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각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삶의 우여곡절을 여러 측면으로 경험한 뒤에 결국 하나의 직업을 얻게 되었는데, 그 직업 때문인지 일반인들처럼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자기 앞에 주어진 일만을 묵묵히 해나가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시장경제 속에서 주체적 의식을 가지고 자유경쟁을 하며 경제적 이윤을 추구해나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이다. 하지만 단지 직업 때문에 그런 삶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다소 의아하게 들려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친구의 직업은 목사다.
그 친구가 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우린 친구였고, 힘들게 전도사 생활을 할 때에도 나는 친구의 경제사정에 대해 대충 알고 있었다. 전도사가 교회로부터 받을 수 있는 월급이 매우 적다는 점 때문인지 친구는 나와 만날 때마다 후하게 인심을 쓰지 못했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바퀴만 겨우 굴러가는 그런 낡은 중고차에 시동을 거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일찍이 사업을 시작했던 덕분인지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해 비교적 민감한 경제관념을 가질 수 있었는데 내가 속한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친구의 처지를 보며 속으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친구는 오랜 전도사 생활을 끝내고 몇 해 전부터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사회적 후생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 친구의 사정만을 단순히 접했다면 종교인으로 분류되는 목사직에는 아무런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분야에도 메가처치(Megachurch)라 불리는 대형교회가 있으며 그 안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목회자들이 있는 반면, 자립능력이 부족한 작은 교회 또한 많이 존재한다. 종교계에도 분명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 친구는 대형교회에서 일을 하는 목사님이 아니다보니 사회적 후생이 좋지 못했는데, 이번에 만나서 파트타임 목사로 전향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파트타임? 목사도 그런 게 있었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시동만 겨우겨우 걸리던 90년대의 중고차량이 아닌 세련된 신형차를 몰고 나를 만나러 왔다. 나를 차에 태운 뒤에 음식점으로 이동하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걸 보니 경제적인 여유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까지 생긴 눈치였다. 친구는 차 안에서 내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줄 게 있다며 자신이 투 잡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목사님인 친구가 행여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직업적인 윤리의식을 저버리게 된 것은 아닌지 해서 말이다.
친구는 주말에만 교회에서 일을 하는 파트타임 목사가 되었고, 평일 중 남는 시간에는 배달 일을 하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배달수요가 급증한 요즘의 배달 일은 그를 통해 생계를 충분히 유지하고도 남을 수 있는 수단이 된지 오래다. 친구는 개선되기 어려운 경제적 어려움 앞에서 자기 나름대로 살아갈 방법을 개척해낸 것처럼 보였다. 목사 일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보이며 교회로부터 집과 자동차를 제공받는 담임목사의 위치까지 오르게 될 확률, 또는 메가처치로 이직 할 수 있는 확률 등을 현실적으로 따져본 것 같았다. 친구는 막연한 목표 때문에 받게 될 정신적 스트레스 대신 경제적으로 행복하게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더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인격체가 되기를 택한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나는 친구로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만날 때마다 자신의 안타까운 처지를 푸념하던 친구의 모습은 새로 마주하게 된 경제적 여유 앞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나는 이전까지 알던 친구가 아니라 마치 다른 사람을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 경기도 부천시에서 영국의 명차인 재규어를 몰고 어디론가 가는 스님을 창문 틈으로 본적이 있었다. 속세를 멀리해야할 스님이 고급차량을 타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당시 어린 마음에 비판의 실마리를 잡은 것 같이 느껴졌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승려들이 도심을 이동할 때 선택해야 할 운송수단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고급차량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것일 수도 있고 잠깐 빌려 타고 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모습만을 전체로 받아들이려 하고 일반화 시키려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모습 속에 많은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우리는 아직 정확히 깨닫지 못한다.
‘배달 어플에서 일하는 목사님’이라는 정보만을 단순히 제공한다면, 많은 이들이 색안경을 쓰고 비난하려 덤벼들 것이다. 이는 재규어를 몰고 절에 되돌아가는 승려를 껄끄럽게 생각하려는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완벽하지 않고 확신으로 이어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는 더더욱 부족하다.
목사는 무조건 교회 일만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주장을 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람 역시도 자기가 부업으로 더 할 만한 게 없는지 퇴근길에 스마트폰을 검색하며 N잡러를 꿈꾼다. 이건 참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자신이 속한 시장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과 참여해서는 안 되는 사람의 기준을 자기 마음대로 정해놓고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그 모습은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닐 텐데 문제는 우리 중 대다수가 이미 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내 친구가 경제적으로 좀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된 것만큼은 아주 기쁘게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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