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납품대금연동제(납품단가연동제) 입법으로 편가르기 정치를 하고 있다. 국민을 외면한 반시장적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해 국회 본회의에 넘겨졌다. 시장경제질서를 훼손하는 또 하나의 규제가 국회에서 만들어지고 있어 실망스럽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라는 이분법 논리에 빠져, 중소기업을 위한다며 만든 규제다. 문제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기업의 계약을 왜곡시켜 시장의 효율성을 억제한다는 점이다.
단가연동조항은 계약 행위시 이해당사자가 고려하는 옵션이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도록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누군가 피해를 보고 이익을 얻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획일적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법으로 한 가지 방식을 강제하게 되면 원하지 않는 방식을 채택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반시장적 규제는 비효율을 발생시킨다. 거래 행위자의 비용 증가, 소비자의 가격 부담 증가, 근로자의 일자리 훼손 등의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 결국 소비자와 국민이 규제의 피해자가 된다. 이 규제는 계약을 임의로 간섭하는 조항의 강도가 커질수록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수급사업자를 돕겠다고 만든 규제지만, 현실에서는 수급사업자의 장기적 수익률을 떨어뜨리고 성장의 기회를 차단할 가능성이 크다. 사업 추진의 비용이 늘어나고 위험도가 커지는 만큼 원사업자가 중소기업인 경우에는 사업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려는 도전 자체를 가로 막는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이 수급사업자인 경우에는 피해가 없겠지만, 영세한 중소기업에게는 피해가 클 수 있다. 특히 성장 의지가 있는 중소기업에게 규제의 보호막 아래에서 계속 저수익의 중소기업으로 남으라고 하는 것이어서 기업생태계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기관과 단체들은 이 규제를 환영한다. 새로운 규제로 자신들의 활동 폭이 넓어지고, 규제에 따른 추가적인 사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소기업이 영세성을 유지해 중소기업으로 남는 것이 그들 조직의 이익에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적 효율성을 희생하고 얻는 것이 특수집단의 이익이라면 이는 올바른 규제가 아니다.
이 규제가 다른 것들에 비해 크게 나쁜 점은 가격에 대한 규제이기 때문이다. 가격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가격기능을 왜곡하게 되면 시장경제 질서가 망가지게 된다.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정보기능을 발휘한다. 기업을 보호한다며 가격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일은 기업이 활동하는 세상의 정보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다.
시장경제라는 도로 한복판에 걸림돌을 만들면, 모두가 피해를 본다. 나를 위해 이 정도쯤이야 다들 조심하면서 가면 되겠지 하는 이기적 태도는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다. 누군가는 돌에 걸려 넘어지고, 피해 가려고 속도를 늦추다 보면 도로는 기능을 잃게 된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하기보다 자신의 인기를 위한 입법활동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민주 방식의 선거제도를 가진 나라에서 정치인들이 지지기반을 신경쓰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국민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고 지지기반의 이익도 고려하는 방식을 찾아야지 국민을 희생시키는 정치를 하는 것은 특권을 추구하는 정치에 빠져 법질서를 훼손하는 일이다.
기업을 약자와 강자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 편가르기 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기업은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동체일 뿐이며, 더 나은 방식을 찾아내기 위해 치열함을 유지해야 하는 존재다. 법과 제도가 기업의 경쟁을 보호해야지 복지의 대상으로 삼아 기업을 보호하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시장경제 제도를 훼손하는 또 하나의 대못이다. 정치인들에게는 순간의 인기를 주겠지만 우리 경제의 발목을 오랜 기간 잡을 것이다. 한 번 잘못 만들어진 규제를 해소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기업경제가 활성화되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올바른 길로 돌아오길 바란다. 납품단가연동제는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어야 할 반시장적 악법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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