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경제 읽기] 집안일에 월급을 준다면?

최승노 / 2020-10-26 / 조회: 4,879

신사임당은 고전적 여성상일 뿐이라고?


5만원권 지폐가 처음 도입될 당시, 화폐 인물을 누구로 할지에 대해 꽤 지난한 논쟁이 있었다. 5만원권이 1만원권을 넘어서는 최고액권인 만큼 그에 걸맞은 위인을 모델로 삼아야 하는데, 우리 민족 최고의 위인이라고 평가받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은 이미 1만원권과 1백원짜리의 모델이기 때문이었다. 여러 논의 끝에 5만원권 도안 후보로 백범 김구, 장영실, 광개토대왕, 신사임당과 같은 인물이 거론됐고 결국 신사임당으로 최종 결정됐다.


그간 화폐 도안으로 쓰인 인물들이 ‘조선 시대 이씨 남자’ 일색이라는 여성계의 비판이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다소 획일적이었던 화폐 인물 구성 탓인지 신사임당을 포함해 5만원권의 후보로 오른 인물들 대부분은 조선 시대 이씨 남자가 아닌 게 특색이기도 했다.


신사임당은 화폐 도안에 등장한 최초의 여성이지만, 뜻밖에도 선정에 따른 비판 역시 여성계 일각에서 가장 거셌다. 신사임당이 훌륭한 인물이기는 하나 봉건 시대적인 여성의 대명사로 현대적 여성상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여성계 안팎에서 이런저런 논란이 일었지만 우리 역사에 프랑스의 잔 다르크나 폴란드의 마리 퀴리 같은 여성 위인이 많은 것도 아니니, 결국 신사임당으로 최종 결정됐다.


전업주부도 어엿한 직업


신사임당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가사 노동을 보는 우리의 인식과 연결된다. 대부분 직장을 다니는 여성이 가정주부보다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성은 물론 여성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상당수의 젊은 여성들은 가사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사회에 불만을 가지면서 정작 스스로도 가정주부가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고용 정책도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결혼과 출산 뒤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을 위한 ‘리턴맘 정책’과 같은 지원책 등이 그렇다. 국가 예산은 한정돼 있고 출산율도 낮은 만큼 여성의 임신과 육아를 더 지원해도 될 텐데, 그러는 대신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해 예산을 배정하는 건 사회 여론이 그쪽을 더 지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사회의 노령화와 인구 감소로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는 점도 한 이유일 수 있다. 보다 많은 여성 노동력을 생산 현장으로 유인하려는 것이다.


요즘 사회의 분위기를 보자면 현모양처는 구시대의 골동품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신사임당이 일부 진보적인 여성계의 주장대로 정말 고전적 여성상에 불과한 것일까?


가사 노동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에 취업률을 산정할 때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의 취업률은 대개 남성보다 낮게 조사되곤 한다. 하지만 그게 여성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영향력까지 낮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사는 분명히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내놓는 노동 행위다. 미래 세대를 양육하는 건 현재 세대의 중요한 책무다.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를 키워낸 신사임당이 현대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보다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가정주부는 한 가정의 관리를 책임진 매니저로서 떳떳한 하나의 직업이다. 가사 노동도 어엿한 일이란 관점에서 보면 여성의 취업률이 낮은 건 일종의 통계 착시라고도 할 수 있다. 가사 노동은 밖에서 일하는 남편을 도와 안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프로세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단지 일터가 가정 밖인지 가정 안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흔히 업무 장소가 사무실 안인지 밖인지에 따라 내근직과 외근직으로 나누는데, 내근직이 외근직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가정주부의 일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분업 관점에서 가사 노동을 봐야


내근직과 외근직, 직장 노동과 가사 노동은 일종의 사회적 분업이란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옳다.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맞는 사람은 외근직을 선택하고 실내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맞는 사람은 내근직을 선택하는 것처럼, 직장 노동이 적성에 더 맞으면 직장에서 일하고 가정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더 맞으면 가정에서 일하는 것이다.


가사 노동은 가정과 사회가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노동이며 그래서 서로 나누어 일하기도 하고 누군가 도맡아 하기도 하는 일이다. 물론 가사 노동은 결코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남성도 자신의 적성에 따라 가사 노동을 전담할 수 있다.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신사임당이 현대적 여성인지 아닌지를 놓고 입씨름하는 모양이지만, 가사 노동의 가치를 낮게 보는 불합리한 편견과 맞서 싸우는 편이 보다 더 현대적인 마음가짐이 아닐까?


▲ 기억해주세요


가정주부는 한 가정의 관리를 책임진 매니저로서 떳떳한 하나의 직업이다. 가사 노동도 어엿한 일이란 관점에서 보면 여성의 취업률이 낮은 건 일종의 통계 착시라고도 할 수 있다. 가사 노동은 밖에서 일하는 남편을 도와 안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프로세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단지 일터가 가정 밖인지 가정 안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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