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인공지능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자유경제원 / 2016-03-24 / 조회: 5,962       중앙일보

세기의 바둑 대결로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대한 관심이 가히 폭발적이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 차세대 산업을 주도하리란 전망 앞에서 스티븐 호킹 같은 과학자마저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실업 문제부터 오작동과 제어 불능에 대한 우려까지 이유는 다양하다. 영화도 일찌감치 부작용을 제기해 왔다. 1968년작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서 컴퓨터 '할'이 인간을 배신하는 장면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영화 ‘매트릭스’는 아예 인간이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암울한 가상사회를 그렸다. 남루한 옷차림의 극소수 사람만이 첨단 기계에 힘겹게 대항하는 스토리를 해석하다 보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인간 소외’ 개념이 자연히 겹쳐 보인다.

 

파란 약이냐 빨간 약이냐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빨간 약과 파란 약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네오는 빨간 약을 고르고 잔혹한 기계사회의 진실을 알게 된다. [사진=워너브라더스]


허리를 뒤로 90도 꺾어 총알을 피하는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1999·앤디&라나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슬로모션 장면을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동양무술과 접목된 이 신비로운 액션은 이른바 ‘불릿 타임’이라 불리는 신기술 촬영 기법이다. 영화의 배경도 기술의 결정체인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매트릭스란 컴퓨터 프로그램 속의 초록빛 냉혈 사회는 걱정과 고통이 없는 봄날의 꿈(一場春夢)처럼 평온하다. 문득 이 세계에 의문을 품는 주인공 '네오'(Neo·키아누 리브스 분)에게 그를 유일(One) 구세주로 점찍은 예언자 '모피어스'가 나타나 파란 약과 빨간 약을 내놓는다. 파란 약을 먹으면 기억을 지우고 그냥 살면 되지만 빨간 약을 택하면 주입된 가상(1999년)을 벗어나 참담한 진짜 현실(2199년)과 마주해야 한다.
 

여인 '트리니티'(Trinity)에 이끌려 빨간 약을 택한 네오는 그를 잡으러 온 가상 사회 속 비밀경찰을 물리치고 바깥 현실로 빠져 나와 몇 안 남은 인류 저항부대를 이끈다. 그가 목도하는 대다수 인간들의 신체는 평생 인큐베이터에 갇혀 컴퓨터들의 에너지 공급원으로 전락해 있다. 얼마 전 마크 저커버그가 등장한 강연장에 관중들이 헤드셋을 쓴 채 가상현실에만 몰두해 있는 ‘좀비’ 같은 장면이 섬뜩하게 떠오른다.
 

‘Matrix’란 단어는 자궁, 행렬을 뜻한다. 이 영화에선 인체를 환각 상태로 가두는 인큐베이터이자 0과 1의 디지털이 만드는 사이버 공간을 상징한다.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하고 보호받는 것 같지만 언젠간 박차고 나와야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영화에서 인간의 뇌를 통제하는 인공지능은 거대한 악마의 화신으로 느껴지지만 어쩌면 선도 악도 아니고 자신을 파괴하려는 인간에 맞서 일종의 버그(해커 모피어스의 일당)를 없애려 하는 건지도 모른다. 영화는 결국 기계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로 귀결되고 있다.

 

기계 파괴 운동과 인간 소외

기계가 노동자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생각해 방직기를 파괴하는 노동자의 삽화 [사진= Christopher Sunde, 위키피디아]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계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영국의 직물 공업에 등장한 기계를 둘러싸고 격렬한 노사대립이 일었다.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두려움으로 노동자들이 공장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기계에 대한 분풀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과학기술의 발전도, 기계를 독점하는 계급 구조도 바꾸지 못한 채 노동자들은 결국 사람이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이 돼 버린 희극 영화 ‘모던타임스’의 장면처럼 기계에 적응해 갔다.
 

수많은 전자 기기들이 인간의 삶을 편리함으로 이끌며 미증유의 인간-기계 공존 사회가 도래했다. 도시화, 핵가족화가 가속화되며 현대 사회는 그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다. 거대한 물질문명과 대중사회, 관료조직 속에서 인간성 상실과 몰개성이란 문제가 등장한다. ‘인간 소외’라는 개념은 김승옥과 카프카의 소설 등 20세기 문학의 단골 주제이며 교과서에서도 주요 논제로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교과서는 인간 소외를 ‘기술이 지배하는 거대한 사회의 영향으로 인간성과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것’으로 규정한다. 인간의 주체성이 약화해 과학기술에 종속된다(올리드 생활과 윤리 자습서)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 생활에 큰 번영과 복지를 이룰 것이라 주장한 프란시스 베이컨(영국 철학자·1561~1626)의 과학기술 낙관주의와 대비되는 현상이다. ‘소외(Alienation)’란 개인이 사회와의 관계에서 통합되지 못하고 거리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서울대 교육연구소 용어사전) 단절, 고립, 무력함 등을 뜻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공지능 '스카이넷'은 반란을 일으켜 핵전쟁으로 인류의 상당수를 없앤다. 살아남은 반기계파 인간을 저지하기 위해 스카이넷은 터미네이터 T-800을 과거로 보내 말살하려고 한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인간 소외 개념은 원래 ‘노동 소외’에서 출발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기계와 물질이 인간으로부터 독립해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는 이 같은 전도(顚倒·가치관 따위가 뒤바뀜) 현상을 칼 마르크스(1818~83)는 저서 『자본론』에서 이렇게 썼다. ‘매뉴팩처와 수공업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사용하지만 공장에서는 기계가 노동자를 사용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자크 엘륄(1912~94)도 대표적인 기계 문명 비판론자다. ‘기술 발달 자체가 기술 개발의 목적이 되었다.’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술의 성장이 자동적으로 진행된다(비상 사회 자습서)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필요해서 사기보다는 스마트폰이 최신 기술이기 때문에 사야 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그 예다.
 

소외론은 자본주의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게 적용된다. 그 대표 철학자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에리히 프롬(1900~80)이다.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의 저작을 통해 자본주의 문명이 언뜻 보면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만개하는 사회 같지만 실은 거대한 경제 톱니바퀴의 일원이 된 현대인은 파편화되며 무력감을 느끼고 고독해진다고 분석했다. 불안해진 개인은 고립감을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권위주의 체제(나치즘과 같은)에 의지하려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흔히 개인주의와 자유가 발달했다는 서구 사회도 이런 전체주의 속성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자유와 공동체의 회복을 모색하자는 게 그의 결론이다.

 

“소외론은 허구”
 

시장경제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소외 개념 자체가 허구라고 반박한다. 강원대 윤리교육과 신중섭 교수는 최근 자유경제원 주최 세미나에서 “경제적으로 시장의 활성화는 인류에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느 시대에도 가능하지 않았던 놀라운 해방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유사 이래 인간은 언제나 고독했다”며 “마르크스와 프롬이 꿈꾼 인간과 사회는 환타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바둑으로 인간을 이긴 인공지능이 등장한 시대, 이 가공할 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고 있다.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인류에게 큰 숙제가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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