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30여 년 만에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 우리로서는 천년 이상이나 번영의 길을 달렸던 다른 나라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기에 요사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시오노의 작품 속에 그려진 로마인들의 삶으로부터 오늘의 한국인들이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자질 있는 지도자의 선택이 나라의 번영을 좌우한다. 로마사에는 자질 있는 지도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한 나라가 깨어있는 지도자를 갖는 것은 상당한 운이라고 할 수 있다. 시오노 작품 속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자질 있는 지도자는 선견지명과 실행력을 갖춘 인물로, 로마왕정을 종결하고 공화정을 출범시켰던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기원 전 509년)이다.
그밖에 2차 포에니 전쟁의 중반에 등장하는 스키피오라는 장군 역시 훌륭한 지도자의 반열에 든다. 로마사에서 훌륭한 지도자상은 카이사르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인 지성, 설득력, 지구력, 자제력, 그리고 지속적인 의지라는 다섯 가지 덕목을 모두 갖추었던 인물로 카이사르를 들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정치체제의 현명한 선택이 번영의 기반이다. 로마 융성의 원인은 당사자들이 만들어낸 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분만큼 변덕스러운 것은 없으며, 기분을 새롭게 해달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모든 사람이 기분을 일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분을 일신하려면 일신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즉 제도화할 수밖에 없다.
셋째, 인치人治와 자의적인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를 법law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해 법제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로마가 거대한 제국을 이루면서 수많은 민족과 종교를 로마라는 하나의 나라 안에 품고 비교적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법의 지배the rule of law`라는 대원칙을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넷째, 개방적인 체제로 국가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세계사에서 로마인만큼 개방적이었던 민족도 드물 것이다. 로마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세계인cosmopolitan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개방성은 정복민들에 대한 시민권 부여와 정복민들에게 거의 완전에 가까운 자치를 허용하는 것을 보면 된다.
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의 삶에 있어서도 개방성은 돋보인다. 로마인들은 항상 배움에 대해 인색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모든 면에서 앞설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 것이 로마인이었다. 심지어 식민지인 그리스의 노예들을 초청해서 배움에 열심이었던 적도 있다.
다섯째, 개인의 능력 차이와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로마인은 세계사에서 다신교를 인정하면서 제국을 건설하였던 유일무이한 민족이었다. 다양성은 오늘의 우리에게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그밖에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독점monopoly은 강력히 비난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섯째,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 로마인은 법과 도로를 남겼다. 오늘날 로마를 방문하는 사람이 흔히 들르는 곳이 기원 전 312년에 만들어진 아피아가도라는 도로이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튼튼한 외관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로마인들이 도로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에 열심이었던 것은 도로가 제국을 운용하는 데 필수품이었기 때문이다.
일곱째, 돈 대신에 일자리를 주는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최고권력자가 된 카이사르에 대해서 빈민들은 기대가 컸다. 왜냐하면 그는 민중파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이 같은 복지정책에 과감한 개혁을 시도한다. 그는 "실업은 당사자의 생활수단을 빼앗는데 그치지 않고 자존심을 유지하는 수단까지 박탈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무슨 일이든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확인한다. 따라서 실업문제는 복지로는 해결되지 않고, 일자리를 주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된다"고 굳게 믿었다.
여덟째,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볼 수 있는 민족이어야 한다. 시오노는 그의 작품 전체에서 거듭 카이사르가 『내전기』란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밖에 보지 않는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사람들은 흔히 현실에서 명백히 진행되고 있는 사건에조차 눈길을 주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이 같은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심성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기 나름대로 세계관을 갖고 살아간다.
때문에 자기의 세계관에 잘 맞지 않는 일이나 사건을 애써 무시해 버리려고 하게 된다. 특히 한 민족 전체에 이 같은 이야기를 적용하면, 민족성이 대의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이념적이고 논쟁적인 민족일수록 보고 싶은 것만을 볼 확률이 높다. 현실에 애써 눈을 감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야 마는 것이 역사의 교훈인 것이다.
아홉째, 정신적 자본Mental Capital을 축적해야 한다. 어떤 사회라도 계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도로나 항만과 같은 물적 기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기반이 필요하다. 역사에서 무력만으로 계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나라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를 재패할 수 있었던 스파르타인에게는 생활철학의 빈곤이 쇠퇴의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에 반해 로마인들이 갖고 있었던 강력한 정신적인 토대는 로마가 많은 민족과 종교를 동화하면서 세계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열 번째, 현장을 중시하고, 현장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로마는 전쟁을 통해서 제국을 이루는데 성공한 나라이다. 때문에 로마 시대의 생산은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 군대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인물들은 소대원의 투표로 선출되는 백인대장들이다. 이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으로서 전술을 정확하고 충분하게 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로마의 군기와 전통을 유지하면서 로마 군대의 막강한 전력을 유지했던 사람들은 현장 정보에 정통한 백인대장들이었다. 다른 분야에 비해서 로마군이 이룬 개선활동은 눈부실 정도이다. 전술과 무기에서 이루어진 끊임없는 개선활동이 로마군의 전력 증강에 크게 이바지했다.
열한 번째, 역사적 경험을 중시하고,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 로마인의 성공에서 큰 획을 긋는 사건은 로마가 왕정 체제의 문제점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일어나게 된다. 로마는 당시 그리스의 앞선 체제를 배우기 위하여 3명의 원로원 위원으로 구성된 시찰단을 아테네에 파견한다. 후진국 로마의 선진문물 시찰단이 파견되던 해는 기원 전 453년부터 기원 전 452년까지 1년 동안이었다. 당시 로마 원로원 위원들은 아테네가 가진 어두운 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그 단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체제를 만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