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막는 관치금융 이젠 청산해야

안재욱 / 2024-09-09 / 조회: 320       이투데이

산업화시절 악습 자원배분 왜곡해

금융산업 낙후·국제경쟁력 떨어져

금리결정 등 은행경영 자율화해야


정부가 은행 금리에 끊임없이 간섭하고 통제한다. 수시로 금리를 내리라고 했다가 올리라고 한다. 최근 은행의 예금금리는 하락하는데 대출금리는 오르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정부가 은행에 압력을 행사해서다. 물론 시장에서 저축이 증가하면서 대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 예금금리가 하락하고 대출금리는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시장참가자들의 자율적 의사결정 결과가 아니다. 정부가 은행이 대출금리를 올리도록 압력을 행사한 결과다.


일반적으로 예금금리는 각 은행이 한국은행 기준금리나 시장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은행채 금리에다 은행의 자금 보유와 경영 상황을 고려해 결정한다. 대출금리는 코픽스나 은행채 금리에 각 은행이 자체 책정한 가산금리를 더하는 방식으로 결정한다. 그래서 예금금리는 기본적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나 시장금리 추세에 따르고, 대출금리는 시장금리와 가산금리에 따라 변동하게 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동결하고 있고 최근에 시장금리가 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예금금리든 대출금리든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대출금리가 오르고 있다. 이는 정부의 압력으로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리기 때문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이렇게 정부가 은행으로 하여금 대출금리를 올리도록 한 이유는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해서다. 그런데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 제공자가 정부다.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지난해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부추기기 위해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하기로 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 시행 시기를 올 9월로 연기했다. 그러자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빠른 속도로 불어나며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과도한 가계부채로 경제 성장과 금융 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자각에 정부가 부랴부랴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대출금리를 인상하도록 한 것이다.


금리도 가격이다. 정부가 일반 재화의 가격을 통제하거나 간섭할 때 수요와 공급의 부조화가 발생해 시장이 파탄 나듯이 금리에 대해 간섭하고 통제하면 금융시장을 왜곡하여 경제를 위태롭게 만든다. 또한 금리를 인위적으로 통제함에 따라 경제 주체 간에 소득재분배가 일어난다. 지금처럼 예금금리는 내려가는데 대출금리를 올리게 되면 저축으로부터 얻는 이자 수입은 줄고 돈을 빌려야 하는 사람들은 높은 이자를 내야 함으로써 서민들의 피해는 커진다. 반면 예대금리차가 커지면서 은행들의 수익은 증가하게 된다. 서민들의 부가 은행들로 이전되는 것이다.


이런 폐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은행 금리 결정에 간섭하고 통제하는 배경에는 뿌리 깊은 관치금융의 악습이 있다. 우리 관치금융의 역사는 매우 깊다. 그 기원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경제개발을 위한 금융 체제에 있다. 정부가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직접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는 논리로 금융기관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로 인해 부문 간 자원배분이 왜곡되었을 뿐만 아니라 은행경영의 효율성이 저해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이러한 부작용을 인식한 정부는 1980년대부터 일련의 금융 자유화를 단행했지만, 관치금융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경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관치금융은 혁신을 방해해 은행들의 수익구조를 이자 수입 중심으로 고착시키는 등 다른 제조업에 비해 금융 산업을 낙후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잘 알다시피 한국의 TV, 휴대전화, 반도체, 자동차는 매우 높은 국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하이닉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은 세계 10위 안에 든다. 그러나 국내은행 중 세계 50대 은행에 들어 있는 은행은 하나도 없다. 영국 금융 전문지 '더 뱅커’가 2022년 실적을 집계해 공개한 '글로벌 100대 은행’ 순위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은행이 KB금융으로 60위다.


최근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이 발달함에 따라 글로벌 금융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관치금융으로 은행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떨어져 글로벌 환경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자원이 생산적인 곳으로 사용되지 않음으로써 경제 성장에 해를 끼친다. 급격한 금융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여 금융 산업을 발전시키고 금융의 발전을 통한 경제발전을 유도하기 위해서 관치금융을 청산해야 한다. 금리 결정을 포함하여 은행경영을 은행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자유기업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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