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길라잡이] 예산과 복지

최승노 / 2019-09-30 / 조회: 5,815

영국·아르헨티나·그리스 등 선심성 복지로 큰 타격

“정부가 예산 펑펑 쓰면 국가 부채 늘어 국민에 짐 되죠”


'I am on a budget’이라는 말은 예산이 한정돼 있으니 돈을 아껴 써야 한다는 뜻이다. budget은 예산이란 단어로 쓰이는데, 원래 고대 켈트어로 '가죽 주머니’란 뜻이었다. budget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예산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8세기 영국의 정치가이자 영국 최초 총리였던 로버트 월폴 때문이다. 월폴은 재무부 장관을 지내던 시절에 매년 하반기가 되면 큰 가죽 주머니에서 예산안을 꺼내 읽었다. 이런 월폴의 행동에 대해 사람들은 'open the budget’이란 말을 썼다.


'I am on a budget.’


어느덧, 이 표현은 일반 영어로 정착되고 우리가 쓰는 'budget(예산)’이 됐다. budget의 유래가 국가 재정이기 때문인지 우리가 예산이란 단어를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경우도 국가 재정을 말할 때다. 정부 정책은 모두 예산 범위에서 행해진다. 그만큼 정부의 정책과 예산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정부가 복지를 활발히 펼치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834년 영국의 구빈법을 시작으로 보면 180년 정도다. 비스마르크의 사회보장법으로는 130년이며, 베버리지 보고서를 기준으로 하면 70년에 불과하다. 그만큼 정부가 복지를 담당한 역사는 길지 않다. 역사적으로 빈민을 구제하는 책임은 정부가 아닌 종교 혹은 마을 공동체에 있었다. 정부가 빈민 구제를 책임지고 나선 시발점은 엘리자베스 1세가 1601년 제정한 구빈법이었다. 이후 1834년 새로운 구빈법이 제정됐다. 이후 1880년대 독일에서 비스마르크의 사회보장법이 등장했다. 당시 독일 정부는 근로자들의 불안 요인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체제 변혁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을 차단해야 했다. 근로자들을 달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사회보험제도였다.


영국, 독일에서 유래한 복지


하지만 영국의 구빈법과 독일의 사회보험제도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복지국가라는 개념은 영국에서 베버리지 보고서가 발표되던 1942년께 나왔다. 1941년 템플 캔터베리 대주교가 전쟁을 일으킨 독일을 'warfare state(전쟁국가)’로 부르고, 영국은 'welfare state(복지국가)’라고 부른 데서 복지국가란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복지의 시작, 복지국가 개념의 시작이 어찌 됐건 복지국가는 누구나 바라는 바다. 인간의 삶의 목표가 행복 추구에 있고 인류 사회의 공동 목표가 이상향의 건설이라면, 이를 실현한 것이 복지국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지정책에 대한 다양한 역사상의 경험과 분석 자료를 가지고 있다. 특히 앞서 나간 나라들의 시행착오는 소중한 자료다. 역사적으로 지도자가 부분적, 단편적, 감성적 사고로 복지에 접근하는 경우 막무가내식의 복지정책이 나오게 되고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면서 정부와 모든 국민이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때 아르헨티나, 영국, 그리스 등의 여러 국가가 복지정책을 비롯한 선심성 정책을 펼치다 국가 재정에 큰 타격을 입었다. 물론 복지정책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지정책이 크고 많을수록 무조건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병든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이 병이 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건강한 상태가 어떤지를 알기 때문이다. 건강한 상태와 비교해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복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 사회의 복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원하는 복지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복지정책의 많고 적음은 좋은 복지의 척도가 아니다. 무분별한 복지의 확대는 정확한 진단과 처방 없이 환자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것처럼 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데 그칠 뿐이다. 결코 병을 낫게 할 수는 없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의식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복지를 제공해도 사회는 점점 병들어 갈 것이다.


과도한 복지와 재정


사회 구성원이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의 안락함에 빠져들수록 그 사회는 병들어 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안락함은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해 얻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복지는 결국 재정을 늘리고 세금을 늘린다. 정부가 복지정책을 위해 매년 견디지도 못할 부채를 만들어 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가 부채는 결국 그 국가에 속한 국민이 짊어져야 할 짐이 될 뿐이다. 많은 사람이 국가의 부채를 자신의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국가의 부채는 결국 국민의 희생으로 귀결됐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 기억해주세요


복지국가라는 개념은 영국에서 베버리지 보고서가 발표되던 1942년께 나왔다. 1941년 템플 캔터베리 대주교가 전쟁을 일으킨 독일을 'warfare state(전쟁 국가)’로 부르고, 영국은 'welfare state(복지국가)’라고 부른 데서 복지국가란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자유기업원 원장 최승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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