다는 것"이라며 "재정준칙을 이야기하기 전에 민주당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하자고 하는데 법안이 통과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재정준칙 자체만을 놓고 보면) 여당이 (국회 통과를) 추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윤석열 대통령 스타일이 선거를 의식해 법제화를 미루거나 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라며 "다만 문제는 국회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없어 국회 통과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소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도 "지금 국회가 극한으로 대치 국면이기 때문에 재정준칙 법안이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풀어나가기 위해선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 해결하는 것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 소장은 "이미 지방에서는 선거 분위기로 들어가 있는 상황이고, 더 문제는 지금 21대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보면 임기 말 국회의원들이라는 정치적 상황도 같이 맞물려 있다"며 "재정준칙 법제화를 위한 기본적인 틀은 만들어 놓는다고 하더라도 (법안 통과 자체는) 다음 국회의원들, 총선 이후 22대 국회의원들의 과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 때문에 의무지출 증가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정부만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에 따라 미래세대의 부담을 적절히 완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돼야 우리도 살고 미래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지난 5년간 재정지출을 늘렸는데 경제성장률은 역대 최저다. 재정 만능주의에 벗어나 국회가 재정준칙을 정비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국민이 아는 게 중요하고, 언론도 국민들에게 의지를 갖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재정준칙 법제화의) 시금석이 될 것 같다"며 "세밀한 예산 심의 절차를 통해 여야가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면서 궁극적으로 관리재정수지 3% 이내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범사례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제언했다.
윤슬기 연합인포맥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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