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기각’ 최악 피했지만 검찰수사에 경영정상화 발목…대내외 악재 우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삼성은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검찰수사가 장기화되면서 경영 정상화에 차질을 빚고 있다. 대내외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삼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 부회장은 비상 경영에 속도를 낼 것으로 분석된다.
9일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서울법원종합청사 서관 321호 법정에서 이 부회장과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64)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진행 후 모두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회장은 전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8시간 30분 동안 영장심사를 받았다. 나머지 이들에 대한 심사가 진행되며 법정에서 대기했다. 총 10시간 50분 간 진행된 심사 끝에 이 부회장 등은 경기 의왕에 위치한 서울구치소에서 심사 결과를 기다렸다.
이 부회장은 법원의 기각 결정 이후 오전 2시 42분께 서울구치소에서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차량을 타고 서울 한남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이 부회장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날 중 업무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총수부재’라는 최악의 위기를 피하게 돼 한시름 놓았다는 분위기다.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삼성은 절박함 속에 법원 결정을 기다렸다. 삼성 측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구속되는 상황은 아니라 일단은 안심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검찰이 그 다음에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전했다.
이날 법원은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자연스레 삼성 측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는 법원의 이번 결정이 검찰 시민위원들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 부회장 측은 지난 2일 기소 여부 및 신병처리 방향에 대해 검찰 외부의 판단을 듣고 싶다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 소집을 요청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오는 11일 부의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부회장 사건을 검찰수사심의위에 회부할지 논의할 방침이다. 부의심의위원회는 검찰시민위원 중 무작위로 추첨된 15명으로 구성된다. 부의심의위가 소집을 결정하면 검찰총장은 이를 받아들여 심의위를 소집해야 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삼성으로서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집중해서 기소를 면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며 “총수 부재라는 리스크도 줄일 수 있고 일단은 안도를 하면서 갈 것이다”고 전망했다.
반면 검찰은 애초 영장 청구가 무리수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사건과 관련해 이 부회장에게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지난 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미 1년 6개월 이상 수사를 진행하며 50여 차례의 압수수색과 110여명에 대한 430여회의 소환 조사를 하는 등 다수의 증거를 확보했음에도 증거 인멸 우려를 들어 지금에 와서 갑자기 구속 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왔다.
한시름 던 삼성…이재용 부회장 경영복귀로 ‘경험 못한 위기’ 극복 나선다
삼성은 올해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 미·중 무역분쟁 심화 등으로 경영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한·일 관계 악화 조짐까지 보였는데 검찰의 수사 일정 강행으로 이 부회장의 구속 기로 등 변수까지 발생했다.
이에 삼성은 최근 며칠 간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틀 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질적으로의 대전환’을 천명한 ‘신경영 선언’이 27주년을 맞았지만 이를 기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이 부회장 등에게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혐의,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삼성은 지난 2일 신청한 심의위 소집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로 무력화됐다며 당황한 분위기였다.
과거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은 한동안 투자나 사업재편 등 현안이 ‘올스톱’되다시피 했다. 그가 구속됐던 2017년 2월 이후 현재까지도 굵직한 M&A는 진행되지 않았다. 2017년 7월 이노틱스, 11월 플런티 등 스타트업을 인수하긴 했지만 대형 M&A는 2016년 11월 전장기업 하만 인수가 마지막이었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삼성은 “지금의 위기는 삼성으로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며 “장기간에 걸친 검찰수사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이 위축돼 있다”고 밝히며긴박한 경영 위기 상황에 처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경영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고 삼성은 경영 전반이 멈췄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아도 돼 일단 한시름 덜게 됐다. 동시에 산적한 현안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최근 한일 갈등이 다시 깊어질 조짐을 보이자 반도체 사업을 중심으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하는 등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양국 관계가 악화하면 최근 삼성전자가 발표한 평택캠퍼스의 극자외선(EUV) 파운드리 생산라인 및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투자 등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하거나 불구속 기소를 한 후 재판 과정에서 혐의 입증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2017년 1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후 다음 달 재청구된 구속영장에 법원이 발부 결정을 내려 구속된 바 있다.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재판 과정이 남아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번 법원 결정이 합당하다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정치권 개입 등으로 기업의 경영 활동이 어려워진 점에 우려를 표했다. 이에 기업의 활동영역을 한정하는 규제 등을 혁파하면서 경제성장동력을 일으키는 기업의 생산성 확대에 주력해야 할 점을 분명히 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장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정치재판이 오랜 시간 진행되며 경영활동에 차질이 빚어지고 국가적으로도 적잖은 피해를 입게 됐다”며 “정치권에서 지나치게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자제할 필요가 있고 경영인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이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21대 국회에서 규제 철폐에 보다 힘쓸 필요가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기업보다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에 보다 관심을 가지며 시장경제 촉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주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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