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업원 주관 '애덤 스미스 300주년 탐방'에 참여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영국의 에딘버러, 글래스고 그리고 런던을 다녀왔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다니던 글래스고 대학, 교편을 잡던 에딘버러 대학, 그가 영면한 무덤 등을 두루 둘러보고 애덤 스미스 연구소 에이먼 버틀러 소장, IEA(Institute of Economic Affairs)의 교육 분야 담당자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줄곧 애덤 스미스를 집중적으로 생각해 볼 좋은 기회를 가졌다.
런던에서는 애덤 스미스를 계승한 20세기 대표적 자유주의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라이오넬 로빈스 교수의 초정을 받아 교수생활을 했던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를 찾아봤지만 하이에크의 행적은 찾기 어려웠다. 케인즈의 최대 논적이었던 하이에크는 후일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정도로 경제학계의 거목이었지만, 라이오넬 로빈스의 이름을 단 도서관만 보았을 뿐이다. LSE 시절의 하이에크조차도 케인즈 거시혁명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버린 셈이다.
사실 하이에크는 애덤 스미스 활동 당시의 스코틀랜드 도덕철학이 개진했던 '자생적 질서', 즉 인간행동들의 결과이지만 어떤 개인(들)의 의도된 결과가 아닌 질서라는 이 개념을 널리 전파한 학자였다. 또한 케인즈의 거시경제이론에 맞서 자본이론과 미시경제학에 바탕을 둔 경기순환이론을 펼쳐 칼도어, 힉스 등 뛰어난 학생들이 그의 이론에 흥미를 보였지만, 나중에는 그 학생들 대부분이 케인즈혁명에 동조하면서 그는 쓸쓸히 미국 시카고 대학으로 떠났다.
진리는 스스로를 밝힌다고 하지만, 경제학에서도 학자들조차 유행의 흐름을 탄다. 그래서 진실을 추구하려는 강렬한 동기와 이성에 근거한 논의를 존중하는 태도가 사회 전반에 흐를 때 비로소 그럴 것이다. 사실 그를 초대했던 라이오넬 로빈스조차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수요가 일어나자 일자리가 채워지는 것을 보고 말년에 케인지언으로 변신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이에크는 물론, 젊은이들의 목숨이 오가는 '전쟁이란 가격'을 지불해서라도 완전고용을 달성해야 하는지 반문하지만 말이다(Full Employment at Any Price?).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국인들이 곡물법을 폐지한 로버트 필 수상을 동상을 세워 기린다는 점이다. 영국의 정치 중심지라고 할 만한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와 빅벤 사이의 '의회광장(Parliament Square)'에는 훌륭한 정치인들의 동상을 세워 이들을 기린다. 히틀러에 대항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지팡이를 든 처칠 수상과 함께 의회광장에 로버트 필 수상이 동상이 되어 서 있다.
그의 동상을 보면서 스미스가 필 수상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의 모임에 초대되었는데 하필 스미스가 약속 시간에 맞추느라 헐레벌떡 뛰어오자 이들이 벌떡 일어섰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늦은 게 민망해서 애덤 스미스가 빨리 앉으라고 하자, 필 수상이 "선생님이 앉지 않았는데 어찌 제자들이 먼저 앉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사실 로버트 필 수상은 원래 곡물법의 유지를 주장하는 토리당을 이끌었지만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론을 받아들여 곡물법 폐지를 밀어붙였다. 이에 따라 토리당이 갈라졌기에 파당적 눈으로는 배신자겠지만, 그는 코브덴 등 곡물법 폐지 운동가들과 치열한 논쟁을 거치면서 소신이던 임금철칙설을 버리고 스미스의 자유무역론으로 '개종'했고 이를 정치적으로 관철하는 곡물법 폐지에 힘써 이를 이뤄낸 결단과 행동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의 주장은 GATT 체제로 구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중 패권경쟁의 구도 속에서 가치동맹의 중요성이 부상하면서 경제와 안보가 한 세트로 다뤄지고 이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가치동맹 블록과 전체주의 블록으로 나눠지고 교역도 블록 내 무역으로 좁아지는 추세다. 이런 현상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테지만, 애덤 스미스가 재산권을 존중하는 '정의'를 무엇보다 강조했기에 그런 국가들과 그렇지 못한 전체주의 국가들과의 갈등은 그의 이론 체계 속에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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