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 이진영 칼럼 > 나의 하이에크 전집 완독 도전기

자유경제원 / 2015-04-24 / 조회: 2,798       업코리아

나는 쉽고 얇은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학교를 오고 가는 시간만 잘 활용해도 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기가 힘들다.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의 활자를 소환할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속 수많은 글들은 나의 일일 활자 수요량을 넘치게 채운다. 2014년을 정리하며 한 해 동안 읽은 책을 생각해봤다.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개봉 전 소설로 먼저 읽어봤다는 게 가장 뿌듯하고, 유일한 기억이었다.

요즘 뇌섹남이 인기라는데 적어도 뇌추남은 되기 싫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무식해질 게 뻔했다. 어느 여자 연예인들의 말다툼은 전후 상황까지 확실하게 꿰차고 있으면서 시사 문제에 대해서는 냉소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태도라면 말이다. 요즘은 뇌섹남이 인기라는데 적어도 뇌추남은 되기 싫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게 분기 단위로 독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면 1년에 최소 책 4권 이상은 읽을 수 있으리란 판단이 섰다. 그래도 4권은 너무 적은가 싶어 목표를 조금 늘렸다. 분기별로 주제를 정해 관련 책을 2권 이상 읽기로 했다.

첫 번째 주제는 자유주의였다. 예전부터 막연하게 알고 있던 자유주의 사상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이해해보고 싶었다. 전경련 주최 자유주의 강연을 통해 알게 된 미제스와 바스티아 사이에서 나름 심각한 고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유경제원 홈페이지에서 거대한 이름을 보게 됐다. 바로 하이에크다. 

때마침 <하이에크 전집 서평 공모전>이 진행 중이었다. 대상 상금은 무려 100만원. 나의 나태함에 강제성을 부여하기엔 충분한 금액이었다. 더구나 자유경제원에서는 하이에크 전집을 직접 복간하여 권당 5,0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7권 다 합쳐도 웬만한 양장본 책 한 권 값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대상을 탈 경우 96만 5천원이 이익이라는 알량한 손익 계산은 절대 하지 않은 채 자유주의에 대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하이에크 전집을 즉시 구매했다.

1시간 동안 붙잡고 있어도 10페이지를 채 못 읽는 경우가 태반 

전집이 도착 한 뒤 한 동안 막막했다. 일단 어느 책부터 읽어야 될지 몰랐고 고전 특유의 번역체 문장이 잘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시간 동안 붙잡고 있어도 10페이지를 채 못 읽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하이에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하이에크에 대한 내 지식은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배웠던 '석유 파동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의 대명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인터넷에 '하이에크’를 검색해서 관련 글들을 읽었다. 이 때 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하이에크 인용에 숨어 있는 일정한 패턴이었다. 유독 하이에크에 관해서만큼은 '시장은 자생적 질서의 결과다.’나 '사회주의는 치명적 자만이었다.’ 같은 특정 문구들이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있었다. 하이에크의 수많은 저서에 담겨 있는 수많은 문장 중 극히 일부였다. 이 때 난 하이에크를 즐겨 인용하는 사람들조차 하이에크를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이에크 전집 완독에 대한 동기 부여가 더 커지는 순간이었다. 

   
<하이에크 전집은 완독 후 장식용으로도 쓸 만하다. 뭔가 있어 보인다.>

네 문단으로 요약하는 하이에크 전집의 핵심 내용  

우선 저술된 순서대로 독서를 시작했다. 1948년 출간된 『개인주의와 경제질서』가 가장 먼저였다. 책 내용의 대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하이에크의 핵심적인 생각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 핵심을 내 식대로 표현하면 “인간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 고, 하이에크의 좀 더 고상한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 지식의 불완전성” 이다. 

『감각적 질서』는 이러한 '인간 지식의 불완정성’ 문제를 심리학과 생리학을 통해 다룬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가장 어려웠다. 그 이유는 전문 용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간재뉴런, 축색, 수상돌기, 신경섬유 같은 단어들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핵심 내용은 역시 간단했다. 인간의 신경기관은 진화를 거치면서 외부의 자극을 취사선택하는 감각적 질서를 갖게 되었는데, 이 감각적 질서 때문에 인간의 지식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쓰고 보니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의 지식은 불완전하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so what?" 이 물음에 대한 하이에크의 답변이 바로 『자유헌정론Ⅰ·Ⅱ』 와 『법·입법 그리고 자유Ⅱ·Ⅲ』 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이에크는 이 두 권의 책에서 인간의 지식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법을 바로 세워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결정하려 한다면? 1988년 출간된 『치명적 자만』 은 이 문제에 대한 하이에크의 마지막 결론이다. 하이에크는 단언한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반드시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결국 소련이 수소폭탄을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만 빵과 버터를 만드는 데는 실패하면서 하이에크의 단언은 옳았던 것으로 판명된다. (하이에크 전집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독후감은 필자의 졸고 「자유의 오래된 질서」 https://www.cfe.org/20150310_137053 를 참조 바란다.) 

인간에게 자유(自由)는 말 그대로 자기 존재(自)의 이유(由)다 

하이에크 전집을 읽은 뒤 우리 현실을 생각해봤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자유를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거나 상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해 왔다. 그 대신 계획을 요구했다. 때로는 대통령의 선한 계획을 요구했고 때로는 국회의원의 화끈한 계획을 요구했다. 그 계획은 대부분 엉성했고, 가끔 치밀했지만 결과는 전부 좋지 못했다. 모두 자유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에크의 표현대로 자유와 부자유 사이에는 중도가 없다. 부자의 '선택할 자유’를 빼앗으면 가난한 자의 '부자 될 자유’도 함께 빼앗기기 때문이다. 왜 우리 정치는 매번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는가? 왜 우리 경제는 오랫동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왜 우리 문화는, 우리 과학은, 그리고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가? 하이에크가 내린 대답은, 그리고 하이에크를 읽은 뒤 내가 내린 대답은 바로 '자유’였다. 

나는 결국 대상을 타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에게 자유(自由)는 말 그대로 자기 존재(自)의 이유(由)라는 깨달음이다. 단순히 '아!’ 하는 추상적인 깨달음이 아니다. 하이에크의 접근법대로 철학과 심리학을 아우르는 입체적인 깨달음이다. 지난 몇 달간 하이에크 전집을 읽는 과정은 대단히 고단했지만 모든 사안을 자유주의의 틀로 적당히 썰어볼 수 있는 하이에크식 쾌도를 얻었으니 충분히 만족한다. 그거면 됐다. 

  

이진영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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