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생존권을 규정한 우리 헌법 제34조의 내용이다. 이 생존권을 우리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개인이 '응당한 대가(quid pro quo)’를 치르냐의 여부에 따라 두 가지 수단을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모든 국민들이 보험료를 납부하는 의무가입의 사회보험(social insurance)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생활이 어려운 국민들에게 일반 조세로써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사회부조(social assistance)가 있다.1) 전자는 4대 연금과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으로 보험원리가 작동하지만 국민적 연대에 기초하다보니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 후자는 국민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장애인연금 등을 포함하는데, 이들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
1) 이들 외에도 복지차원에서 전국민에게 무료 또는 할인가로 제공되는 서비스도 많은데(예컨대, 무상보육, 무상교육, 지하철 무임승차 등) 이들이 생존권 차원에서 제공되는지 아니면 사회적 가치재(merit wants)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기본소득제 논란
생존권의 보장 범위는 사회보험과 사회부조의 대상범위와 급여수준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더 높은 경제발전과 더 깊은 사회연대를 통해 이들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2020년에 들어와 혜성처럼 등장한 기본소득(Basic Income)으로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모든 국민들에게 매월 일정 금액을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이야말로 생존권 보장의 궁극적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서구 지성계에서 수백년에 걸쳐 논의되었고,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의 지식인들에 의해서도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수많은 정치인들은 이 새로운 정책 어젠다에 뒤질세라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국민들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은 정말 환상적인 개념이다. 동일 금액을 일률적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시장시스템에 대한 차별적 교란도 최소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기능을 중시하는 우파 경제학자들의 신념에도 부합할 수 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득불균형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본소득을 통한 생존권 보장이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부조의 핵심인 국민기초생활보장과 달리 기본소득은 무조건적으로 자동 지급되기 때문에 '재산소득조사(means test)’에 따른 굴욕감(stigma), 인권유린이 없으며, 급여 박탈을 우려하여 빈곤 상태에 계속 머물려는 '빈곤의 함정(poverty trap)’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환상적인 기본소득이 왜 전 세계 그 어느 국가에서도 채택되지 않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우선 우리는 기존의 사회보험을 모두 폐지하고 그 재원을 기본소득 지급에 활용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야 한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의 수급권을 모두 포기하고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자는 정치적 주장을 우리는 과연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사회보험이 폐기된다면 거의 모든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민간보험에 가입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을 밀어붙인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저축하고 보험에 가입하며 자신의 노후와 위험을 스스로 대비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이러한 자유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사회보험은 기본소득에 우선해야 한다.2) 결국 기본소득은 사회보험을 대체할 수 없고 오직 사회부조만을 위한 정책으로 타당할 뿐이다.
2) 강남훈(2015) 등 일부 경제학자들은 기본소득 규모를 늘리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까지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회보험뿐만 아니라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극도로 위축시켜 사회 전체를 파멸에 이르도록 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의문은 좁혀진다. 과연 기본소득은 사회부조를 위한 적절한 정책이 될 수 있는가? 2017년 OECD는 사회부조의 재원과 기본소득의 규모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3) 현금으로 지급되던 기존의 사회부조 급여를 기본소득으로 전환할 때의 금액을 회원국 전체에 대해 시산한 것이다. OECD 평균을 놓고 볼 때 기존의 사회부조 급여는 최저생계비의 52.1%였지만 기본소득은 19.4%에 불과하였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누리는 소득수준은, 즉 생존권의 수준은 기본소득 하에서 급격히 감소하는 것이다. 반면 이태리, 그리스, 터키의 3개국에서는 기본소득이 오히려 증가하였는데, 이는 기존의 사회부조 급여가 어려운 사람들을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OECD(2017) 참조.
이러한 시산의 결과는 당연히 예상되는 것이었다. 동일한 금액을 보편적인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은 사회부조 급여를 선별적으로 지급하는 것보다 생활이 어려운 국민들에게 더욱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예산중립성(budget-neutrality) 하에서 보편적인 기본소득은 선별적인 사회부조에 비해 생존권의 보장 범위를 당연히 축소시킨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재산소득조사’의 폐해, '빈곤의 함정’이라는 결점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나름의 장점도 가진다. 결국 우리는 기본소득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을 대체하려면 그 장단점을 동시에 분석해야 한다.
기본소득과 음의 소득세
그런데 또 다른 한 부류의 학자들은 기초생활보장과 같은 사회부조를 개선하고자 '음의 소득세(minus income tax)’를 제안하기도 한다. 음의 소득세는 면세소득을 정한 후 그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고 그 이하의 소득에 대해서는 보조금(음의 세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자신의 소득을 y, 면세소득을 B, 세율을 20%라고 할 때 개인의 가처분소득(D)은 식 (1)과 같이 표현된다. 즉 y가 B보다 크면 그 초과분의 20%를 세금으로, y가 B보다 낮으면 미달분의 20%를 보조금으로 수령한다. 이러한 음의 소득세에서는 소득이 0이면 0.2B의 소득이 기본적으로 보장된다([부록]의 그림 참조).
식 (1) D = y – 0.2(y – B)
이러한 '음의 소득세’는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0.2B만큼 지급하고 개인의 소득(y)에 20% 세금을 징수하는 것과 완전히 동일하다. 즉 개인의 가처분소득(D)은 기본소득과 납세후 소득의 합계로서 식 (2)와 같이 주어진다. 이 식은 음의 소득세 수식 (1)과 완전히 동일하다. 음의 소득세와 기본소득이 이론적인 골격에서는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이 둘은 모두 '기본적 소득보장(basic income guarantee)’이라 불리운다.
식 (2) D = 0.2B + (y – 0.2y)
국민기초생활보장과 비교할 때, 음의 소득세와 기본소득은 모두 '빈곤의 함정’을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장점을 가진다. 국민기초생활보장에서는 개인소득이 0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수령하는 사회부조 급여도 함께 소멸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복지급여에만 의존한 채 자립하지 않으려는 '빈곤의 함정’이 이론적으로 존재한다. 반면 기본소득과 음의 소득세에서는 개인소득이 증가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소득은 줄어들지 않는다. 개인들이 더 많은 소득을 벌면 자신의 가처분소득도 더 많아지기에 빈곤의 함정은 사라진다. 그리고 식 (1)과 식 (2)에서 세율은 모두 20%로 동일하기 때문에 '빈곤의 함정’에 대한 효과는 두 제도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제도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타날 것인가? 그 차이는 실제 집행과정을 면밀히 검토할 때에만 드러난다. 첫째, 기본소득에서는 재산소득조사가 완전히 배제되지만 음의 소득세에서는 단순하게나마 여전히 존재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에서는 재산, 소득, 가구원수, 나이, 성별, 지역 등 '어려운 생활에 영향을 주는 모든 변수들’에 대해 복잡하고도 재량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 반면 기본소득은 보편적으로 지급되기에 이러한 조사가 '완전히’ 사라지고, 음의 소득세에서는 종합소득(재산소득이 포함된)만을 조사하기에 비교적 단순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둘째, 재원조성과 지급이 음의 소득세에서는 서로 연계되어 있지만, 기본소득에서는 이들이 서로 분리된 채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음의 소득세에서는 국세청의 종합소득세 신고 과정에서 납부할 세금과 수령할 보조금이 결정된다. 이러한 절차 때문에 음의 소득세는 '수입대체경비’의 성격을 띠어 세수한도 내에서 보조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관행이 확립될 수 있다. 반면 기본소득의 경우 현실의 예산과정에서 지급규모를 결정하는 일과 세수추계·국채발행 등 재원규모를 결정하는 일이 서로 격리된 채 이루어진다.
음의 소득세에서는 중산층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이 빈곤층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곧바로 대응되기에, 보조금 지급이 과도하게 이루어지면 종합소득세의 순세수는 곧바로 감소한다. 따라서 부과된 세금을 재원으로 보조금이 지급되는 맞교환(trade-off) 관계가 확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에서는 재원규모에 대한 제약이 검토되지 않은 채 그 지급규모가 결정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의 지급규모는 국방, 교육, SOC 등 여타 정부지출 항목과 함께 재정적자의 총량규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두 제도의 이러한 차이 때문에 음의 소득세는 보조금 지급과 재원조성이 같은 회계연도 내에서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기본소득은 그 지급과 재원조성이 서로 다른 회계연도에서 순차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절차적 차이로 인해 기본소득은 음의 소득세에 비해 정치적으로 오남용될 위험이 매우 크게 나타난다.
왜 음의 소득세여야 하는가?
집행과정의 차이를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이제 마지막 의문을 제기한다. 생존권 보장의 수단으로서 우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 기본소득, 음의 소득세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만약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빈곤층을 정확하게 조준하지 못한다면(즉, 재산소득조사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면) 기본소득과 음의 소득세를 대안으로 검토해야 한다. 설령 빈곤층을 정확하게 조준한다 하더라도 굴욕감, 인권유린 등 재산소득조사의 폐해가 크다면 역시 두 제도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재산소득조사의 결함이 크면 클수록 이를 완전히 폐지하는 기본소득이 종합소득이나마 조사하는 음의 소득세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빈곤의 함정’에서는 기본소득, 음의 소득세가 똑같이 기초생활보장보다 우위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미 근로장려세제를 도입했다는 사실이다([부록]의 그림 참조). 이는 근로소득이 0일 때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지만 근로소득이 증가할수록 보조금 규모를 점증-평탄-점감 방식으로 증가시켜 '빈곤의 함정’을 극복하고자 한다.4) 따라서 국민기초생활보장과 근로장려세제를 적절하게 결합한다면 '음의 소득세’가 궁극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에서 입안되었고,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되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더욱더 심화되었다. 우리는 근로장려세제를 도입하면서 이미 음의 소득세를 지향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4) 이준구, 조명환(2016), pp.264∼268 참조.
세 번째로는 정치적 오남용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중위투표자(median voter) 이론은 대의민주주의에서 중간층이 사실상 투표 결과를 좌우한다고 설명한다. 만약 중위투표자인 중산층이 자신들도 복지급여의 혜택을 동일하게 누려야 한다고 강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빈곤층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부득이 이들에게도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보편적인 지급보다는 선별적인 집중지원이 동일한 재원으로 생존권의 보장 수준을 더욱 높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위투표자들이 자신의 이익에 초연하며 생존권 보장은 빈곤층에 집중해야 한다고 인식한다면 당연히 음의 소득세가 채택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음을 정리할 수 있다. 음의 소득세와 기본소득은 모두 '기본적 소득보장’으로 동일하게 설계될 수 있다. 동일한 재원규모가 주어진다면 음의 소득세는 기본소득보다 생존권 보장에서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음의 소득세는 종합소득 파악이라는 조사가 있지만 우리가 이 조사를 보다 세련되게 할 수 있다면 기본소득에 어떠한 눈길도 줄 이유가 없다. 이미 우리는 근로장려세제를 도입하여 음의 소득세를 지향하고 있기에, 우리의 과제는 기본소득의 새로운 도입이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근로장려세제를 융합·발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5)
5) 국민기초생활보장을 개선하기 위해 2019년 5월 3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선정기준 완화, 보장성 강화, 근로빈곤층 자립촉진을, 2021년 4월 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20대 청년을 개별가구로 보장할 것을 각각 요구하였다.
<참고문헌>
1. 강남훈(2015), “새플리 가치와 공유경제에서의 기본소득,” 「마르크스주의 연구」, 12(2), 2015. 5,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pp.131∼155.
2. 옥동석(2021), 「기본소득제 해외문헌 고찰: 소개와 정리」, 2021. 2., 2020년도 국회사무처 연구용역보고서, 한국재정정책학회.
3. 이준구·조명환(2016), 「재정학」, 제5판, 2016, 문우사.
4. OECD(2017), “Basic income as a policy option: Can it add up?” Policy Brief on the Future of Work, May 2017.
[부록] 기본소득, 음의 소득세 그리고 근로장려세제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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