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제조업이 무너진다③] "해고 못하니 고용도 못해"
보도일 : 2003년 07월 29일
보도처 : 조선일보, @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는 90년대까지 브라운관 업계의 초우량 기업으로 통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고 브라운관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이 회사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회사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위해 작년에 직원들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하지만 노조는 회사의 인원정리 계획에 강력 반발하면서 60일간 장기 파업을 벌였다. 결국 오리온전기는 최근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수순을 밟게 됐다.
대우자동차도 부도 후에 감원에 반대하는 노조 때문에 해외 매각작업이 여러차례 무산됐다. GM·포드는 인수에 앞서 대우차 인원감축을 요청했으나, 노조는 파업으로 맞섰다. 대우차는 결국 7000여명을 대량 감축한 뒤에야 작년 GM에 매각됐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차는 매각이 지연되면서 협상가격이 계속 떨어졌고, 그 피해는 납세자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자유기업원의 권혁철 정책분석실장은 “장사가 잘 되면 사람을 많이 뽑고, 어려우면 인력을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경영 상황에 따른 해고의 자유가 없으면 고용도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차·쌍용차 등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에서 노조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세우는 권한이나, 인원배치는 모두 노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회사가 일감이 많아, 일감이 적은 생산라인의 직원을 전환 배치하거나 생산 속도를 높이고 싶어도 희망사항일 뿐이다.
일감이 없는 생산라인의 직원은 공장 청소나 잔디밭에서 풀을 뽑으며 소일한다. 노조 대의원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임무는 ‘현장감독’일 뿐이다.
그런데도 회사는 이들에게 연간 총 수백억원의 급여를 지급한다. 김동진 현대차 사장은 “노조 대의원들이 공장에서는 왕(王)”이라며 “그들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정규직 사원의 경우 대부분 정년인 58세가 될 때까지 단 한 명도 해고할 수 없다. 반면, 임시직은 하도급업체와 맺은 계약을 해지하면 그걸로 끝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신입사원의 별명은 ‘천연기념물’이다. 그만큼 희귀하고 드물다는 뜻이다. IMF 사태 이후 4년간 단 한명의 신입사원도 뽑지 못한 포스코가 지난 2001년 첫 인턴사원을 뽑자, 현장 직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포스코가 수년간 신입사원을 충원하지 못한 이유는 퇴출 대상 직원들이 나가지 않겠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전직(轉職) 프로그램을 만들고, 퇴직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윤석만 포스코 전무는 “지금 산업 현장은 심각한 동맥경화에 걸려있다”며 “이같은 경직된 노동시장이 제조업 기반 자체를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신입사원이 제때 충원되지 않다보니 한 부서에서 ‘사수’(전임자)와 ‘조수’(후임자) 간에 10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 정년이 57세인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43세. 20~30대도 힘든 철판 용접과 조립 작업을 30년 전에 들어온 50대 직원이 맡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최경수 박사는 “모든 직원에게 정년을 보장하는 기업은 현실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며 “기업에 고용의 재량권을 넓혀주는 대신 사회보험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근로자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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