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유주의를 서구의 철학에서 찾아 배운다. 실제 자유주의에 기여한 주요 학자들 상당수가 서구 출신이고 학문의 뿌리가 그곳에 있어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동양 사상에서도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실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자유주의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오래전부터 주목받았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인 한비자는 놀랍게도 시장경제와 관련된 말을 남긴 바 있다. 그는 ‘의사가 입으로 환자의 상처에서 고름을 빨아내는 건 환자를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병을 고쳐주고 사례를 받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그는 ‘수레 제조업자는 사람들이 빨리 부자가 되길 바라는 반면 관 제조업자는 사람들이 빨리 죽기를 바라는데, 이는 수레를 만드는 사람이 인자하고 관을 만드는 사람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부자가 되어야 수레를 더 팔 수 있고 많은 이들이 죽어야(?) 관을 더 팔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있어 애정, 동정심, 의리, 인정보다는 ‘개인의 이익’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의미다. 18세기 영국에서 활동했던 애덤 스미스 역시 『국부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과 self-interest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그보다 한비자가 시기적으로 훨씬 앞선 것이다.
한비자뿐 아니라 조선 후기에 활약했던 실학자 박제가도 ‘조선의 애덤 스미스’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기에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활동 시기도 박제가와 애덤 스미스 둘 다 비슷했다.
당시 조선은 후기에 이르러서도 화폐가 실질적으로 통용되지 않았다. 대부분 화폐 대신 현물로 상품이 거래됐던 것이다. 심지어 도로가 발달하지 않아 지역 간 교류 및 왕래도 쉽지 않았다.
이러한 시기에 박제가는 화폐 사용과 도로 정비, 수레 이용 등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아울러 그는 아끼는 것이 미덕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며 소비는 우물과 동일하다는 '우물론'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는 “한 사람이 이것저것 다 만들어 사용하려면 힘들다. 갑, 을, 병 여러 사람이 각자 가진 '장기'를 활용해 무엇인가 만드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바로 '분업'을 강조한 것이었다. 박제가는 이와 같은 주장들을 통해 공리공론을 비판하고 천대 받던 상공업 발전을 도모했다.
게다가 박제가는 저서 『북학의』를 통해 '중국어 공용화론'도 제시했는데, 이는 그가 중화주의자였던 점도 작용했지만 중국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면 중국과의 교역 및 교류가 더욱 증가함으로써 상업 또한 발전하여 조선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조선은 서구 문물의 수용이 훨씬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이용후생, 중상주의 등을 외쳤던 경험론적인 박제가 외에도 최한기, 정약용 등 당대엔 훌륭한 인물들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근대적, 자유주의적인 사상의 맹아를 아우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의 주장은 조선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집권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사상을 수용하지 못하고 끝내 외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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