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00일 평가와 과제 / 행정·정책 분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윤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그동안 비대해진 정부 규모를 과감하게 축소하고 합리적인 통폐합을 통해 조직을 효율적으로 개편하는 등의 다양한 행정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시장경제를 추구하겠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정책의 방향을 민간 중심의 시장원리에 따른 국가 발전에 두고 있다. 과거 정부주도의 각종 산업정책의 변화와 규제개혁이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가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문제들과 정책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따지고 보면 시장의 오류를 치유하겠다며 기업 활동을 제한하는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양산하고, 시민의 개인적인 결정과 일상까지 무분별하고 과도하게 간섭한 정부실패에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윤석열 정부의 문제 진단과 개혁의 방향은 옳은 길로 향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여기서는 5년간 윤석열호의 항해에 처음 떠나는 지난 100일 동안의 모습을 행정·정책의 측면에서 평가하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험난한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추진해야 할 과제들을 관리 측면과 정책 측면에서 제언하고자 한다.
정권이 바뀌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 우선 국정이념과 비전을 세우고 이를 토대로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구체적인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기본적인 추진체계로서 조직을 개편한다.
따라서 조직개편은 정부가 추진할 정책의 주체를 새롭게 구성하고 정부조직의 기본적인 체계를 정비한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새 정부에서 눈에 띄는 조직 변화는 대통령실의 개편이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그동안 미국, 영국, 일본 등과는 달리 철저하게 격리되어 대통령이 구중궁궐에 군림하던 청와대를 60여 년 만에 국민들에게 개방한 것은 조직개편을 넘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행정조직 관점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기존 청와대 시절의 3실 8수석 체제에서 민정수석을 폐지하는 등 2실(비서실, 국가안보실) 5수석(정무, 시민사회, 홍보, 경제, 사회)으로 개편하며 대통령실의 축소를 단행했다.
비록 일부 기존 공약에서 후퇴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작은 정부를 천명한 새 정부가 대통령실부터 손을 봤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조직개편은 칸막이 행정 없애는 것이 중요
하지만 대통령 대선 공약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의 하나인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폐지 문제는 제대로 추진되지도 못하고 아직까지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기존의 여가부를 폐지하고 청소년과 가족에 관한 사무는 보건복지부로 이관한다는 등의 계획을 표방했으나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여전히 개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향후 어떻게 개편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조직개편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부 정책의 대응성과 효과성을 제고하고 행정서비스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도식적이고 물리적인 조직개편으로는 어떤 의미도,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설령 윤석열 정부가 작은 정부를 기조로 삼고 있다 하더라도 시대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조직은 과감하게 폐지해야 마땅하지만 반대로 필요한 조직을 신설하는 데 부담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경제정책의 핵심인 규제개혁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설픈 위원회나 임시조직이 아닌 상설조직을 만들고 이에 따른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정부조직개편은 개편 그 자체에 방점을 두기보다 기존의 칸막이 행정을 허물고 부처 간의 협업을 활성화하고 책임행정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
정부 정책은 공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결정하고 수행하는 일련의 행동 방침이다. 이렇듯 정책은 문제 해결이라는 목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공공정책은 공식적, 비공식적 참여자들의 정치과정을 통해 생겨가는 산물이기 때문에 고도의 정치성을 띠고 있다.
이 때문에 어떤 정부가 어떤 이념과 철학을 가지고 정책을 형성하고 집행하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고 향후 개선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정책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정책과정’을 통해 추진된다. 첫 단계는 정부의제가 설정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정부가 정책적으로 개입해야 할 의제가 되지 않는다.
정부의제는 특정 사회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이를 정부가 개입해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해당 문제가 반드시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것인지 규범적으로 질문하고, 또 실제로 정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경험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시장참여자들의 자발적인 의사결정과 거래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함부로 시장에 개입해서는 가격왜곡 등 시장을 교란시키는 결과만 초래하고 만다. 지난 정부의 부동산정책의 실패는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이렇게 정부의제가 설정이 되고 나면 이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정책은 본질적으로 수혜자와 비수혜자를 낳는 정치적 과정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은 '원칙(principle)’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일부 소수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절대 다수가 희생하는 정책은 원칙이 아니라 이해관계(interest)에 따라 만들어진 결과이다. 택시업계를 비롯한 소수의 이익 때문에 보다 편리하고 다양한 교통수단을 필요로 하는 다수의 일반 시민들의 희생을 강요한 '타다금지법’과 같은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이렇듯 정책참여자들의 상호작용과 정책을 둘러싼 조건과 환경을 고려하여 정책형성의 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정부가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최근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5세로 낮추는 교육부의 학제 개편안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뿐만 아니라 심지어 여권 성향의 교육감들의 저항으로 사실상 백지화의 길로 가는 모습이다.
사실 학제개편안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라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정부의제로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이나 공론화 과정도 뚜렷이 없는 상태로 갑자기 튀어나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정책과정이 무시된 결과이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교육정책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면 단순하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권 초기의 정책 실책은 앞으로 추진해야 할 정부의 중대한 정책 추진에 막대한 부담을 주게 된다는 점이 더 심각한 것이다.
정부 정책의 성공과 실패는 단순히 정책의 합리성과 타당성 확보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정책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직결된다. 흔히 '졸속행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름 아니라 정책과정의 기본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어설프고 조급하게 추진되는 모습을 비꼰 말이다.
'조금 늦어도 일관성을 가지고 확실하게(slow but steady)’라는 말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모든 정책의 추진에 적용되는 격언이다.
린드블롬(Charles E. Lindblom)은 정책결정을 '점증주의’라고 했다. 한마디로 정부 정책은 기존의 관례와 정책을 바탕으로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점진적 방식으로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의 이론은 행정과 정책을 매우 현실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점증주의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행정과 정책에 대해 급격한 변화를 의미하는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과거 정부에서 제시한 정부혁신은 그래서 '허구’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정부는 현실에서 당면하는 문제를 오직 점진적인 개선·개혁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여론의 압박이 거세다 할지라도 정책 추진에 있어 정부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조급증을 버리기 위해서는 원칙에 의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선한 의도로 공익을 위한 정책이기 때문에 국민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는 생각은 완벽한 착각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갈등과 저항은 불가피하다. 이해관계에 얽힌 정책, 감정적인 여론에 휘둘리는 정책으로 어정쩡한 모습을 지양하는 유일한 대안은 원칙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자유민주주의의 원칙과 시장경제의 원칙을 점검하고 원칙을 통해 정부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김성준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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