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어떤 상점 주인이 고객에게 다른 상점보다 질이 좋지 않고 값이 비싼 상품을 판매한다면 고객들은 그 상점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그 상점 주인이 고객의 욕구를 충족지 못하는 상품을 판매한다면 고객은 그 상품들을 구입할 리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상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비자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고 그들에게 환심을 살 수 있는 상품을 준비해서 거래하기 마련이다. 소비자가 어떤 상점에 들어갔을 때, 물건을 사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비자는 자유롭게 사고 싶으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상점으로 갈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시장과 정부 관청의 차이점이다. 소비자는 선택할 자유가 있다. 경찰이라도 여러분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여러분이 원하지도 않는 물건값을 치르게 하거나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게 할 수도 없다.
《선택할 자유》 중 한 대목
“학생은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를 읽어본 적이 있나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선거에서 읽었다고 해서 주목받은 책입니다. 중고 책방에서 구해 읽어봤습니다.”
2023학년도 대학입시 인터뷰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 설정입니다. 주요 대학은 수시 원서에 수험생들이 재미있게 읽은 책 목록을 써넣도록 하는데요. 올해 상경계열 입시에서 이 책이 많이 거론될 듯합니다.
이 책은 1970년대 미국에서 방영된 TV 다큐멘터리 시리즈 10편을 엮어낸 기획 출판물입니다. 시리즈 사회자는 물론 저자인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이었죠. TV 시리즈 제목 역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였습니다. 한때 우리말로 ‘선택의 자유’라고 번역됐으나 최근 자유기업원이 재발간하면서 ‘선택할 자유’로 바꿨습니다.
프리드먼은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주류경제학으로 자리잡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경제학을 가열차게 비판합니다. 케인스는 일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갖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영국 경제학자입니다. 케인스는 ‘유효수요이론’을 주창했습니다. 불황과 불경기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유효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정부가 금융과 재정정책을 통해 돈을 가능한 한 많이 풀면 ‘소비→생산’이 증가한다는 겁니다.
프리드먼은 케인스가 조금 더 살았다면 유효수요이론이 엉터리였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맹공을 퍼붓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적 측면에서 케인스의 논리는 엉터리였다는 겁니다. 프리드먼은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정부의 개입과 간섭, 규제, 지출이 많은 나라와 그 반대인 자유시장경제 나라를 비교합니다. 프리드먼 교수는 “재산권을 부정하고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나라는 결코 번영할 수 없으며 그 반대인 나라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번영 중”이라고 주장합니다.
책은 10개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시장의 위력’ ‘통제라는 이름의 폭군’ ‘대공황의 해부’ ‘요람에서 무덤까지’ ‘빗나간 평등’ ‘학교교육-무엇이 문제인가’ ‘소비자는 누가 보호하는가’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은 누구인가’ ‘인플레이션’ ‘조류는 변하고 있다’가 제목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통제할수록, 정부가 평등을 확대할수록, 정부가 돈을 풀면 풀수록 번영은 오히려 뒷걸음친다는 거죠.
프리드먼은 이런 주장들을 말로만 읊조리지 않습니다. 그는 정부의 지시나 계획 없이도 생산과 소비가 조화롭게 이뤄지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그가 인용한 레너드 리드(Leonard Read)의 ‘나, 연필(I, Pencil)’ 에피소드는 독자로 하여금 무릎을 탁 치게 합니다. 이 이야기는 한 자루의 연필이 시장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재미있게 보여줍니다. 연필에 들어가는 흑연, 나무, 고무, 연철이 분업을 거쳐 하나의 연필로 탄생하는 것은 정부의 지시나 계획, 명령이 아니라 시장 덕분이라는 겁니다. ‘나, 연필’을 꼭 찾아 읽어보길 바랍니다.
프리드먼은 정부의 금융, 재정정책이 일으키는 인플레이션의 폐해를 가장 강하게 비판합니다. 정부가 돈을 풀면 반드시 물가가 오릅니다. 이것이 임금 상승을 자극하고, 결국 기업들이 가격 인상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고용을 줄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거죠.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라고 말한 이유죠. 케인스 경제학이 주류 경제학이 된 이후 정부가 모든 영역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게 프리드먼의 결론입니다.
프리드먼은 ‘작은 거인’이었습니다. 그의 키는 160㎝도 채 안 됐지만 그가 경제학계에 남긴 업적은 거대했습니다. 달변가였던 그는 강연을 통해 자유시장경제의 탁월성을 대중에게 알리려 노력했습니다. 다른 어떤 경제체제보다 시장경제가 잘 작동한다는 말을 그는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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