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K팝 아이돌 `원조`는 일본이란 게 과연 맞는 얘긴가?

이문원 / 2020-10-20 / 조회: 13,177

의외로 흔히들, 으레 그러려니 인정하고 넘어가는 부분이다. 지난 세월 수많은 일본가요 표절 사태 등을 통해 그런 인식이 짙어진 경향이다. 물론 가요 뿐만도 아니고 각종 방송 예능프로그램, 드라마,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는 일본의 그것에서 지대한 영향, 심하게 말하면 노골적 표절을 일정시점까지 반복하며 명맥을 이어왔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이 같은 인식 문제가 최근 K팝을 놓고서도 다시 한 번 펼쳐졌다. 미국 진출을 선언한 일본 J팝 대표 보이그룹 아라시를 통해서다.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일본의 국민적 보이그룹 아라시는 지난 9월 18일 첫 영어가사 싱글 'Whenever You Call’을 발표했다. 프로듀싱을 미국의 세계적 뮤지션 브루노 마스에 맡기고, 'K팝 식으로’ 안무연습 동영상이나 틱톡 영상 등도 공개하는 등 전반적으로 K팝 미국 진출 상황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막상 결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Whenever You Call’은 빌보드 메인차트 핫100이나 그 후보군 버블링 차트에조차 들지 못했다. 신설된 글로벌 차트에서 미국 제외 17위, 미국 포함 51위가 유일한 성과다. 어찌됐건 여기까진 사실 '그들만의 사정’이다. 계속 미국 진출 도전을 하건 홍보용 1회성 행사였건 한국 및 K팝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 민감해할 문제가 그 홍보과정에서 벌어졌다. 다음은 지난 9월 25일 아라시 멤버 마츠모토 준이 미국 그래미상 웹사이트와 가진 인터뷰 내용 일부다.


“Q: <기생충> 같은 영화나 BTS 같은 그룹들이 미국과 전 세계에서 큰 관심과 지지를 얻으면서 K팝과 한국음악, 대중문화가 진정한 글로벌 문화현상이 됐다. 당신의 경험상 이런 K팝 성장이 J팝 인기에도 영향을 미쳤나? K팝을 통해 유입된 새로운 팬층이 당신 음악과 J팝, 일본문화 등도 발견하게 되는 흐름을 느끼는가?


A: 난 K팝이 J팝에 영향을 미친다곤 생각지 않는다. 난 K팝을 듣고 그들 음악과 춤 양쪽에서 특정그룹들의 스킬 수준에 감명을 받는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금 일어나는 현상들보다, 내가 그 모든 현상을 만들어낸 유산의 일부란 점에 감명을 받는다. (소속기획사) 쟈니스 창업자 겸 매니저 쟈니 키타가와는 50년 이상 춤과 노래를 하는 보이그룹을 프로듀싱 해왔다.


쟈니가 아시아 엔터테인먼트에서 쌓아올린 모든 유산이 이제 다른 공간에서도 널리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게 사실 더 감동적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쟈니가 촉발시킨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내가 그 유산의 일부가 된 것이, 그리고 그런 흐름이 계속 지속되는 걸 보는 일이 정말 자랑스럽다.”


이처럼 마치 K팝을 J팝의 '아류’인 듯 설명한 대목에 국내 K팝 팬들의 분노가 일제히 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위 마츠모토 준이 언급한 쟈니스 창립자 쟈니 키타가와(2019년 작고)는 한창 K팝이 일본에서 선풍을 일으키며 'K팝 흑선’이라 불리던 2011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류 같은 소리를 해도, 딱 잘라 말해 다들 우리(쟈니스)를 따라하고 있는 것뿐”이라 내뱉은 바 있다. 결국 이 같은 회사대표의 철학(?)과 관점이 그 소속 아이돌들에게까지 그대로 전수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일고 있는 실정.


따지고 들어갈수록 일본과는 별 관련 없는 K팝의 진화과정


그럼 이 같은 쟈니스 측 주장은 과연 맞는 얘길까. 일단 남자아이돌 전문기획사 쟈니스와 그 창립자 쟈니 키타가와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부터 차근히 살펴보자.


쟈니 키타가와의 본명은 키타가와 히로무, 1931년생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교포였기에 쟈니란 미국식 이름이 붙었고, 미국식으로 성을 뒤에 쓰는 이름을 끝까지 고집했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을 따라 한국에 들어와 전쟁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고, 이 기간 중 한국어를 상당한 수준까지 익히기도 했다. 한 마디로, 애초 국적은 달라도 미국인 정체성으로 사춘기, 청소년기를 보내고 미국문화에 깊이 영향 받은 인물이었단 것.


그러다 1955년 일본으로 들어와 미국식 로큰롤 밴드를 결성하고, 1962년 미국 뮤지컬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보고난 뒤 미국 뮤지컬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음악그룹을 만들겠단 취지도 설립한 게 바로 쟈니스 사무소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계속 미국문화의 영향은 뚜렷했다. 그런 시도들이 결국 보상을 받아 1970년대 이르러 고 히로미 같은 슈퍼스타를 낳고, 1980년대 소년대, 히카루겐지 등 최정상급 보이그룹들을 탄생시키며 일본 대중음악계와 방송계를 휘어잡는 거물로 재탄생하게 된다. 쟈니스 현 시점 일본대중문화계에서 그 영향력으로 따지면, 한국의 3대 K팝 기업인 SM, JYP, YG엔터테인먼트를 하나로 합쳐놓은 것보다도 더 막강하단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쟈니스의 유산’이라는 한국 K팝 역사를 되짚어보자. 물론 K팝 태동기, 1987년 데뷔한 보이그룹 소방차가 당시 일본에서 최정상 인기를 달리던 쟈니스 보이그룹 소년대를 노골적으로 카피하고, 1990년 데뷔한 보이그룹 야차가 역시 비슷한 시기 선풍적 인기를 누리던 쟈니스 보이그룹 히카루겐지를 극단적으로 카피(롤러스케이트 타고 노래하는 보이그룹 콘셉트까지 그대로 카피했다)한 게 사실이다. 이 둘만 놓고 보면 분명 지금의 K팝도 쟈니스, 나아가 일본대중음악계의 유산이란 평가도 과한 게 아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K팝 효시를 과연 소방차와 야차 등으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다. 위 마츠모토 준처럼 단순히 '춤추고 노래하는 그룹’을 쟈니스 등 일본대중음악계 전유물로 보지 않는 이상은 참 복잡한 얘기다. 당연한 얘기지만, 춤추고 노래하는 그룹 개념도 쟈니스가 '창조’해낸 건 아니기 때문이다.


쟈니 키타가와에게 영감을 준 할리우드 뮤지컬 외에도 사실 영향은 많다. 일단 미국 팝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보이그룹 개념은 먼저 나왔다. 1950년대 프랭키 라이먼 앤 더 틴에이저스가 '10대 소년들을 모아놓은 보이그룹’ 시초를 알렸고, 1960년대 에벌리 브라더스, 비치 보이스, 잭슨 파이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1970년대 남미 보이그룹 메누도는 실제적으로 일본아이돌산업에 수많은 영감을 준 케이스로 꼽힌다.


비록 쟈니스가 그 모든 보이그룹 형식들 효시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한국은 일본의 그것에 직격으로 영향 받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엄밀히 말해 위 언급한 소방차와 야차 정도만 사실상의 카피그룹으로서 낙인찍을 수 있을 뿐, 그 외엔 비슷한 예를 찾기가 무척 힘들다.


이 같은 부분은 2018년 미국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시즌1, K팝 편에서도 상당히 세밀하게 설명된다. 다큐멘터리는 K팝의 태동을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로 꼽는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다들 알다시피, 그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등장해온 쟈니스 아이돌들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음악은 힙합 장르에 근간을 두고 뉴잭스윙 등 서브장르들을 적극 차용했다. 쟈니스 특유의 유로팝 베이스와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팀 내에서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담당하는 체제를 갖췄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K팝 그룹들 특성, 즉 자체적으로 작사, 작곡하는 멤버가 대부분 그룹에 들어가 있는 흐름과 일치한다. 이 역시도 주어진 대로 부르기만 하는 쟈니스 아이돌들과는 크게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애초 쟈니스 아이돌들은 소위 전 방위 엔터테인먼트 활동을 목표로 탄생된 반면, K팝은 본업 부분인 음악 활동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예능이나 연기 등으로 진출을 하더라도 그 활동 중심은 최소 팀 해체 전까진 늘 음악이고, 사실 그런 부가활동을 아예 하지 않는 멤버나 팀들도 많다. 그러니 한국식 아이돌을 그대로 일본시장에 갖다 놓으면 이건 아이돌이 아니라 아티스트라 불리게 된다. 그 특유의 전문성 탓이다.


한편 기획사 측에서 팀을 조직해 만들어내는 인위성(?)을 놓고 쟈니스 등 일본대중음악계 영향이라 보기도 하는데, 이 역시 틀린 얘기다. 이 같은 방식은 1960~1980년대 미국 모타운이 그 효시고, 1980년대 세계 팝음악 제왕 마이클 잭슨도 모타운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경우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모타운 체제에서 직격으로 영향 받아, JYP엔터테인먼트 수장 박진영은 늘 '한국의 모타운이 되는 게 목표’란 설명을 덧붙이곤 했다.


K팝 효시를 김완선으로 놓고 보면 그 고유성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보면 볼수록 K팝과 J팝은 그 성립배경이 다르거나, 최소한도 그 뚜렷한 영향을 증명하기가 어렵다. 크게 보면, 둘 다 미국대중음악계 영향을 크게 받은 뒤, 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스탠스가 달라진 경우라 볼 수 있다. 시간차는 있어도, 결국은 둘 다 같은 모티브에서 시작된 서로 다른 산업 체질이란 얘기다.


지금의 K팝이 제대로 시작된 시점이라 평가받는 1세대 아이돌을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1996~1998년 사이 등장한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얘기다. 그 시작을 알린 H.O.T.의 경우, 실제적으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누린 미국 보이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영향권이라 보는 게 맞다. 일본의 카피라 볼 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특유의 사회비판적 가사 등은 오히려 일본선 금기시되는 요소다.


굳이 일본 기획사 시스템 영향을 크게 받은 경우를 들자면, 엄밀히 말해 SM엔터테인먼트 하나 정도다. 그런데 이 역시도 10~20대 멤버들을 그룹으로 묶어 '어떤 식’으로 파는가에 대한, 소위 판매방식 차원에서만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한다. 그 이외에 팀 구성방식이나 연습생 제도 등에서 영향 받은 부분은 매우 미미하거나, 시도를 했다가도 한국의 문화 분위기와 맞지 않아 실패로 돌아가곤 했다.


SM엔터테인먼트를 제외한 다른 기획사들은 일본의 그것과는 처음부터 아예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해 계속 더 갭이 벌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YG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대체 일본 영향이란 걸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지 의아해질 정도다.


이쯤에서 한 번쯤 'K팝이란 과연 무엇인가’란 부분도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 지점부터가 정립이 안 되니 자꾸 기묘한 논리들이 튀어나오게 된다. 일단 K팝은 '댄스음악 기반으로 고난이도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아티스트 종합상품’ 정도로 규정해볼 필요가 있다. 정확히 그 스탠스가 한국은 물론 해외각국에서도 K팝을 인식하는 패턴이다. 그럼 그 특성 부분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공개된 미국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히다’에서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는 “K팝을 K팝답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연습생 제도”라 단언한다. 확실히 이 점은 어느 측면에서 봐도 K팝 구성요소의 필수다. 한편, K팝의 궁극적 목표가 된 해외진출 차원도 있다. 그 외에 듣기 편한 이지리스닝 계열 유로팝에서 벗어나 보다 엣지한 장르들을 섭렵하고, 퍼포먼스 완성도가 극단적으로 높다는 점 정도를 더 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떄, 1세대 아이돌 이전, K팝의 진정한 효시라 생각해볼 수 있는 아티스트는 1986년 데뷔한 여성솔로 김완선이라 봐야한다. 김완선은 실제로 K팝의 산업적 골자 청사진을 보여준 모델이었다. 먼저 고난이도 퍼포먼스를 위한 연습생 제도가 그 개념조차 없을 적부터 사실상 연습생 과정을 거쳤단 점이다. 스타로 키우려는 친척이모에 의해 데뷔 전 7년 동안 방학동 건물에서 연습만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한편 K팝의 궁극적 목표가 된 해외진출 선구 차원도 있다. 데뷔 2년만인 1988년 이미 일본진출을 모색하며 '오늘 밤’ 일본어버전을 일본방송서 피로한 바 있다. 이후 최전성기였던 1992년 갑자기 국내은퇴를 선언하고 중화권 진출에 나섰다. 홍콩가수 알란 탐과 듀엣곡도 내고, 총 3장의 중국어 앨범을 발매하며 나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같은 최전성기 해외진출은 당시로서 듣도 보도 못한 행보여서 충격을 줬다. 그 외에 록 뮤지션 신중현에게서 노래(리듬 속에 그 춤을)를 받아오는 등 다양한 장르 시도들과 자체 연습생 과정을 통해 완성된 고난이도 퍼포먼스 능력 등이 더 거론될 수 있다.


이처럼 소위 '제대로 된 시조’가 존재하는데 자꾸 이를 다른 식으로 바라보려 하니 위 마츠모토 준이나 쟈니 키타가와처럼 이상한 논리들이 튀어나온다. 아니, 지금 일본대중음악계 차원에서야 이처럼 제대로 된 효시와 명분 등이 한국미디어에서 거론되고 있어도 지금과 비슷한 논리를 펼쳤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시기와 질투는 늘 이상한 논리들을 탄생시키고, 일본 특유의 '효시가 누구인가’ 차원 자부심을 찾게 만든다.


과도한 국뽕도 해롭지만, 과도한 자조와 자기비하도 마찬가지로 해롭다


어차피 K팝, 아니 거의 모든 대중문화 장르를 넘나드는 한류가 아시아 엔터테인먼트 전반은 물론 미국, 유럽시장까지 돌파하고 있는 지금, 굳이 위 쟈니스 관련 사례를 집어 길게 설명하려는 이유가 있다. 일본문화 영향 관련 한국의 기묘한 사고방식을 한 번쯤 짚고 넘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서두에 설명했듯, 그간 하도 일본문화상품을 '베껴 온’ 역사(로보트 태권브이까지 일본 마징가 제트 표절이니 말 다하긴 했다)가 존재하다보니, 그간 한국대중문화 흐름과 그 고유성 등에 대한 화두가 제기됐을 시, 가능한 자조적인 태도로 응하는 게 곧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처럼 여겨져 온 게 사실이다. '모든 게 다 베낀 것’이란 식, 어떻게 말하면 자포자기 식 자기비하가 소위 '국뽕’에서 빠져나온 이성적 태도란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엔카와 트로트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런 식 카피 주장이 마치 정론처럼 여겨지는 실정이고, 근래 들어선 정립된 서브장르라 보기도 뭐한 시티팝 스타일까지 일본의 그것에서 영향 받은 것이란 의견들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실체를 따지고 보면, 전자는 인접국들끼리 흔한 '문화공유’ 현상의 산물, 후자는 보이그룹 형성처럼 미국문화형식을 모티브로 서로 다르게 발전해온 방향이라 봐야한다.


과도한 국뽕과 정신승리도 해롭지만, 과도한 자조와 자기비하도 만만찮게 해롭다. 어쩌면 한국대중문화 전반을 이해하려는 입장에 있어 가장 주의해야할 지점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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