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시름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상법, 공정거래법, 노동조합법, 특고 고용보험법 등이 국회에서 무더기로 통과된데 이어 노조의 요구에 부응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까지 입법 추진 중에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이란 노동자가 작업 도중 크게 다치거나 사망했을 때,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업주에게 징역형 또는 벌금형을 내리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법을 말한다.
현행 발의안은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무리한 측면을 갖고 있다.
첫째는 처벌 대상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경영책임자가 유해·위험방지의무나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도록 한 조항과 관련해 그 구체적인 범위가 포괄적이고 불분명해 처벌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둘째로 중대재해 발생 때 인과관계를 추정해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부분이다. 현행 발의안은 사고 전 5년간 유해·위험방지의무 위반 사실 3회 이상, 사고 관련 증거를 인멸하거나 지시·방조한 경우에 인과관계를 추정하도록 했다. 경영계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책임이 없다는 입증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형사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경영자에 무리한 부담을 줄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부작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이를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려는 모양새다.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중대재해법을 실행하는 나라가 매우 적다. 노조는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예로 들어 입법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중대재해법과는 차이가 있다. 먼저 기업살인법은 기업에도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기업의 과실치사를 적용하는 기준은 중대재해법처럼 불명확하지 않고 법원의 철저한 입증 과정을 거쳐 예외적인 경우에만 기업살인법을 적용한다. 실제 영국 보건안전청(HSE)의 니콜라스 릭비 수석감독관은 “산재 사망사고 발생 시 기업살인법의 적용 비중이 5%도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산재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HSE에 따르면 영국 내 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2008~2009년 179명에서 2018~2019년 147명으로 줄었다. 줄긴 했으나, 법의 시행으로 나타난 획기적 감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노동자 10만 명당 사망자 수를 나타낸 비율도 1988년에서 1994년 사이 가장 많이 떨어졌고 그 이후 완만한 하향 추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법의 시행이 산재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 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오랜 기간 산재의 사망자수가 계속 감소해왔다. 앞으로도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산재 참사를 방지해야 하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 서 논의중인 중대재해법은 기업인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과 책무만을 강요하고 있다. 사고 이후 강력한 처벌 규정만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법안은 산업재해 사고를 감소시킬 수 없으며, 기업의 경영 활동만 위축시키는 법안이라 할 수 있다. ‘빈대 잡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산재 사고를 막기 위해, 이미 일어난 사고에 대한 중복된 징벌만을 강화하기 전에 기업들이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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