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수가 통제가 의사공급 왜곡
고소득에 의사 배분 편중 초래해
정원확대·수가인상서 실마리 찾길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리는 정부의 계획 발표로 정부와 의료계가 크게 충돌하고 있다. 정부는 인구 1000명당 한국의 의사 수는 2.1명으로 OECD 평균 3.7명에 비해 적고,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도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한국의 '연간 인당 진료 횟수’가 17.2로 OECD 평균 6.8보다 월등히 높아 사실상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 '지역·필수의료’ 문제의 본질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낮은 수가와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있으므로 의대 증원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의료서비스의 본질에 대해 먼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의료서비스 역시 수요자(환자)와 공급자(의사)의 상호 작용으로 제공되고 소비된다. 의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제시하는 가격(진료비)에 반응하여 소비자(환자)가 진료를 받을지 받지 않을지를 결정하면서 시장에서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 그리고 가격이 결정된다. 이렇게 의료서비스의 시장이 움직일 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와 의료서비스를 소비하는 환자의 욕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정부가 개입하고 통제하면 인센티브 구조가 왜곡되어 이러한 조화는 깨지고 의료서비스의 공급과 수요에 문제가 발생한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첫째, 면허제에 따른 의과대학의 정원을 정해 의사의 공급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한은 진입장벽으로서 의사들의 경쟁압력을 줄여 의료서비스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것을 방해한다. 게다가 의사의 공급이 필요에 따라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막고, 의사에게 자유시장에서 가능한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을 안긴다.
둘째는 건강보험을 통한 의료수가(진료비) 통제다. 수가 통제가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왜곡시켰다. 진입장벽 때문에 의사 수가 증가하지 않음으로써 한정된 의사의 수가 잘못 배분됐다. 수가가 규제된 보험급여 항목이 많은 분야에서는 의사의 수가 적고 규제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많은 분야에서는 의사의 수가 많아진 것이다. 여기에 의료사고에 따른 소송위험이 큰 분야를 피하는 것이 필수 의료에서의 의사 부족 문제를 더 했다. 이러한 까닭으로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늘어나지만, 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에서는 의사의 수가 줄어들게 됐다.
수가 통제는 소위 병원 쇼핑을 하며 과다진료를 받는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도 일으키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단 보험료는 미리 냈기 때문에 본인이 진료 때마다 직접 부담하는 금액이 적어져서다. 게다가 수가가 지방이나 서울이나 거의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지방보다는 서울의 유명 병원을 찾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무조건 증원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료계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에서 수가만을 조정한다고 하면 의료서비스에서의 경쟁 저하로 혁신에 따른 의료서비스의 개선이 잘 이뤄지지 않고, 필요에 따라 의사의 공급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수가를 자율화하고, 의대설립과 의대 정원을 자율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법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정부가 의사 수를 늘리겠다고 하는 데도 이렇게 반발이 심한데 의대설립과 정원을 자유화한다고 하면 더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의료서비스에 대한 통제에서 손을 뗄 리가 만무하다. 자유롭게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적의 해법이긴 하지만, 이러한 현실적인 장벽을 생각하면 의대 정원을 늘리고 필수·지역 의료 수가 인상과 소송 부담을 낮추는 내용의 '필수 의료 패키지’ 정책으로 지금의 잘못된 인센티브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차라리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소비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방법을 포함해야 함은 물론이다.
사실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적정 의사의 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제시한 2000명 증원 계획은 불완전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것 역시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서로가 불완전하다는 인식으로 정부의 안을 놓고 보완할 점을 논의해 가며 적절한 해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오래 대립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자유기업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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