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경쟁 시장의 이점 – <라면 상점>

송미주 / 2024-05-09 / 조회: 997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학교에서는 같은 지역 내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비를 지원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바자회가 열렸다. 바자회는 각 반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고 이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파전, 붕어빵과 호떡, 떡볶이 등 다양한 메뉴가 후보군에 있었지만, 우리 반은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라면 상점을 택했다. 바자회 당일, 추운 날씨 때문인지 역시 라면 상점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구매줄은 곧 옆 반 복도까지 이어졌고, 반 아이들은 잘 만들고 잘 팔기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첫날 폭풍 매출을 기록한 우리는 다음날 아침, 전날 매출을 뛰어넘자 말하며 사뭇 비장한 태도로 앞치마를 묶었다. 그런데 점심 무렵 갑자기 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 총무 한 명이 순찰을 다녀 와서는 다음의 말을 했다. “얘들아!!! 11반에서도 라면을 팔고 있어! 같은 가격이긴 한데 거긴 우리보다 더 예쁜 그릇에 줘!”


첫날엔 호떡을 팔던 반이었는데 매출이 안 나오자 둘째 날부터 메뉴를 바꾼 것이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가격을 200원 내리기로 결정했다. 지금 상황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시간 후쯤 가격 변동의 효과가 나타났고, 복도는 어제처럼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가격이야 저쪽 반에서도 언제든내릴 수 있으니 조금 더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자는 것이었다. 1등한 반에게 어떠한 포상을 주겠다는 약속도 없었지만 자연스레 경쟁 심리가 붙었다. 우리는 20분간의 긴급 회의 끝에 토핑을 추가하기로 했다. 그리고 급하게 대형마트로 가 김치, 치즈, 계란을 사왔다. 소문이 퍼졌는지 11반에서는 똑같이 가격 200원 인하와 함께 주먹밥을 곁들여 팔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는무언가를 추가하기 보다는 높은 회전율을 경쟁력으로 삼고자 했다. 인기가 상대적으로 없었던 김치라면은 과감히 생산을 중단하고, 수요가 높았던 치즈라면 팀으로 그 인원을 이동시키는 등나름 유연한 전략을 펼쳤다.


4일 간의 바자회를 끝내고 모든 반이 정산 결과를 공유 했을 때 우리 반은 압도적 1위였다. 2위는 함께 라면을 판매했던 11반이었다. 같은 메뉴로 경쟁한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후 지역센터에 수익금을 전달할 때 우리 두 반의 대표는 그 현장에 함께 동행했다. 현장에서 우리는 서로를 보며 함박 웃음 지었다. 경쟁자기는 했어도 그 덕에 함께 좋은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상점을 직접 기획하며 자유 경쟁 시장이 가격 인하 · 상품 다양성 확보 · 생산 효율성 향상 ·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유도한다는 것을 배웠다. 만약 학교에서 가격을 책정하고 판매 수량을 관리하는 등 판매 행위에 어떠한 개입을 했더라면 우리는 시장 경제라는 귀한 경험을 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가치인 자유와 평등. 우리는 둘 중 어느 가치가 절대적 우위에 있다 쉽게 단언할 수 없다. 다만 그때 우리는 자유 시장 경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경쟁 요인이 더 큰 수익을 창출해내고, 이것이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비에 보탬이 돼 크게는 평등이라는 가치로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몸소 경험했다. 이때의 깨달음은 세상을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최근의 몇몇 사례를 보면 큰 규모의 사회에서도 이 원리가 동일하게 작동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은행권의 주담대 금리 경쟁 사례가 있다. 현재 은행권의 주담대 금리를 보면 기준 금리가 인하되지 않았음에도 고객을 유치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각 은행이 대출 금리를 매우 낮게 유지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가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진정한 정의란 무엇일까. 내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시장의 자유가 가계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정의일 것이다. 정부나 의회는 사회가 처한 상황에 맞춰 적절한제도를 발의하고 집행함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자유시장경제의 기반인 경쟁 요인이 적재 적소에 잘 활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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