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 고민, 정부국채 매입 앞선 포석이란 시선
무리한 신용확장에 민간부문 재정악화, 특정자산 폭등
코로나19 충격으로 벌어든 수익으로는 이자도 못갚는 기업·가계가 급증하는 가운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앞으로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입을 열었다. 빚으로 돈 찍어 내기를 대체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결론이다.
25일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자설명회를 열어 "한은은 연평균 2.0%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통화정책을 운용해왔지만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3%에 그칠 전망"이라면서도 통화완화 정책을 이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아울러 물가안정(인플레이션) 목표제에 대한 재검토 의지도 다시 확인해줬다.
다만 당장에는 물가안정목표제의 골간을 이루는 소비자물가지수 등에 손을 대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물가안정목표제 방식으로 관리된 전통적인 통화정책에 대해 최근 회의감을 보이고 있다. 이날도 그는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을 오랫동안 밑돌았다"며 "경제구조 변화가 인플레이션 동학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연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일 때까지 기존의 통화완화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뜻이지만, 한은이 그동안 무리한 신용확대 정책을 펼쳐온 것만으로 '디플레이션 속에서 특정자산 가격 급등 현상' 등 부작용이 속출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 시간끌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부동산·주식 급등 원인은 특정 물가지수에 국한해 목표를 정하고 통화정책을 수행해온 탓에 있다. 물가안정목표제는 특정 물가지수, 즉 소비자물가지수를 사용한다. 하지만 통화량 변화에 따른 재화의 가격변동은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는 재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통화량 변동에 따라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부동산·주식 등 특정자산에서 국지적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자원배분에 악영향을 미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준으로 하는 현행제도는 명백히 틀린 방식이란 얘기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과거 자산 가격 버블이 터져온 사례를 보면 소비자물가의 안정성을 추구한 신용 확장에 그 원인이 있다"며 "국내적으로 2002~2003년과 2005~2006년 주택 가격이 폭등했던 것도 같은 원리였다"고 말했다.
국내 경제 상황을 보면 딱 맞아 떨어진다. 한은 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약 2912조원 수준이던 일반통화(M1) 평균잔액은 2020년 4월 3019조원으로 10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M1이 3000조원을 돌파한 것은 2001년 통계 집계 이래 처음이다. 반면 통화량 수직 상승에도 불구하고 5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대비 -0.3%로, 4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5%로 떨어졌다.
한은 보고서에도 이같은 문제가 언급됐다. "대규모 감염병 확산이나 경제위기 이후 민간은 예비적 저축을 늘리는 경향이 있으며, 부채수준이 높을 경우 부채상환을 위해 소비나 투자를 억제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이런 부담으로 이 총재는 "추가적으로 통화를 완화할 지 여부는 코로나가 국내외 금융·경제에 미치는 영향, 금융안정상황의 변화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신중하게 판단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이와는 별개로, 이 총재가 대안책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부발행 국채를 매입하기에 앞선 포석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은행권 한 관계자는 "올해까지는 국내·해외시장 자체적으로 국채를 소화할 여력은 있다"며 "불가피하게 한은이 매입을 하더라도 나머지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에서는 중앙은행의 신용확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정부의 유동성 지원은 자금위기를 넘기는 효과를 주지만, 기업 경쟁력을 살리는 효과는 전혀 없다"며 "기업이 다시 살아나려면, 주52시간제 등 노동 및 환경 관련 규제를 해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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