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대학이름 앞에 국립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안동대학교가 국립안동대학교로, 경상대학교가 국립경상대학교로, 목포대학교가 국립목표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최근의 일이다. 이들 대학이 국립대학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 텐데, 굳이 국립이란 명명식을 한 이유는 뭘까? 대학정원이 예비 신입생수보다 많아지다 보니, 대학마다 신입생 충원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장 중요한 수입원 지표이기 때문이다. 학생이 많아질수록 재정여력이 더 있을 것임은 당연하다.
원래부터 국립대학이었던 이들 대학이 '국립’ 대학임을 갑자기 더 내세우고 싶었던 데는 이런 합리적, 그리고 강력한 추론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립대학은 사립대학에 비해 등록금이 훨씬 낮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2022년도 4년제 일반 및 교육대학 평균 등록금을 보면, 사립대학이 752만 3,700원 국립대학이 419만 5,700원이다. 국립대학이 사립대학의 55.7%에 불과하다. 절반 조금 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등록금 차이가 공정할까.
사실 사립대학과 국립대학 간 등록금 차이는 예전부터 있었다. 사립대학은 등록금 수입으로 교직원 보수에서 대학경영, 장학금까지 해결해야 했지만, 국립대학은 그 구성원의 신분이 공무원이니 국고로 별도 책정된다. 그래서 국립대학은 등록금을 훨씬 낮출 수 있다. 참고로 사립대학의 재정구조를 보면, 등록금 대비 교직원 인건비 수입이 74%에 달한다. 사립대학보다 국립대학이 재정적 여력이 더 클 것임은 쉽게 짐작가능하다.
물론 대학이라고 다 같은 대학이 아니다. 학생들은 각자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이 있고, 기왕이면, 평판도 높고 자신의 진로에 적합한 대학을 선호한다. 이들 대학이란 대개 대학입학성적수준과 동조화된다. 간단히 말하면, 대학수학능력시험, 내신이 높은 학생들이 가는 대학, 중간정도 학생들이 가는 대학, 하위권 학생들이 가는 대학이 계열화되는 것이다. 2022년 기준 전국 194개 일반 및 교육대학은 소위 SKY 대학에서부터, 가장 하위의 대학군까지 십여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대학군 간의 등록금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시장이 작동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 대학수준별 등록금 차이는 거의 없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신학대학, 사이버대학 등 다른 특성의 대학을 제외하면 을지대학교가 가장 높아서 천만 원을 상회하고, 부산교육대학교가 300만 원 정도로 가장 낮다. 700만원이나 차이가 나니 충분히 차이기 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통계를 조금만 자세히 보아도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등록금 수준 최하위 부산교육대학교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까지 42개 대학 리스트에 사립대학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 대학은 대학수준별 가격차이가 아니라, 국립대학인지 사립대학인지에 따라 가격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적이 비슷한 학생들이 가는 비슷한 수준의 대학에서는 대학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일컬어지는 등록금, 대학과 집에서의 거리, 진로 중에서 등록금이 압도적 영향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교수의 질, 교육서비스의 내용, 교육 여건 내지 환경이 거의 평준화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립대학이 갖는 가격 우월성은 사립대학은 가질 수 없는 엄청난 특권일 수밖에 없다.
물론 예전에는 대학정원수보다 학생 수가 훨씬 많았고, 대학을 가려는 학생이면 사립대학이든 국립대학이든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이들 국립대학의 특권적 가격우월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덜 했다. 이때는 대학이 신입생 충원에 지금보다 훨씬 경쟁을 덜 기울인 시기이기도 했다. 물론 대학이 편한 시기였지만 대학의 경쟁력이 점차 낮아져간 시기도 이 시기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경쟁력은 국가 경제수준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대학은 신입생을 한명이라도 잡기 위해 전방위 경쟁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입학전략과 같은 초단기의 것도 있지만 대학시설투자를 신경 쓰고, 학생 편의 공간을 늘리며, 좋은 교수를 충원하기 위해 신경도 쓴다.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진로상담관을 두어 한명 한명의 대학생에게 이름까지 불러가며 친절히 상담해준다. 수십 년 전 대학서비스와 비교하면 천지차이로 변했다.
대학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한꺼번에 상쇄시켜버리는 것이 바로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등록금 차이이다. 당신이라면 비슷한 수준의 752만 3,700원을 내야 하는 사립대학과 419만 5,700원을 내야하는 국립대학 중 어디에 자녀를 보내겠는가. 332만 8천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참고로 2021년도 우리나라 직장인 월평균 임금은 327만 1천원이었다.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불공정 경쟁구조는 대학이란 제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추세라면 같은 지역 내 입학성적이 비슷한 수준의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사립대학은 절대 이길 수 없다.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어떤 노력도 작동할 수 없다. 학생들은 등록금으로 대학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 더 있다. 국립대학에서 공무원 신분을 갖는 교직원의 인센티브와 사립대학에서 보수를 걱정하는 교직원의 인센티브는 다를 수밖에 없다. 혁신의 노력을 누가 과연 더할 수밖에 없는지 상상해 보자.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동물이다. 그 결과는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립대학의 상대적 내몰림과 한계상황으로의 추락, 낮은 등록금이란 국립대학의 우월적 특권 속 상대적 안정감과 혁신의 부족이다. 이래서는 우리나라 전체 대학교육이란 고등 교육서비스의 질적 제고가 보장될 수 없다.
2023년, 우리나라 대학은 정말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는가. 간만에 대학규제 개혁이 소매를 걷어붙인 교육부라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나라 대학 경쟁력을 옥죄는 규제, 우리나라 대학 불공정 구조를 양산하는 규제, 우리나라 대학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는 사립대학과 국립대학 간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등록금에 있다. 학령인구의 급속한 감소 시기, 모든 대학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당수의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은 통계수치가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 현실이 단지 등록금 차이라는 불공정 경쟁으로 인해, 지역마다 국립대학만 압도적 우월성을 갖는 구조로 재편되어서는 안 된다. 경험상 어려운 때, 오히려 창의성과 혁신의 아이디어와 움직임이 튀어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시기는 사라지는 대학도 있지만 정말 좋은 대학이 생겨나기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국립대학이 너무 많다. 더 이상 정부가 민간재인 고등교육에 들어오려면 사립대학과 경쟁하는 교육상품을 국립대학을 운영하며 내 놓아서는 안 된다. 정부는 꼭 필요한 고등교육분야에 집중하고, 그 나머지는 법인화를 하든지 해서 사립대학과 마찬가지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립대학은 민간영역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대학 간의 혁신의 노력, 대학 교육품질의 차이를 위한 대학 경쟁이 지금보다 훨씬 치열하게 만들어야 한다. 안 그래도 불확실한 시절, 사립대학에는 치열한 경쟁시장이 국립대학에게는 쉬운 독점시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학 교과서에 독점의 가장 큰 피해는 불공정 가격을 감수해야 하는 소비자로 나온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사립대학 국립대학 불공정 경쟁의 가장 큰 피해자도 학생과 학부모이다. 대학규제 이제는 한번 제대로 고쳐볼 때이다.
이혁우 배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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