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적용범위를 가족으로 축소해야

곽은경 / 2022-08-15 / 조회: 6,281       브릿지경제

99명의 범죄자를 잡기 위해 1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드는 법은 정의롭지도 않지만,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런 사법 체계를 가진 국가의 국민들은 언제든 범죄자로 몰려 개인의 자유를 침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그 국가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를 축적하기 어렵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에 두는 제도가 그렇지 않은 제도들을 대체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법과 제도를 평가할 때 경제적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정부가 국정과제로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조정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공정거래법과 관련한 규제 개선 논의가 시작되었다. 공정거래법, 특히 동일인과 관련된 규제 항목들은 불합리한 면이 많아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공정위에서 제시한 친족범위 조정 등의 개정방향은 규제개선이 아니라 규제강화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경영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기업이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정거래법은 동일인 규제의 범위에 대기업 총수 뿐 아니라 총수의 친인척까지 포함시키고 있어 문제를 야기해 왔다. 자산총액 합계가 5억 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각종 규제를 적용시키는데, 여기에서 억지스럽게 도입한 개념이 ‘동일인’이다.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황당한 용어이다. 대기업 총수를 지칭하는 ‘동일인’을 기준으로 친족, 인척, 계열사 등 ‘동일인관련자’를 정의내리고, 기업집단의 범위를 확정하고 있다. 동일인 관련자에는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뿐 아니라 계열회사의 임원까지 포함된다.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방식으로 인해 기업인들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동일인이라는 잣대로 인해 모든 대기업 총수와 기업인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되는 셈이다. 1960년대 이후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업집단이 등장했고, 일부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경제규모에 비해 수출 비중이 크다보니, 이를 과도하게 큰 대기업이라고 보는 비판적 주장이 나왔다. 그 결과로 기업의 활동을 억제하고 총수의 지배구조를 약화시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해야 한다는 정책목표가 만들어졌다. 그런 정치적 과정을 통해 1987년 대기업이 친족이나 계열회사를 통해 지분을 소유하거나, 계열사 간 내부거래로 이익을 취하는 것에 대해 규제하는 조항이 공정거래법에 추가되었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며 만든 동일인 조항은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적합하지 않다. 우선 모든 대기업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불합리한 제도가 되었다. 이 규제를 도입하던 1980년대만 해도 우리경제는 제조업이 중심이었지만, 네이버, 카카오 등의 IT기업이나 최근에 성장한 다른 대기업들은 과거와 다른 경영환경과 투자구조에서 성장하였기에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이 다르다. 특히 친족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이 흔하다 보니 동일인 규제가 전혀 현실성 없는 구시대적 규제임이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동일인’으로 지정되어야 할 대기업 총수가 외국인이라 규제를 피해가는 경우도 생겼다. 그 결과 어떤 기업은 총수개인이 동일인 규제를 적용받고, 어떤 기업은 예외를 인정받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특정 기업을 손봐주는 식의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 동일인의 친족범위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한편으로는 사실혼 관계를 친족에 추가로 포함시켰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떤 특정 기업을 염두에 둔 제도라는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다. 몇몇 문제되는 행태를 처벌하겠다며 정부당국이 무리한 규정을 만들어 공권력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자유를 침해받는 희생자가 생겨나 고 기업 생태계의 위축현상이 발생한다면 이는 국민에게 그 피해만 줄 뿐이다.


규제를 도입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경제력 집중에 대한 우려는 기우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간단하게 1980년과 2020년 대기업 순위를 비교해 봐도 변화가 확연하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우리 경제에서 가능한 일이었다면 과거 재계를 이끌던 대우그룹 등이 사라진 것과 최근 대기업으로 진입한 기업들의 존재를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는 혁신과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시장의 법칙이 우리경제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게다가 친족 기업의 경우도 경영권이 3대, 4대로 승계되면서 총수 개인의 지분율이 낮아지고 있다. 형제나 사촌간이라 하더라도 이해관계가 달라 동일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6촌까지 경제적 공동체로 가정하는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규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공정거래법을 현실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 모든 기업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동일인의 친족범위를 ‘가족’으로 한정하는 것이 상식과 부합하는 수준이다. 가족도 아닌 4촌, 6촌의 자료를 제출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잘못이다. 동일인이 경찰도 검찰도 아니므로, 4촌과 6촌이 사생활의 자유를 주장하며 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 이를 요구할 수단이 없다. 또한, 자료취합의 경우 공정위가 직접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정력을 이유로 대기업 총수들에게 부담지우고자 한다면 그 범위는 총수 개인 또는 가족에 한정하여야 한다.


세계의 선진 국가들이 99명의 도둑을 포기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의 희생을 막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국가와 사회를 유지하는데 공정하고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데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동일인 관련 조항의 경우 억울한 피해를 보는 집단이 소수의 대기업 총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방치되어 온 면이 크다. 좋은 제도와 법을 세우고자 세계 각국이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기업인들에게 무리하게 가하고 있는 규제를 해소해 기업경제 생태계의 활력이 다시 높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시점이다.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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