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도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도서정가제' 위헌성 여부를 가려내는 첫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이 올해 1월부터 계속되고 있다. 위헌으로 판정되지 않을 경우 웹툰·웹소설에서 도서정가제 확대 적용이 예상되면서 웹콘텐츠업계가 들끓고 있다.
15일 여성경제신문 취재결과 현재 시행 중인 '도서정가제도'는 지역서점 활성화란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소비자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 헌법 제37조 제1항 기본권 등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도서정가제'란 출판사가 정한 가격으로 책을 판매하는 제도다. 장르나 온라인·대형·소형 판매점의 차이 고려 없이 일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2014년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에 따라 책값의 직접적인 할인율을 10% 이내로 정하고 마일리지 등 간접 할인은 5%를 넘지 못한다.
법 개정 취지는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출판산업 그중에서도 지역 서점의 진흥을 촉구하자는 것이었다. 정부는 책을 교육·학술·문화 발전에 필수적인 공공재로 판단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화콘텐츠를 공공재적 가격제도로 보호하기 위해 도서정가제를 도입했다.
이런 도서정가제가 일반 책뿐만이 아니라 웹툰·웹소설 등 웹콘텐츠 시장에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만으로도 문제가 많은 가운데 적용 범위까지 확대될 경우 소비자 불만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먼저 책이 공공재가 맞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 특히 웹콘텐츠 시장의 경우 코믹·판타지·액션·로맨스 등 가볍게 볼 수 있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책의 '상품성'이 부각하면서 출판업계는 시장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졌다.
책은 출판업계 내부에서만 경쟁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등 OTT(Over the Top) 등장으로 세계 각국에서 콘텐츠가 쏟아져 무한 경쟁하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독서를 방해하는 요인 1위가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이었다.
이러한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판매자의 영업 자유까지 제한한다는 것이 도서정가제의 치명적 결점이다. 윤성현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한국공법학회지 투고 논문을 통해 "현행 도서정가제는 사업자의 직업행사 자유를 보호하지 못하며 가격 선택에 대한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논문은 현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도서정가제 위헌확인 사건의 참고인 의견서를 수정·보완했다.
헌법재판소는 소비자 자기결정권에는 거래 가격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했다(96헌가18). 출판사가 일괄적으로 설정한 가격으로 운영되는 도서정가제는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으로 책을 구입하는 걸 막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격은 상품 선택의 주요 결정 요인이다. 이는 전자출판·웹출판 영역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글로벌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웹툰 이용자들의 콘텐츠 이용 고려 기준은 '가격'이 33.8%로 두 번째로 높았다. 웹소설에서도 '가격'은 26.2%로 4위를 차지했다.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도서정가제에 대해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제도"라며 "출판사나 서점이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싼 가격으로 책을 판매하도록 해야 하는데, 담합이 이뤄지면서 소비자는 전반적인 책 가격이 올라가는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격 선택지가 줄어들다 보니 소비자는 새 책을 구입하기보다는 중고를 구매해 오히려 지역 서점보다 중고 서점이 활성화된 상황"이라며 "결국 소비자도 불편하고 출판사나 서점도 이익이 없다"고 덧붙였다.
도서정가제는 판매자 영업의 자유도 제한한다. 본지가 만난 지역 서점 운영자 A씨는 "부득이하게 책이 필요한 경우에는 교보문고처럼 대형서점에서 직접 책을 사서 판매하기도 한다"며 "이 경우 도서정가제로 인해 원가격대로 판매할 수밖에 없다"며 "대형서점은 마일리지 제도로 일종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지역 서점은 그걸 구현하는 덴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그렇다면 지역 서점은 통일된 책 가격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을까. 지역 서점 관계자는 가격 측면보다는 대형서점에서 찾기 힘든 특색에 집중한다고 했다. 특정 장르에 집중해 대형서점에서 갖추지 않는 책도 취급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
철학 서점 관계자 B씨는 대형서점에서 찾을 수 없는 책도 취급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는 "대형서점은 아무래도 팔리지 않는 책을 진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철학 입문자부터 전공자까지 읽기 좋은 책을 세분화해 대형서점의 철학 코너보다 더 많은 책을 판매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전했다.
또한 B씨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책을 판매하는 것보다 철학에 집중해 그래도 손님들이 꾸준히 방문해준다"며 "주변 지역 서점을 살펴보면 북카페나 굿즈 판매 등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차별성을 내세우려 하고 있다"고 했다.
윤 교수도 도서정가제보단 복합적이고 전문적인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게 지역 서점의 상생안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독서 진흥을 위한 조례가 점차 활발하게 운영되고 서점 창업에 대한 지원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게 오프라인 지역 서점이 많아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김혜선 여성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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