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가상악기 콘탁, 정부 개입 없이 동반성장한 좋은 선례
대기업-중기간 동반성장, 서로가 도울만한 이해관계 있어야
협력을 강요하는 동반성장은 폐기돼야
문재인 정부가 강조해온 것 중 하나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이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각각이 단기적 이익만 보고 사업을 하게 되면 기업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상생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업 생태계’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바람직한 생태계가 무엇인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때문에 상생협력의 환경을 정부가 나서서 조성하는 것은, 협력이 불필요한 경우에도 협력을 강요함으로써 오히려 기업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었지만 상생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이 실현돼온 시장이 있다. 바로 가상악기 시장이다. 가상악기는 오늘날 음악 산업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거의 모든 음악이 가상악기를 이용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상악기 중에서도 네이티브 인스트루먼츠(Native Instruments, NI)가 개발한 콘탁(kontakt)은 특히 유명하다. 콘탁을 안 쓰는 작곡가가 이젠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바로 이 콘탁이야말로 동반성장이라는 감동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콘탁은 다른 가상악기와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다른 가상악기는 그 자체로 컴퓨터 속에서 악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콘탁은 ‘라이브러리’라는 것을 불러와야 악기가 될 수 있다. 무엇 하러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택하느냐 물을 수도 있지만, 콘탁의 잠재력은 여기에 있었다. 기존의 다른 가상악기들은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악기였기 때문에 통일된 규격이 없었고, 서로 호환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다양한 악기들을 동시에 사용하려다 보면, 과도한 연산량으로 인해 컴퓨터에 부담이 갔다.
하지만 콘탁은 그 자체가 악기가 되기보다는 악기를 담아내는 플랫폼이 되면서, 그 문제를 해결했다. 콘탁은 통일된 규격을 가진 라이브러리 여러 개를 동시에 불러올 수 있었고, 컴퓨터는 콘탁에 관한 연산만 처리하면 되었다. 덕분에 작곡가들은 컴퓨터가 무리하게 될 것을 걱정하지 않고 원하는 만큼 여러 악기를 동시에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편리함으로 점차 인기를 얻어간 콘탁은, 다양한 라이브러리가 개발되면서 점차 대중적인 가상악기로 입지를 굳혀갔다.
덕분에 신규 기업의 가상악기 시장으로의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일반 가상악기를 개발해 고급 기술로 무장한 기존 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는데, 콘탁 라이브러리는 고급 기술이 없어도 쉽게 개발할 수 있었다. 콘탁을 사용하는 작곡가가 많아졌기 때문에, 신규 기업으로서는 콘탁 라이브러리만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전략을 택해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오히려 콘탁 라이브러리 개발에만 집중하는 기업이 등장하면서 음색이나 현실감 등 여러 요소에 있어 발전이 이뤄졌다. 프로그래밍에 쏟을 노력을 다른 곳에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NI는 자사의 콘탁에서 작동하는 라이브러리의 개발에 매진하는 여러 중소기업들과 상생하며 성장해왔다. 주로 녹음 기술이 뛰어난 회사와 협업하여 현실감 있는 가상악기를 개발했다. NI에게 있어서 이익이 되는 일은, 좋은 기술을 갖고 성장하려는 중소기업을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중소기업들이 더 좋은 라이브러리를 개발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런 조건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다.
진정 의미 있는 동반성장이 가능하려면, 중소기업과 대기업 서로가 서로를 도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NI와 콘탁 라이브러리 개발 기업은 서로 적극적으로 도와 좋은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데에 공통된 이해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을 보면 그런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관계를 정부의 의도대로 재편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공통된 이해관계가 없는 곳에 그런 방식으로 인위적인 관계를 조성한다고 해서 과연 NI와 같은 사례가 등장할 수 있을까? 정말 정부가 동반성장의 생태계를 원한다면, 협력을 강요하는 동반성장 계획은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김영준 SFL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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