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유토피아를 갈망하지만 유토피아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도 없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신의 세계이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다만 문제로 가득 찬 세계에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또 새로운 문제를 만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문제 해결을 포기하거나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노력을 포기하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고 노예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노예이다.
이 글의 목적은 이 땅에 천국을 만들려는 사상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권고하는 포퍼의 사회, 정치사상의 핵심적인 내용을 `열린사회`와 점진적 사회공학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는 포퍼의 사상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검토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반증가능성`, `열린사회`, `점진적 사회공학`과 같은 새로운 철학적인 주장을 창안한 포퍼는 190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994년 영국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긴 학문의 여정에서 과학철학, 인식론, 사회철학, 정치철학, 심리철학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기고, 널리 주목받은 토론에도 많이 참여하였다. 그는 한때 공산주의에 동조하기도 하였지만, 공산주의를 열린사회의 적으로 규정하여 치밀하게 비판하였다. 자신의 조국인 오스트리아가 히틀러에게 점령되었다는 뉴스에 접하면서 구상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런던에서 출판된 것은 1945년이었다.
포퍼는 삶이란 곧 문제 해결이라고 말한다. 그는 "과학 또는 철학으로 나아가는 길은 하나뿐이다. 문제와 만나고, 그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그 문제와 사랑에 빠져라. 만일 더 매혹적인 문제와 만나게 되지 않거나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죽음이 그 문제와 당신을 갈라놓을 때까지 그 문제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라"라고 권유한다. 포퍼는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비판과 토론을 통해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모든 사회에서 비판과 토론이 허용되고 그것을 통해 기존의 이론이 수정되고 폐기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가 열린사회이다.
포퍼는 열린사회의 적은 나치즘이며, 나치즘과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의 사상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을 추적하였다. 그는 이들을 모두 `열린사회의 적들`로 몰아 세우면서, 열린사회인 서구 자유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제시하였다. 포퍼는 『역사주의의 빈곤』에서 "`역사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사회 과학의 목표"이고 역사의 법칙이 우리의 정치를 지도해야 한다는 역사주의를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칼이 아닌 언어로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이 문명의 기초이고, 모든 법제도와 의회제도의 기초"이다. `합리적 태도`와 `비판적 태도`는 동일하다. 철학과 과학에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합리적 토론의 방법이며, 이 방법은 "문제를 분명히 진술하고 그 문제의 해결로 제시된 다양한 해답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합리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논쟁을 통해 배우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논쟁 한다`는 말의 의미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그들을 비판에 끌어들이고,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내면서 그 비판으로부터 배우려는 것이다. 논쟁의 기술은 싸움의 특수한 형태이다.` 논쟁은 칼 대신 말을 통한 싸움이고, 논쟁을 통해 세계에 대한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는 합리주의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사회철학에 적용하여, `열린사회론`을 전개하였다. 비판과 토론의 방법은 폭력이 아닌 이성을 통해 우리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진적 사회공학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비판과 토론을 허용하는 사회가 `열린사회`이고 비판과 토론에 기초한 사회개혁론이 `점진적 사회공학`이다. 비판과 토론을 인정하지 않는 `닫힌 사회`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을 사회변화에 적용하려고 한다. 닫힌 사회의 전형적인 형태가 공산주의 사회이고, 공산주의자들은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포퍼는 이미 40년대 초에 이론적으로 공산주의자는 거짓 예언자이며 공산주의는 필연적으로 폭력에 귀착된다고 주장하였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통해서는 절대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건설할 수 없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 것이다. 포퍼는 `역사주의historicism`에 기초한 유토피아적 사회 공학에 반대하며 점진적 사회공학을 옹호하였다. 그는 역사를 지배하는 필연적인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언자인 체하지 말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토피아적 사회 공학은 궁극적인 목적이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회 전체의 개혁을 제시한다. 그들의 관심은 `전체로서의 사회`의 발전이며, `전체로서의 사회`의 재구성이다. 전체로서의 사회를 문제 삼는 전체론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은 역사주의와 공통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은 사회 전체를 급진적으로 변혁시키려는 계시적 혁명을 꿈꾸기 때문에 "먼저 모든 것을 싹 쓸어 버려야 한다. 이 세상에 그럴 듯한 어떤 것을 실현하려면 저주받은 문명 전부를 없애 버려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포퍼에 의하면 이러한 유토피아주의는 매우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위험스럽고, 유해하며, 자기 모순적이며, 폭력에 귀착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하여 포퍼는 제도를 조금씩 개선해야 한다는 점진적 사회공학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실제적으로 유토피아적인 사회공학은 사회변화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그들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지만, 점진적 사회 공학은 변화가 수반하는 피할 수 없는 놀라움에 주의를 기울이고 준비한다. 점진적 사회공학은 점차적인 개혁과 열린사회를 지지한다.
포퍼의 점진적 사회공학의 첫 번째 명법은 "추상적인 선의 실현을 위해 힘쓰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 명법은 "모든 악의 제거는 직접적인 수단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말의 힘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 것만이 폭력 혁명에 대한 유혹을 물리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 문제들이 자유 민주주의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들은 자유 민주주의의 틀을 깨지 않고도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