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전임자 급여지급? ILO에 역행하는 부당노동행위다

김강식 / 2020-11-26 / 조회: 14,555       매일산업

노조 독립성과 자주성 위해 노조 스스로 부담하는게 원칙

미국 일본 유럽, 노조에 대한 재정지원 법률로 금지


정부는 지난 6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추진하기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안은 2019년 10월 4일 20대 국회에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과 동일한 내용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ㆍ관행 개선위원회’의 공익위원 권고안을 토대로 마련된 것이다. 정부안이 담고 있는 여러 내용 가운데 하나는 현행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을 삭제하는 것이다.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조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위해 노조가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미국, 일본 등 외국에서는 회사가 노조전임자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 이를 노조에 대한 지배개입 행위로 보고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노조의 재정적 어려움을 감안해서 기업이 전임자 급여를 지급하는 불합리한 관행이 지속돼 왔고 이 관행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산업현장의 주요 갈등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노동조합의 무리한 요구에 따라 유급 노조전임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조합원당 전임자 비율은 일본에 비해 4~5배 까지 증대하였고 이는 고스란히 경영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노조 측의 과도한 전임자 요구로 노사분규가 빈발했고 그 결과 산업현장에서 투쟁적 노사관계가 지배했다. 이는 기업의 투자의욕 위축을 야기했고, 또 외국 기업들도 국내 투자를 회피하고 심지어 한국에서 철수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노조전임자들은 기업내에서 특권적 지위를 가지고 임금 등의 처우에서 일반 근로자들에 비해 특혜를 누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수록 현장과 노조와의 괴리는 커졌다. 노조전임자 급여를 둘러싸고 노조와 기업의 담합이 횡행하여 근로자, 협력업체, 소비자 등 기업의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1997년 복수노조 설립 허용과 함께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을 금지하는 규정이 입법화됐다. 그렇지만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노조에 미치게 될 충격을 감안해서 노조의 재정자립 준비를 위해 이후 13년간 그 시행을 3차례 유예했다가 2010년 근로시간면제제도 시행과 더불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시행했다.


근로시간면제제도는 기업내 노조활동을 일정 수준 유급으로 보장해주는 제도로서 과거 유급 전임자제도의 현실화 내지 보완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노조전임자와 근로시간면제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을 정도로 제도 시행 10년이 지난 지금 당초의 우려와 달리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노조전임자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산업 현장에 비교적 순조롭게 잘 정착한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듯 지난 수십년간 산업현장에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문제로 많은 갈등을 겪어왔고 10년전부터 그 해결안으로 근로시간면제제도를 시행해서 노조전임자 문제를 잘 관리해 왔는데 지금와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이유로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을 삭제하겠다는 것은 다시 과거의 갈등과 대결의 노사관계로 회귀하게 될 위험 상황을 자초하게 될 우려가 있다.


ㆍ유럽 등 선진국, 노조전임자 임금 노조 자체 부담 원칙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에도 노조전임자 임금은 노동조합이 자체적으로 부담하는 원칙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기업내 근로자 대표 활동에 관해 필요 최소 시간으로 근로시간면제 대상 업무와 인원수 한도를 인정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ㆍ운영하고 있다. 외국은 대부분 산별노조 형태이며 노조업무 수행자에 대해서는 당연히 노조 재정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바, 전임자임금 지급 문제는 쟁점사항이 아니다.


외국은 노조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급여지급을 법규로 금지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외국의 경우에는 노조가 전임자 급여지급을 요구하지도 않고 또한 기업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사례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기업별 노동조합 형태를 가진 일본의 경우 ILO 핵심협약 제98호를 비준하고 있으면서도, 노조전임자가 사용자로부터 급여를 지급받는 것은 자주성이 침해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며,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조가 자체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서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가 필요하다는 이유가 제시되고 있는데 이와 직접 관련된 ILO 핵심협약과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는 그 내용에 차이가 있다.


◆ILO결사의자유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입법적 관여 대상 아니다' 권고


ILO 핵심협약 제98호 제2조 제1항은 근로자단체 및 사용자단체의 설립, 운영 등에 있어 어떠한 간섭행위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항은 근로자단체에 대한 사용자의 재정상의 원조를 간섭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사용자가 노조전임자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ILO 핵심협약에 위배되는 행위인 사용자가 노조를 통제 하에 두기 위한 간섭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 문제는 기본적으로 입법적 관여의 대상이 아니며, 사용자와 노동조합간의 자발적 협상과 결사의 자유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와 같이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의 권고의 내용은 근로자단체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통제 하에 두기 위한 간섭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ILO 협약 제98조 제2호의 규정과 상치하고 있으며 상위규범인 ILO의 협약상의 근거규정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기업별 노조형태의 한국 노사관계 상황과 노동환경 및 여기에 기반하고 있는 법제도 및 관행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에 대해 동지적 입장에서 산별노조 체제인 구미중심의 보편적 노사관계 관점에서 판단을 내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의 권고사항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ILO 산하 위원회의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노사관계 역사와 맥락에서 보면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을 금지하는 현행 노조법(제24조 제4항)이 ILO 핵심협약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노사관계 선진화 진전 1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노조법 개정안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 내용의 정부안은 노조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급여지급이 가능하게 되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현행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규정은 1997년 노사관계선진화 차원에서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노사관계의 균형을 위해 마련됐고, 경제적ㆍ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1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2010년 근로시간면제제도의 실시와 더불어 시행된 것으로 현 시점에서 이 규정의 삭제는 그간의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노력과 진전을 다시 10년 전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문제는 기본적으로 입법적 관여의 대상이 아니며, 사용자와 노동조합간의 자발적 협상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권고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의 입법의 시행을 계속 유예하면서 노사 스스로 전임자 규모 축소와 노조 재정자립 노력을 기울이도록 의무화하였음에도 13년 동안 이나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전임자 수만 계속 증가해 와서 결국 2010년 입법적 개입으로 시행된 사실은 노사자율에 의해서는 전임자 급여지급의 문제의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노조전임자의 급여는 노조 재정으로 지급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는 바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는 실질적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일본, 캐나다의 경우 노조에 대한 재정지원을 법률로 금지하고 있으며, 다른 선진국들은 노조가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관행으로 정착되어 입법조치가 불필요한 것이다.


◆노조전임자 급여지급은 부당노동행위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도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되는 것이며, 지난 2009년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가 ILO 기준에 전적으로 부합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고용부 보도자료, 2009년 11월 9일). 그런데 이것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하는 ILO결사의자유위원회의 권고에 반한다는 이유로 기존 입장을 변경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상과 같이 한국 특유의 노사관계 역사와 맥락, 외국의 사례, ILO 핵심협약 제98호 제2조 제1항, 기존의 정부 입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규정의 삭제는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김강식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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