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생산성 회복

박기성 / 2023-04-17 / 조회: 5,227       미래한국

윤석열 정부는 대규모 노동조합 및 상급단체에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노동개혁의 시동을 걸었으나 해당 노조의 63%가 제출을 거부했다. 노동조합법에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 노조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역대 정부는 불법파업을 자행하는 노조에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의 보고를 요구한 적이 없다. 미국에서는 이 보고 강제조항을 통해 정부가 노조를 감독함으로써 불법적 관행을 차단하고 있다.


노조의 역기능을 억제하는 노조개혁 돼야


정부가 법 준수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노동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노동개혁은 근로자의 임금이 생산성에 따라 결정되는 공정성이 회복되는 것인데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노조이다. 일반적으로 노조는 노동을 독점적으로 공급함으로써 높은 임금을 요구할 수 있고 이에 대해 사용자는 고용을 조정해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반해고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산성보다 훨씬 높은 임금이 유지되고 있으며 이것이 경제 전반에 걸쳐 비효율의 원인이 되고 있다.


노조도 직장내 괴롭힘 방지나 제안 등의 집단적 의사소통 기능으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 노동개혁은 노조의 역기능을 억제하면서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노조의 제자리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노조개혁으로 명명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현 정부는 근로시간제도와 임금체계를 노동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근로시간과 임금은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합의에 의해서 결정되는 종속변수이지 독립변수가 아니다. 일감이 넘쳐날 때는 근로시간을 늘리고 일감이 적으면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


임금체계를 연공급·직무급·성과급으로 할지도 기업의 인적자원관리의 전략에 따라 달리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에는 근로시간 및 임금체계와 관련된 조항이 없다. 노동시장의 상황에 따라 변하는 종속변수를 정부가 나서서 정하겠다는 발상은 노동시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시장경제에서는 모든 거래가 쌍방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자발적 계약에 의해서 이뤄지지만 한국에서는 근로기준법이 자발적 계약보다 앞선다. 근로기준법은 최소한의 기준만을 남기고 근로계약과 관련된 조항으로 바뀌어야 한다. 근로제공 및 고용이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노동부문이 생산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미국에서 근로자와 사용자의 권리 의무를 규정하는 기본법은 관습법이다.


이에 따라 근로계약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언제라도 자유롭게 해약할 수 있다. 근로계약에 어긋나는 조항이 없는 한 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직할 수 있듯이 사용자도 언제라도 자유롭게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다. 이것을 근로자와 사용자의 임의고용 원칙이라고 한다.


생산의 2대 요소는 자본과 노동이다. 자본을 구입하거나 이용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므로 금융시장이 발달하고 그 수요와 공급을 통해 자본이 조달된다. 금융시장은 개방경제에서는 국제금융시장과 통합되지 않을 수 없고 국제기준에 따라 비교적 효율적으로 작동하지만 노동부문은 세계화로부터 격리되어 왔고 지대추구적 암초가 산재해 있어서 불공정하고 비효율적이다. 이 상태로 노동부문이 방치되면 우리나라 경제는 성장은 커녕 퇴보할 것이다. 금융시장에는 자본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중개하는 은행, 증권회사 등 금융기관이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노동은 자본보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더 심각하지만 기업과 근로자를 중개하는 노동중개기관이 매우 적다.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자본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총칭하여 금융시장이라고 하듯이 알선·파견·용역 등 노동중개기관을 중심으로 노동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총칭하여 노융(勞融)시장이라고 명명한다.


미국에는 인사업무를 대행하는 전문적 고용기관(PEO)이 700여 개나 있고 파견회사 등이 다수 존재한다. 노융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금융기관처럼 노동의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서 중개하는 종합적인 민간 인력회사가 필요하지만 근로기준법 제9조(중간착취의 배제)는 이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두 과제가 노동개혁의 본질이지만 현 정권이 추진하기에는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변죽만 울리는 노동개혁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노조의 파업으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사용자가 해당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고 그 중단된 업무를 도급줄 수 없다.


파업 중 대체근로 금지 조항은 1953년 노조법이 제정될 때부터 있었는데 당시 일본의 노동법에도 없었고 OECD 회원국 중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 노조가 억압되었던 시기에는 이 조항이 유명무실했으나 1987년 이후 노조가 활성화되면서 이 조항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노동시장 중개하는 기관 도입돼야


파업 중 대체근로가 가능하려면 파업행위는 사업장 밖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파업을 워크아웃(walkout)이라고 하는데 파업을 하면 사업장 밖으로 나가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조는 직장점거 파업으로 업무를 방해하지만 공권력은 사용자가 요청해도 개입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자가 취할 수 있는 대응수단은 직장폐쇄뿐이다. 직장폐쇄를 해야만 파업 근로자들을 직장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직장점거 파업이 불법이므로 실질적으로 직장폐쇄가 파업과 더불어 시작되지만 한국에서는 일정요건을 충족해야만 사용자가 직장폐쇄를 할 수 있고 노조가 소송을 하면 그 직장폐쇄의 적법 여부가 판사에 의해 결정된다. 직장폐쇄가 불법으로 판결나면 사용자는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받는다. 그러므로 사용자가 직장폐쇄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며 특히 기관장이 공무원이나 교원인 경우에 직장폐쇄를 단행하는 것은 남은 인생을 건 큰 모험이다.


파견법은 32개 업무에 대해서만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있지만 그 업무들은 주유원, 주차장 관리원 등과 같은 단순한 업무가 대부분이며 제조업무는 포함되지 않는다. 제조업체의 파견과 사내도급은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인 생산방식이다. 독일, 일본의 사례에 비춰볼 때 제조업무를 포함한 거의 모든 업무에 파견을 허용하고 일부 업무에만 파견을 금지하는 식으로 파견법을 개정하면 한국에서도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제정될 당시부터 생산직근로자의 경우만 다루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에 대한 초과근로 급여로,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해야 한다. 생산직은 일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산출물이 나오는 반면에 관리사무직은 근로 강도를 본인이 조절할 수 있고 성과에 따라 보상이 이뤄질 수 있지만 이들에게도 초과근로 시간을 계산하여 50% 할증된 급여가 지급되고 있다.


미국의 근로자는 초과근로 급여를 받을 수 없는 자와 받을 수 있는 자로 구분된다. 한국도 이렇게 근로자를 구분하면 평균 근로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될 것이다.


최근에 소위 MZ 노조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MZ 노조가 제대로 된 노조가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될 것이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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