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원칙 저버린 땜질처방으론 파업 못막아"

관리자 / 2003-05-19 / 조회: 12,299       중앙일보
Untitled Document 제 목 : 지금은 노조시대 (제3부) 1. 노동정책 좌담회
보도일 : 2003년 05월 19일
보도처 : 중앙일보, 10면

[지금은 노조시대] < 제3부 > 1. 노동정책 좌담회
"원칙 저버린 땜질처방으론 파업 못막아"

새 정부의 노동정책이 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그 정책들이 과연 우리의 대립적인 노사문화를 '사회통합적'인 노사문화로 바꿀 수 있을까. 새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노동계와 재계의 시각은 판이하게 갈린다.

한편에서는 균형발전에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경제의 틀을 무너뜨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동정책은 정치논리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국가경제의 관점에 입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2일 시작된 본지의 '지금은 노조시대' 시리즈와 관련, 우리의 노사관행과 노동 현안에 대해 긴급 좌담회를 열고 노사 및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본다.


◇ 길고 과격한 분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이원덕 원장=노사 간에 불신의 골이 너무 깊다. 신뢰회복이 중요하다. 공정한 법과 원칙이 만들어지고 집행돼야 한다.

▶이동응 상무=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어야만 신뢰회복이 가능하다. 노사관계가 투명해져야 한다. 그래야 법과 원칙이 지켜지고 노사관계가 안정돼 협력적 관계로 갈 수 있다.

▶이정식 본부장=노사문제를 파업과 노동쟁의로만 보는 시각은 고쳐져야 한다. 법에 규정된 노동자의 기본권이 존중돼야 한다. 문제가 터진 다음에 해결하려는 태도가 노사관계를 꼬이게 했다. 갈등과 분쟁 조정 능력을 높여야 한다.

▶손낙구 실장=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곳에서 분규가 심하게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 노조를 인정하고 대화에 나서면 노조도 달라질 것이다.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노사 양측이 지킬 수 있는 법으로 개선돼야 한다. 외국처럼 노동자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 지금과 같은 파업은 필요없을 수도 있다.

▶김정호 원장=과격할수록 이익이 되니까 과격해지는 것이다. 폭력 사용 등에 대해 국가가 원칙을 갖고 대응해 과격한 파업은 손해라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 정부에 바라는 노동정책 방향은.

▶李본부장=노사 간 힘의 균형을 잡겠다는 현 정부의 방향은 맞다. 노동계는 1987~96년 공세를 취했지만 97년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수세에 몰렸다.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과정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힘의 논리를 새롭게 정리해야 하는 단계에 직면했다.

다만 새 정부의 기조가 경제계의 논리에 밀려 후퇴하거나 왔다갔다하면 이것이 더 위험한 것이다. 정부 정책의 역할은 향도(嚮導)와 같은데 이것이 흔들리면 전체가 다 흔들린다. 방향이 정해지면 일관되게 가야 한다.

▶孫실장=노동정책을 사회정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문제를 경제문제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사회정책으로서 노동정책을 펴야 한다. 새 정부가 비정규직과 관련한 대선공약은 꼭 지켰으면 한다. 그들이 안심하고 먹고 살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바꿔야 한다.

▶李원장=노사관계에 관해 공정한 법과 원칙을 설정하고 이를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분규를 따라가는 행정이 아니라 예측력을 높여 예방적 노사관계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위원회와 같은 분쟁해결 기구나 고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아직은 노동분야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부족하다. 노동분야를 소홀히 대하면서 노사관계 안정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李상무=노사분규와 관련해 그동안 덮어두기식, 임시방편적 해결책이 많았다. 분규와 파업은 피할 수 없다.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새 정부는 힘의 균형에 있어 노측이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새 정부의 학습기간으로 보인다. 노동계에 우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학습이 끝나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

▶李본부장.孫실장=바로 그것이 노조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푸나.

▶李본부장=비정규직은 만성적 임금 및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계속 비정규직으로 남는다. 무분별한 비정규직 채용도 심각하다. 이를 규제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조직화돼야 한다.

▶李원장=사회보험 적용률은 정규직이 77%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14%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은 임금.복지.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비자발적이다. 자신들의 이익도 대변할 수 없다. 2007년 사업장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비정규직 노조가 많이 생겨 사회갈등 요인이 될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추구해야 할 가치지만 행정적으로 강행하는 것은 어렵다.

▶孫실장=화물연대 회원이 근로자냐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상당수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들처럼 애매한 위치에 있다. 역대 정권이 양산해 온 비정규직 문제가 이제 폭발하고 있다. 잘 풀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비용절감 차원에서 늘어난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李상무=화물연대 회원들은 자영업자다. 이들은 민법과 상법 계약에 따라 노무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계약에 따라 보호받지 못한다고 노동자가 돼 노동법을 적용해달라는 것은 맞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정규직에 대한 지나친 보호 때문에 한국에서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해소돼야 하지만 법으로 강제하면 노동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

▶金원장=근로조건이 경직돼 생산성보다 비용이 높아지면 고용을 덜하게 될 것이고 실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룰 땐 이런 면도 고려해야 한다.

◇ 고용허가제는 인력난 해소에 기여하나.

▶李상무=고용허가제와 관련해 생각해야 할 것은 인권보호냐, 외국 인력의 효율적 사용이냐의 문제다. 후자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 권익보호는 효율적으로 인력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확립되는 것이다.

▶李본부장=인권보호와 효율적 수급관리체계 확립은 보완적 개념이다. 효율적인 인력관리를 위해서도 인권보호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산업연수생제는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 불법체류자들은 두어달 일하고 직장을 옮기면서 임금만 올리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오히려 노동력 수급이 원활해 질 수 있다.

▶李원장=고용허가제는 불법체류 외국인력을 대체하는 제도다. 우려와 달리 중소기업은 안정적으로 인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인건비도 지금보다 더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노사분규를 일으킬 가능성도 없다. 중소기업에 훨씬 이익이 될 수 있다.

대만의 경우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뒤 중소기업이 살아나고 내국인 일자리도 늘어났다.

▶孫실장=우리가 필요해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였으면 그들이 약자로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낮은 수준의 기본권은 보장해야 한다.

◇ 산별교섭은 노사문화를 개선시키는가.

▶孫실장=기업별 교섭은 산업차원의 문제를 푸는 데 한계가 있다. 주5일제나 고용 등의 문제는 산별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 지불능력이 있는 회사의 힘센 노조는 임금을 많이 올렸다.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가 커졌다. 앞으로 산별교섭이 임금 부분을 다루면 그 업종의 임금 최저 인상분이 결정될 것이다. 말하자면 그 업종에서 제일 어려운 노동자를 위한 교섭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사업주 입장에서도 1년 내내 노사관계 때문에 씨름할 필요없이 교섭비용을 줄일 수 있다.

▶李상무=실제 상황은 다르다. 지난해 3백여건의 파업 중 3분의2 정도가 산별교섭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됐다. 기업간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최근 몇년간 산별교섭 사례를 보면 결국 이중교섭이 됐다. 노조는 산별교섭이 끝나고 개별기업에서 다시 협상해 더 얻어낸다. 산별교섭의 순기능을 느낄 수 없고 피해만 부각되니 거부하는 것이다.

▶李본부장=산별교섭은 노사관계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금융노조가 노조로서는 처음으로 주5일 근무제에 합의했다. 기업별 노조였으면 불가능했다. 그 이후 주5일제가 한국사회의 대세가 됐다.

기업별 노조체제는 모든 것을 기업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노사관계다. 기업과 정부는 노조가 너무 세질까봐 산별로 가는 것을 두려워 한다. 비록 산별로 전환되는 과정에 약간의 비용이 들겠지만 초기 전환 비용은 기꺼이 지불해야 한다.

◇ 노조의 경영참여는 합당한가.

▶金원장=기업의 주인은 궁극적으로 주주다. 근로자는 계약자의 위치에 있다. 기업 경영은 주주가 하는 것이 맞다. 근로자가 경영에 나서면 기업이 단기주의에 빠질 수 있다.

▶孫실장=노조가 경영참여를 주장하는 것은 고용의 변동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사실 경영참여는 기업의 전략 운영에까지 참여해야 하는 것인데 이런 수준에는 가지도 못했다. 경영참여에 대한 우려는 과도한 해석이다. 노조의 경영참여는 기업의 투명성 제고나 노사관계 안정에 도움이 된다.

▶李상무=선진국에서는 공장이전 등과 관련한 노조의 문제제기가 많다. 그렇지만 실제로 공장을 옮기느냐 마느냐의 결정은 경영진이 내린다. 노조와 협의하는 사항은 이전에 따라 발생되는 근로조건의 변동과 관련된 것뿐이다. 경영에 관한 최종 결정은 경영진에 맡겨야 한다. 무조건 뭐든지 합의하자고 하면 힘들어진다.

▶李원장=경영참가는 확대돼야 한다. 노사관계 안정과 근로자의 헌신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립적인 교섭과 협상을 통해 이뤄지는 경영참여는 문제가 있다. 경영참여가 힘의 논리로 돼서는 안된다. 노동조합도 경영과 관련해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李본부장=경영참여는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협력적 노사관계를 위해서는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실정에 맞는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李상무=근로자 참여가 협력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참여에는 여러가지 스펙트럼이 있다. 맨 끝에 있는 것이 경영참여다. 극단적 형태로 참여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정리=남윤호.하현옥 기자 <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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