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새 정부의 정책이 한창 물밑 작업 중이다. 다만 그 방향을 미리 가늠해 볼 만한 단초가 있다. 바로 책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내 인생의 책’을 세 권 꼽은 바 있다.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다.
‘자유론’과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이미 본란에 소개된 바 있다. ‘자유론’은 사람은 고유한 존재로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각자 고유한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타인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한, 어떠한 자유도 허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다수의 위력에 의해 소수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으로 억압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 ‘다수의 횡포’는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주간조선 제2456호 참조)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다양한 각도에서 국가의 성공 및 실패 요인을 따져 본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바로 남북한이다. 조건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의 극단적 격차는 왜 생겼을까. 그것은 바로 제도 탓이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포용적 제도를 택했고, 북한은 중앙통제를 앞세워 폐쇄적 제도를 택했다. 전 세계적으로 두루 살펴보더라도 국가의 성쇠 요인은 ‘어떤 제도를 선택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주간조선 제2603호 참조)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1979)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기념비적 저작이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번영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진실로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나머지 악이 더없이 미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번영의 기반인 시장을 비난하며, ‘나머지 악’을 해결하기 위해 큰 정부·강력한 정부를 주문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가부장적 국가가 출현하는 배경이다.
미국에서 정부의 비대화와 통제·규제의 강화는 점점 가속화되어 왔다. 통제는 개인의 자유를 잠식하고, 시장의 활력을 앗아가는 ‘폭군’이다. 이 점은 일본과 인도를 비교해 보아도 분명하다. 메이지유신 직후 일본의 귀족적·권위주의적 엘리트들은 시장경제를 선택했다. 반면 2차대전 직후 인도의 민주적·자유주의적 엘리트들은 중앙통제를 선택했다. 결국 엘리트의 성격과는 관계없이 제도의 차이, 즉 자유냐 통제냐가 양국의 성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대공황도 정부의 ‘잘못된’ 통제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그전에 이미 극심한 불황과 부분적 예금인출사태가 벌어졌다. 통화를 풀어야 할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내부 갈등에 휩싸여 역사상 최고의 금리를 유지하는 등 과오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촉발된 금융 공황이 경기 침체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대공황으로 폭발했다. 그런데도 대공황은 흔히 자본주의의 병폐에 의한 시장 파탄으로 오인되어, 되레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는 빌미가 되었다.
뉴딜정책은 국가 재정을 급격하게 확대시켰고, 이어서 터진 2차대전은 전시 통제를 초래했다. 이를 통해 연방정부는 순식간에 ‘큰 정부’로 돌변했다. 큰 정부는 으레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복지국가를 지향한다. 실제로 단기간 내에 수많은 복지정책이 실시되고 점점 확대되었다. 그러나 복지정책은 관료제도의 비용·비능률과 더불어, 누수·부정·부패·로비 등이 개입한다. 또한 수혜자에게 근로의욕을 빼앗고 그들을 의존적 존재로 만든다.
그렇다고 사회적 부조를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일체의 복지제도를 폐지하고 음(陰)소득세(negative income tax) 도입을 제안한다. 음소득세란, 현행대로 일정 소득액 이상은 과세하되, 그 이하에 대해서는 부족분에 일정 비율을 곱해 보조해 주자는 것이다. 이 방안은 조세제도를 그대로 활용하여 복지제도의 복잡한 단점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음소득세에 대한 초보적 논의가 있었다. 그때 저자는 오히려 도입에 반대했다. 기존 복지제도를 놔둔 채 음소득세를 덧붙이려는 정치적 움직임 때문이다. 그것이 자칫 또 하나의 복지정책이 되어서는 곤란한 노릇이다.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다. 저자도 음소득세가 “이상적인 방안이지만, 당장 시행되기는 어렵다”고 탄식했다.
한편 기회의 평등은 자유와 전혀 갈등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평등에 관한 관심은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국가가 개입하면, 개인의 자유와 선택은 잠식되고 사회의 활력은 떨어진다. 더구나 그런 ‘선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새로운 특권층이 되고 만다. 결국 “평등을 자유보다 앞세우는 사회는 평등도 자유도 달성하지 못한다”.
오늘날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극히 제약된 분야가 바로 학교 교육이다. 정부는 학교에 엄청난 보조금을 주며 교육 전반을 획일적으로 강력하게 통제, 규제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경쟁이 실종되고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대안으로 저자는 수업료 쿠폰제를 제안한다. 그것은 교육 예산을 각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그들이 학교를 선택하게 하자는 방안이다. 이처럼 학부모와 학생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면 학교 간의 경쟁이 활성화될 것이다.
흔히 노동자의 생활 개선은 노동조합 덕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의 특권적 노동자에게만 해당한다. 강력한 노동조합이 그 조합원들을 위해 확보하는 이익은 다른 노동자들의 희생에 기반한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그런 혜택에서 배제된다. 오늘날 노동자의 생활 개선은 노동조합 때문이 아니라, 주로 시장경제가 가져온 번영에서 기인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경제적 활동의 동인이며, 각자 이기심에 따라 움직이더라도 시장 기능에 의해 사회 전체적으로 편익이 증진된다고 설파했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시장 기능이 무언가에 의해 불공정한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역할은 불공정 요인을 제거해, 시장을 다시금 정상화시키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공황 등을 거치며 시장 자체가 문제라는 오해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선한’ 의도를 가지고 시장에 뛰어들어 시장 자체를 좌지우지하려고 했다. 이것이 복지국가나 가부장적 국가, 공산국가가 연달아 출현한 배경이다. 하지만 복지국가는 많은 문제를 노정하기 시작했고, (이 책이 나올 당시) 공산국가도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미국은 자유가 폭넓고, 복지가 인색한 나라다. 그럼에도 저자는 자유가 부족하고 복지가 과하다고 비판한다.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따라서 그의 각론을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느냐 마느냐 하는 식의 말초적 논쟁은 무익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큰 방향에서 근본적 질문을 던져 보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선택할 자유’가 많아서 문제인가, 적어서 문제인가. 너무 많다면 줄여야 하고, 너무 적다면 늘려야 한다.
‘선택할 자유’ ‘자유론’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그 주제가 일맥상통한다. 자유를 향유하고 시장을 존중하며 포용적 제도를 운영한다면 사회적으로 번영과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과연 새 정부가 대통령의 철학에 따라 ‘선택할 자유’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늘려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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