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의 원리에 반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라종빈 / 2022-12-06 / 조회: 1,262

쌀은 오랜 기간 우리와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앞으로 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바로 여기에 그 열쇠가 있다. 최근 과잉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논쟁이 심화되고 있다. 기존에는 정부 매입이 권고사항에 불과했지만 개정안은 이를 의무화하였고, 이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이 예상된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위반하는 것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가장 대표적인 대가는 비효율성이며 양곡관리법 개정안 역시 비효율성 문제의 심화를 가져올 것으로 깊이 우려된다.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르면 재화의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여 공급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한다면 시장 왜곡에 의한 비효율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따르면 특정 조건을 만족할 때에 한해 정부의 의무 매입이 실시된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인 문구에 불과하며 농림축산식품부 등 전문가들은 자연재해를 비롯한 특수한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매년 정부가 의무적으로 시장 격리를 실시해야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우려되는 문제 중 하나는 쌀 공급 과잉 현상이 더욱 만성화되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도 쌀은 이미 적정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법률에 의해 강제 매입을 실시한다면 쌀 공급 과잉 현상은 한층 더 구조화되고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높은 기계화율 및 낮은 재배 난이도와 같은 쌀 고유의 특성은 이 추세를 가속화할 우려가 크다. 또 다른 문제는 개정안 도입이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르면 만약 특정 재화의 공급이 증가하여 가격이 하락하였다면 소비자는 낮은 가격으로 그 재화를 구입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러한 경로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 낭비 또한 문제이다. 정부가 쌀을 시장으로부터 격리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매입비용, 보관비용 및 이자비용이 발생하며 농림축산식품부는 그 비용이 연평균 1조원 이상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게다가 이 비용은 소모적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더욱 낭비의 성격이 강하다. 물론 농업은 중요한 산업에 해당하며 국가는 필요한 경우 농업 발전을 위한 투자를 지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가는 품종개량 및 스마트팜을 비롯한 농업기술과 관련된 연구개발 사업을 지원할 수 있다. 이러한 투자는 미래의 농업생산성 향상 및 전략자원 확보와 직결된 핵심 지출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양곡관리법은 현재와 미래의 우리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하다.


양곡관리법 개정에 찬성하는 이들은 농가 보호를 그 이유로 든다. 농민들은 사회적 약자이며 이들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쌀을 매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여야 하며 정부의 직접 시장 개입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이를 우선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농민들이 더욱 생산적인 분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재취업을 도울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비생산적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생산적인 분야로 이동하여 국가의 생산적 노동 비율이 증가할수록 경제의 생산성이 증가한다고 보았다. 재취업 정책은 국가에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농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


전략 자원 확보는 그들이 양곡관리법 개정에 찬성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식량 자원이 급격히 감소한다면 사람들이 기본적인 식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정부가 쌀을 매입하여 생산량 및 보유량을 충분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경제발전과 함께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먹거리를 향유하며 살아간다. 조선시대에 실시하던 환곡제와 유사한 ‘21세기형 환곡제’인 양곡관리법의 유효기간은 이미 종료되었다. 만약 양곡관리법이 식량 자원의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 탄수화물 못지 않게 중요한 단백질과 미네랄을 확보하기 위해 소, 닭, 돼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육류관리법’과 소금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소금관리법’은 왜 시행되지 않는지 의문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결코 나쁜 의도를 갖고 그 법안에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그것이 가져올 결과 대신 그것이 가진 의도로 판단하는 것은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생각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활발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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