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실트론 과징금’ 부과
총수 ‘사업 기회 이용’ 첫 제재
사업 위험 무릅쓰고 계열사 지분 확보
전문가들 “사업 기회 아닌 책임경영”
대기업 총수 지분 취득 위축 불가피
SK “전원회의 입증된 사실 반영 안 돼
처벌 근거 부족”…법적 대응 시사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22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공정거래법상 ‘사익 편취’ 혐의로 과징금 8억원과 시정 조치(향후 금지 명령)를 결정하자 재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검찰 고발 조치까지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총수가 사업 위험을 부담하면서까지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는 책임경영이 이번 선례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수의 전문가는 이날 공정위가 과도한 처분을 내렸다고 지적한다. 총수나 경영진 등 대주주의 지분 취득은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사업 기회가 아닌 기업 가치 제고와 책임경영 의지의 표현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그간 총수의 지분 취득은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 방지,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 등 측면에서도 오히려 권장돼왔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전날 자유기업원이 주최한 ‘기업 경영의 자유와 총수의 책임경영’ 세미나에서 “최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인수는 절차뿐 아니라 실질적 내용도 투명하고 공정했으며, 어떠한 위법성도 없었다”면서 “(공정위 제재는) 총수가 계열사 지분을 확보해 책임경영을 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향후 기업들의 투자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사업 기회 제공은 경쟁 당국 관할 밖에 있는 문제로 중복 규제라는 주장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만 이를 독점규제법에도 규정해 형사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며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했다.
이번 처분은 기업이 총수에게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며 공정위가 처음으로 제재한 사례다. 총수의 지분 취득에 사업 기회 제공 조항을 적용한 것도 처음이다.
전례가 없는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첫 판단이 나오면서 업계는 큰 혼란에 빠진 형국이다. 앞으로 총수 등 대주주는 계열사 지분 취득이 안 되는 것인지, 대주주의 계열사 지분 취득이 가능하다면 요건은 무엇인지 등 기준이 투명하지 않고 모호하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과거 대기업 총수 일가가 회사의 사업 기회를 유용했는지 여부를 두고 무죄를 받은 사례도 있다. 1995년 신세계의 100% 자회사로 설립된 광주신세계는 1998년 유상 증자를 추진했는데 신세계는 신주 인수를 포기했다. 이 해당 지분을 당시 이사였던 정용진 부회장이 41억원(지분 83%)을 들여 모두 취득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 9월 광주신세계 지분 전량을 신세계에 2285억원에 팔아 차익을 거뒀고, 시민단체와 소액주주들은 정 부회장이 광주신세계 주식을 사들여 신세계가 누려야 할 사업 기회를 유용했다 주장하며 소를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정 부회장 손을 들어줬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총수와 계열사가 해외 기업을 인수한 경우는 문제가 없는 것인지, 단순히 총수의 지분 소유만으로 ‘상당한 이익’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 앞으로 투자를 진행할 때마다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부에선 공정위의 판단이 석연치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육성권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이번 결정을 검찰에 고발하지는 않기로 결정한 데 대해 “최 회장이 (위법 행위를)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가 없고, 이런 행위 유형에 대한 제재 선례가 없어 법 위반 인식이 부족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시정 조치로 끝났을 문제인데 기업인 흠집내기가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SK는 이번 결정에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결국 사건은 고등법원 등에서 법정 다툼이 이어질 전망이다. SK그룹 측은 입장문을 내고 “그동안 충실하게 소명했음에도 제재 결정이 내려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지난 15일 전원회의 당시 사업 기회 제공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 등이 이번 결정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 참고인 진술과 관련 증빙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 관계와 법리 판단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의결서를 받는 대로 세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종무기자 j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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